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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발제

기억, 이미지

by 방가房家 2023. 5. 12.

최근에 기억력이 놀라울 정도로 감퇴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내게 중요하고 가까이 존재하는 고유명사들이 떠오르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들이 반복되고 있다. 500기가 HDD를 쓰다가 120기가 SDD로 갈아탄 느낌이랄까. 나이가 들어서일까, 전신마취 수술을 한 적이 있어서일까, 여러 의문이 들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인터넷이라는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검색 덕분에 꼭 기억해내야 한다는 절박감이 사라진 이후로 머리가 급격히 나빠진 느낌이지만, 그건 사실 머리가 다른 데 쓰이고 있는 거라고 자위하는 중이다.
“기억”을 집필한 스티클러는 이런 사태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인간은 원시시대부터 기억을 외부의 사물에 심으며 살아왔다. 문화의 발전과 계승은 외부의 기억 매체 없이는 불가능했다. 기억은 머리라는 생물학적 기관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매체와 함께 하는 것이다. 매체 환경이 변하면 머리도 달라지는 것. 내 머리는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식으로 쓰이는 것이라고 위안을 삼아본다. 미디어 연구 용어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정리한 책 <Critical Terms for Media Studies>에서 “기억Memory”, “이미지Image”를 읽을 기회가 있어 읽은 내용을 아주 간단히 정리해둔다.
 


기억
Bernard Stiegler
 
인류는 석기시대 이래 기억을 지니는 물질들을 사용해왔다. 이러한 물질화된 기억, 외재화된 기억을 통한 회상은 플라톤의 주요 주제이기도 하다.(<파이드로스>를 찾아 읽을 것) 
기술의 발달에 따라 기억을 저장하는 환경이 변화하고 이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기억의 외재화外在化와 더불어 기억의 상실이 일어나고, 인간은 기억의 소비자로서 소외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정신의 기억과 죽은 기술의 기억을 대조하는 것은 극복되어야 한다. 고고학적 성과(Leroi-Gourhan)에 따르면 인간은 처음부터 살아있는 기억을 외재화해왔다. 기술적 환경, 상징적 환경의 발전을 통해 신체 외부에 기억을 저장하고 전승해왔다는 것이다. 이는 종래의 다윈의 입장보다는 라마르크의 입장에 가까운 주장이다. 비유기체적인 방법을 통해 문화가 전승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자의 발명으로부터 인쇄술, 19세기의 아날로그 기술, 20세기의 디지털 기술에 이르기까지 기억을 저장하는 방식의 중요한 변화들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기억과 망각의 정치학에 대한, 권력에 의해 기억의 자리가 구성되는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중요하게 부각된다. 현대 문화산업에서 선택의 과정을 통해 기억 속에 형성된(in-formed) 것만이 사건으로 존재한다. 현대 미디어는 충동을 사회적 에너지로 변환하는 기반(슈퍼에고) 자체를 붕괴하고 있다. 상징의 산업화를 통해 상징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분리되었으며, 이는 상징 자체의 파괴로 귀결된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 참여적인 기술로 인해 생산자와 소비자의 대립이라는 분열된 환경은 사라지고 있다. 이 시대는 통합된 기억 환경의 생태ecology of associated hypomnesic milieus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의 내용은 여기에 실린 다른 버전으로 볼 수 있다.
 

이미지
W. J. T. Mitchell
 
인류 역사에서 이미지는 숭배된 동시에 금지되었고, 고도의 예술성을 갖고 창조된 동시에 폭력적으로 파괴되기도 했다. 이 이중성은 유일신교 역사에 간직되어 있다.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나, 인간이 만든 이미지는 헛된 것이기에 만들어지지 말아야 했다. 십계명에서 우상을 강력하게 금지하지만, 역사적으로는 수많은 예외를 통해 이미지들이 제작되었다.
이미지의 홍수를 이룬다는 점에서 현대 매스미디어에서 이미지의 역할은 전통적인 역할과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미지 유형의 레퍼토리(관상, 인물, 정물, 풍경, 추상)는 어느 정도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미디어와 이미지의 관계는 기술 역사의 민감한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새로운 이미지 생산 수단의 발명에 의해 현재 ‘회화적 전환pictorial turn’을 맞이하고 있지만, 문자 발명 이후 현재까지를 미디어-이미지 관계를 통해 단절 없이 고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는 “이미지가 표상하는 감각적 유사성이라는 가치에 의해 무언가의 기호나 상징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이미지는 ‘처음다움firstnesses’, 즉 첫인상을 불러일으키는 색, 질감, 모양과 같은 고유한 속성을 지닌다. 
이미지는 모든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소통되는 콘텐츠로 유통되지만, 미디어 과정을 이차적으로 성찰하는 모델을 제시하기 위해 그 흐름으로부터 튀어나오기도 한다. 다시 말해 이미지는 미디어 문제의 중심이자 주변이다. 이미지는 항상 미디어 안에서 나타나고, 우리는 미디어의 이미지를 형성하지 않고서는 미디어를 이해할 수 없다.
‘디지털 이미지’에 관련해서 제기되는 우려로 조작성manipulation이 있다. 그러나 사진의 역사에서 이 문제는 원래부터 존재했다. 사실 사진을 진실과 연결시키는 것, 신뢰성을 부여하는 것은 진실에 대한 믿음faithfulness을 불러일으키는 감각적 현존, 처음다움이다. 디지털화가 가져온 변화는 이미지가 세계에 존재하는 조건의 변화인 것이다.
디지털이 이미지의 전통적인 의미를 고갈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미지가 몸의 활동과 뗄 수 없이 연결되어서 생긴 변화를 걱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지는 ‘항상’ 몸과 연결된 것이었다. 다만 기술적 발달에 의해 세계를 지각하는 다른 층위가 발견되어 왔을 뿐이다. 이미지가 몸과 연결되는 과정은 정보에 형태를 제공(in-form)해왔다. 어떻게 보면 디지털 시대의 우리의 상황은 원근법을 발견한 알베르티의 상황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새로운 기술이 이미지, 감각적인 처음다움, 유사성, 아날로그 코드를 소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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