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책을 다시 읽으면서 남긴 메모이다. 본문의 숫자는 다음 책의 쪽수를 가리킴.
Émile Durkheim, Karen E. Fields (tr.), The Elementary Forms of Religious Life (New York: Free Press, 1995); 에밀 뒤르케임, 노치준 & 민혜숙 옮김,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민영사, 1992), 서론.
서론
Ⅰ-1. 감동적인 처음 두 페이지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책을 통해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단순하고simple 원시적인primitive 종교를 연구하여 그 원리principle를 발견하고 설명explain하고자 한다.”(1/21)
일단 ‘원시적인primitive’과 ‘단순한simple’이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이른바 원시성에 대한 저자의 태도가 간명하게 제시되었다. 무엇보다도 뒤르케임은 종교를 ‘설명’하겠다고 선언한다. 당시까지 그 어떤 책도 이런 과감한 선언을 하고 그것을 실천한 예는 없었다. 그리고 이 책 이후로도 이 정도로 정교한 체계를 갖추어 종교를 설명한 책은 별로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 책의 목적이 시원적 종교(archaic religion)를 통해 “현재의 인간”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후에 엘리아데가 진행했던 프로젝트를 연상시킨다. 두 대가가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그 나름의 방식으로 진행하였는지를 비교해보는 것은 종교학사의 중요한 관건.
그는 원시종교를 통해 고등종교(현재의 제도종교)를 설명하는 것이 반발을 부를 것이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다. 그것은 유럽인들이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종교를 갖고 기독교를 설명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다. 그것은 원숭이를 통해 인류를 설명할 수 있다는 진화론에 대한 반감의 연장선상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도올 선생이 예수를 고등무당이라고 표현했을 때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느꼈던 반감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뒤르케임의 반론은 장중하기 그지없다.
“인간의 제도는 오류와 허위 위에 세워질 수 없다. 그랬다면 지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그것은 실재the real에 기반을 두며 그것을 표현한다.” “근본적으로 어떤 종교도 그릇되지 않다. 모두가 나름의 방식으로 옳은 것이다. 모든 종교는 주어진 인간 실존의 조건을 다른 방식으로 실현시키기 때문이다.……모두가 동등하게 종교적이다.”(2/23)
여기서 뒤르케임은 ‘실재reality’라는 종교학의 키워드를 사용한다.(실재에 대해서는 다음 글 참조: 성과 속에서 진과 속으로) 무엇보다도 모든 종교는 나름의 방식으로 옳은 것이라는 전제가 심금을 울린다. 종교학에서 하는 비교 작업(우열을 가리려고 하는 신학교의 비교종교학 말고)은 모두 이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다.
Ⅰ-2. 원시종교 연구의 장점
여기서 원시종교 연구가 종교의 기본 구조를 보여주는 데 유리한 점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자신의 연구가 “종교 기원이라는 오래된 문제를 새로운 조건 아래 다루는 것”(7, 주3/29)이라고 선언한다. 기원에 대한 물음이 연대기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인 것임도 분명히 해둔다.
“만일 기원의 의미를 절대적인 첫 시작으로 본다면, 이러한 물음에는 학문적인 것은 없으며 반드시 배제해야 할 것이다.”
작업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종교적 사유 및 행위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기반이 되는 항구적인 원인을 판별”하는 것이니까.
Ⅱ 지식사회학적 의의
이것은 이 연구의 부가적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 공간, 부류, 수, 원인, 실체, 인간 등의 범주들이 어디에서 기원하였는지 밝힐 수 있다는 것. 기존에는 경험론(영국 경험주의자들)이나 선험론(칸트의 범주론)이 범주에 대한 이론이었다. 뒤르케임은 칸트의 선험론 쪽에 서면서도 선험론에서 전제하는 범주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보이는 사회학적 설명을 제시하겠다고 예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