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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발제

성 패트릭 순례에서 성차와 권력의 문제

by 방가房家 2023. 5. 10.

빅터 터너의 <<Image and Pilgrimage in Christian Culture>>의 3장은 아일랜드의 성 패트릭 순례를 다룬다. 그 책을 읽을 때 이 논문을 찾아 읽었다. 터너에 대해 비판적인 연구자의 견해를 알기 위해서 참조한 것. 터너의 코뮤니타스 개념은 ‘평등한 공동체 안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저자는 아일랜드 순례에 이 개념을 적용하는 것을 비판한다. 그것은 현상을 다소 낭만화한다는 것이고, 그 안의 권력 관계라든지 성차의 문제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하는 글.

Dorethea R. French, “Ritual, Gender and Power Strategies: Male Pilgrimage to Saint Patrick's Purgatory,” <<Religion>> 24-2 (1994): 103-115.

터너의 연구에 의하면 순례는 입문식이나 통과의례와 같은 리미노이드 경험이다. 그의 도식에 따르면 순례자는 자신의 공동체의 구조에서 벗어나 성스러운 중심으로 여행을 떠나 리미널 혹은 문지방의 단계에 접어든다. 이 단계에서 개인은 터너가 반(反)구조라고 부르는 사회 관계의 새로운 상태를 체험한다. 이 반구조에서 성과 사회-경제적 지위의 고정된 상태가 무너지고 순례자는 일시적으로 코뮤니타스의 느낌을 공유하게 된다. 이러한 터너의 관점에 입각해서 많은 학자들이 중세의 순례가 사회경제적 격차를 완화하고 관용주의와 평등주의(ecumenism)를 진작시켰다고 이야기한다.(피터 브라운의 <<성인숭배>>도 예로 제시된다) 저자는 이러한 논의의 흐름에 반대하여 이 논문을 제시한다.
그녀는 성패트릭의 연옥에 관련된 12세기 자료들(Tractatus de Purgatorio Insulae Sanctorum)을 검토하면서, 순례에 참여한 사람은 사회적으로 한정된 계급의 사람들이었으며 따라서 순례는 계급적 차이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캐서린 벨의 다음의 제의 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제의화는 항상 누군가를 궁극적인 권력의 원천에 연결된 일련의 관계들 속에 서열화시킨다. 제의가 실제적인 의미에서 누군가에게 권력을 부여하든 박탈하든, 그것은 누군가가 특정하게 자리잡는 우주의 궁극적인 정합성을 제공한다”. 저자는 이러한 의례 이론이 순례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으며, 따라서 러프 더그의 제의는 사회적 구분과 권력 관계를 반영하고 강화시켜준다고 주장하고 싶어한다. 그녀는 순례에 대한 학문적 접근에 성과 권력 관계라는 두 관점이 추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Ⅰ. 성(性)
저자는, 러프 더그에서 행해지는 제의가 부족 사회의 입문식(그 중에서도 자발적인 남성 입문식)과 동일한 구조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즉, 러프 더그는 사회로부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장소). 그 곳에 가기 위해서는 험난한 여정을 거치며, 이것은 고난의 수행이다(진행과정). 러프 더그에 가기 위해서는 관구 주교의 허락을 맡아야 했다(자격요건). 순례에는 기사단이 조직되는 등 위험함이 강조되었으므로 여기에 여성의 참여는 전적으로 배제되었다.  그 외에도 연옥에의 입장이라는 의례적 죽음을 맞이한다는 점, 리미널한 사태의 체험이 환상(vision) 체험과는 달리 직접 몸을 매개로 해서 이루어진다는 점, 연옥에서 사자(死者)와의 관계맺음이 이루어진다는 것, 수행의 결과 죽음 공포의 극복이 이루어진다는 것, 그리고 이 극복(구원)을 통해 죽음과 재탄생의 은유적 순환이 성립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저자는 리미노이드 이론의 원천이 되는 부족사회의 입문식과 러프 더그 순례의 구조적 동일성을 주장함으로써 무엇을 의도하는 걸까? 순례에 코뮤니타스적 평등성을 적용하는데 반대하는 것을 넘어서서, 터너 이론의 근원적인 역설성을 들추어냄으로써 이론 자체를 흔드려는 것일까? 분명치가 않다) 이상에서 보듯 러프 더그 순례는 고통을 향유하고자 하는 남성들, 특히 기사계급들을 위한 제의였다. 이 고통의 향연에서 물론 타자들의 접근은 봉쇄되었다.

Ⅱ. 권력관계
12세기 이전의 성자의 섬(Saints Island)은 남녀를 불문한 수도승들이 내적인 순례를 향하던 장소였다. 12세기 후반에 러프 더그 순례의 ‘제의화’가 이루어진다. 이와 관련하여 이 시기에 일어난 일들은 다음 세가지이다. 첫째, 앵글로-노르만 아구스티누스회(Augustians)와 시토회(Cistercians)가 아일랜드에 설립되었다. 둘째, <Tractatus>가 시토 수도사들에 의해 간행되어서 성 패트릭의 연옥이 저승 세계로 통하는 통로로 전 유럽에 알려졌다. 셋째, 연옥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남성 엘리트들로 제한되었다.
이 제의화는 두 수도회의 주도로 이루어졌으며 그 중에서도 성 말라시(St. Malachy)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아일랜드 수도원의 개혁을 주장하면서 대륙의 엄격하고 금욕적인 계울을 도입한 인물이다. 수도원 엄격화의 분위기 속에서 연옥의 개념화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들이 낸 <Tractatus>는 유럽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실재하는 장소로서의 연옥의 존재를 널리 알렸다. 르 고프가 지적하듯이 12세기 이전의 신학자들은 장소로서의 연옥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 저작이 불러일으킨 인기는 이후 12-3세기 넘어가는 시점에 연옥 개념이 정립되는데 있어 기반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당대에 새로이 정립된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시토 수도사들은 연옥에 합법성과 고대성의 분위기를 불어넣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Tractatus>에 예수와 성 패트릭을 성자의 섬의 동굴에 관련시키는 이야기가 들어있는 것은 그래서이다.
연옥의 이러한 변화는 사회적 변화를 함축하는 것이다. 기어츠가 말하듯이, “제의는 세계의 상태가 우주적 가초를 지닌다고 거듭해서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패트릭의 연옥의 제의화는 사회의 군대화(militarization)와 관련을 맺는다. 원래 시토회는 남자들을 위한 영웅적인 종교적 삶이라는 개념을 배양해 온 종자들이다. 그들의 영수 베르나르(Bernard of Clairvaux)는 그리스도의 군사 기질을 신과 인간의 신비적 사랑과 결합한 인물이다. 이들에 의해서 템플 기사단(Knghts Templar)의 규율이 성지를 향한 순례자들을 규제하는데 사용된 것이다. 시토회원들은 새로운 군사 규율을 지원함으로써 무력에 의한 교회 방어를 합법화하는 데 기여한 엄격한 율법으로 조직화되어 있었다. 그들이 성패트릭의 연옥에 있는 군사적 고행의 순례라는 영웅적 상표를 흥행시킨 건 놀라운 게 아니다.

순례와 권력관계를 규명하고, 코뮤니타스 이론을 보충하려는 연구가 최근에 진행되고 있으며, 본 논문도 이러한 흐름의 하나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Conques에 있는 Saint Foy 사원의 제의 활동에 대한 Kathleen Ashley & Pamela Sheingorn의 연구. 스리랑카의 카타라가마 순례에 대한 Bryan Pfaffenberger의 연구. (스칸다 여신에 대한 순례는 타밀인과 신할리인들을 융합시키기보다는 분리시키는 쪽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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