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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 "증여론"에 대한 더글러스의 서문

by 방가房家 2023. 5. 14.
메리 더글러스는 1990년에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의 영어 번역서(Gift)에 서문을 썼다. 현대 사회의 상품 소비에 대한 연구를 한 학자의 입장에서 <증여론>의 가치를 독창적으로 평가한 후에 학사적인 의미를 서술하였다. 뒤르케임과 그 학파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인상적인 글이다. 아래의 글은 너무 오래 전에 독서한 메모인데, 너무 잘못 읽지 않았기만을 바라며 올려둔다.
 
 
"공짜 선물이란 없다"는 간결한 표현을 통해 더글러스는 모스의 업적을 요약하였다. 그 사실은 자선 사업에서 잘 드러난다. 자선 사업의 수혜자受惠者는 혜택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없다. 그것은 분명 선물이고, 그들은 보답이 수반되지 않는 선물은 없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선 봉사자들이 행하는 봉사는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진다. 시혜자施惠者는 자신이 베풀고 있는 것이 선물이라는 사실과 선물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며 결국에는 자신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보답의 거부’가 인간의 상호 관계의 거세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이것이 자선 사업이 안고 있는 딜레마이다.
말리노프스키의 학문적 작업에서도 선물에 대한 오해가 나타난다. 그는 선물에는 정확한 보상을 전제로 한 것과 동기가 나타나지 않는 순수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고심의 분류 끝에 그는 남편이 아내에게 갖다 바치는 선물을 순수한 것으로 분류하였다. 그러나 이 역시 순수한 선물은 아니었던 바, 그것은 아내의 성적 봉사에 대한 대가였던 것이다. 모스의 작업은 몇몇 지역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세계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의무적인 선물에 대한 고찰이다. 그는 선물의 의무적인 보답이 교환의 원초적 형태임을 밝혀낸다.
 
그러나 더글러스는 <증여론>이라는 저서가 선물을 소재로 한 문화사적인 소묘素描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모스의 시각은 고고학적, 역사적인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정치철학의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증여론>은 종교에 관한 책이 아니라 정치와 경제에 관한 책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모스의 작업은 영국의 공리주의에 대항하는 정치 이론의 일환으로 기획된 것이며, 따라서 <증여론>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뒤르케임 학파와 영국의 공리주의 학파간의 대결 구도라는 학사적 흐름을 파악할 때만 이루어질 수 있다.
 
도버 해협을 사이에 둔 논쟁의 역사는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20세기의 프랑스 사회학파의 입장은 당시의 루소나 토크빌의 자유주의 비판에 기초를 둔다. 그들의 비판에 따르면 자유주의는 첫째로 사회적 존재 대신에 개인을 내세움으로써 인간 개념을 빈곤화하였고, 둘째로 사회적 관계의 변화에 있어서 생산 양식의 변화를 무시하였으며, 셋째로 자유에 대한 부정적 개념으로 인해 정치적 참여의 도덕적 역할을 이해하는데 실패하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경험주의자들은 개인의 의도를 형성하고 사회적 활동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규범의 역할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받는다. 프랑스 학자들이 공리주의를 비판하는 골자는 개인주의로 집약될 수 있으며, 따라서 그들에게 개인주의라는 말은 부정적인 함의를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뒤르케임의 입장은 이보다 좀 더 복합적이다. 그는 개인주의를 부정적인 것으로만 보지 않았으며, 오히려 정치 제도의 성공은 개인적 자각이 꽃피는 단계에 이르러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뒤르케임은 사회적 존재에 대한 공리주의의 폄하와 개인적 요구에 대한 사회주의의 폄하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한 학자였다. 그러나 영국 학자들은 이러한 뒤르케임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뒤르케임의 사회 개념이 개인에게 사고와 행위를 결정시켜 주는 일종의 독립된 지성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뒤르케임이 공유된 규범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국 학자들의 비판은 그 일면만을 곡해한 것일 따름이었다. 그들은 뒤르케임의 집단 심성 개념을 신비적인 단위인 것으로 제멋대로 날조시켜서 생각하였고 이를 토대로 공허한 비판을 수행하였다. 이제 모스의 작업이 뒤르케임에 대한 오해를 어떤 방식으로 해소시켰으며, 뒤르케임의 생각을 어떻게 계승, 발전시켰는지에 주목하면서 <증여론>의 의의를 살펴보도록 하자.
 
첫 번째, <증여론>은 실증주의적인 작업의 결실이다. 모스는 관찰에 의해 실증될 수 있는 이론을 확립함으로써 뒤르케임의 이론이 ‘신비적’인 실체에 기초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한편 이 저작은 현대의 현지 조사(field work)에 있어서도 인류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즉, 의무, 선물, 재산 상속, 공물 등의 이동을 설명하는 것이 현지 조사에 있어서 필수적인 항목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두 번째, 모스는 뒤르케임 학파의 사회 개념이 분해 불가능한 절대적 단위가 아니라는 점을 밝혀주고 있다. 흔히 뒤르케임의 ‘사회’는 불변의 신성화된 전체라는 오해를 받는다. <종교 생활의 기본 형태>는 사회 형태를 지탱하는 영을 숭배하는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을 보여주며, 이는 정형화된 모습으로 보인다. 그리고 <분류의 원시적 형태들>의 범주는 사회 제도에 맞추어 재단된 것처럼 보인다. 이 저작들은 변화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뒤르케임 학파는 사회의 변화에 대한 이론을 가지고 있으며, 그 변화는 생산 조직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모리스 홀바흐(Maurice Halbwach)의 공공 기억(public memory)에 대한 이론이나 조르쥬 다비(Georges Davy)의 고대 법률에 대한 연구들은 모두 현대 경제에서의 기능 분화의 증가에 의한 사회의 변화를 염두에 둔 이론들이다. 모스는 <증여론>에서 지적한 선물에 기반을 둔 체계의 산업 체제로의 대체도 이러한 맥락에 있다.
세 번째, 모스는 뒤르케임의 개인 관념을 발전시키고 있다. 뒤르케임은 개인 개념의 발달 과정을 상정하여서, 사회가 발달할수록 집단 표상이 느슨해지고 개인성의 영역이 확장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른바 원시 사회는 집단 표상에 의해 지배받으며 개인의 자기-이익의 영역이 부재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모스는 시장 경제 이전의 사회에도 실제적인 개인 개념이 존재했음을 <증여론>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 사회에는 개인 개념이 부재한 것이 아니라 현대의 산물인 이익 개념이 부재했을 뿐이다.
아울러서 모스는 시장 교환 이전의 사회 체제에서 개인의 이익이 종합되는 메커니즘으로서 선물의 순환(gift cycle)을 제시한다. 이는 뒤르케임의 ‘연대성’을 뛰어넘는 설명으로서 시장 경제에 있어서의 ‘보이지 않는 손’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선물은 공공의 연극(public drama)의 맥락에서 수여되며, 선물 경제는 공적인 존중, 명예의 배분, 종교적 제재의 장치들을 통해서 조절되기 때문에 시장 경제보다 투명성을 확보하게 된다. 모스가 제시한 선물 경제는 현대 사회와 대비하여 원시사회를 설명해내는 탁월한 비교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설명들, 예를 들어 전前문자적 사회, 단순한 사회, 전통 사회 등의 설명에 비해, 선물 경제라는 개념 속에는 시장 경제와의 비교에 필요한 여러 요소들, 즉 상징,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경제 등의 요소들이 포괄되어 있다.
 
모스의 연구는 특히 인류학의 영역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인류학자들은 사회의 여러 영역을 독립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하나의 현상으로서 전체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에번스프리차드는 누어족의 결혼을 통해 <증여론>에서 제기된 교환 관계를 입증하였다. 레비스트로스가 <친족 관계의 기본 유형>에서 여자 교환을 전全 상징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한편 인류학 너머에는 <증여론>의 관점이 제대로 수용되지 않고 있다. 더글러스는 그 이유로서 프랑스 사회학파와 영국 공리주의자들의 논쟁이 일차 대전 이후 퇴색했다는 시대적 상황을 지적한다. 그러나 최근에 양자 간의 논쟁이 반복될 조짐을 보이고 연대성이 최근의 정치 철학의 중심 주제로 부상하면서 모스의 통찰도 새로이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영국에서 사회적 다윈주의가 득세하면서 공리주의 이론이 다시 정치 결정의 분석틀로 채용되고 있다. 이 방법론은 기술적으로는 유용하지만 예전의 철학적 한계를 여전히 내포하고 있다. 모스의 연구는 이러한 방법론적인 개인주의에 대한 반성의 계기로서 현대에도 충분한 이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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