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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발제

기원전 2천년대 메소포타미아 종교, 통치자로서의 신들

by 방가房家 2023. 5. 8.

아래는 야콥슨(Thorkild Jacobsen)의 <<The Treasures of Darkness: A History of Mesopotamian Religion>>의 3장 "기원전 2천년대 은유, 통치자로서의 신들: 하나의 정치체인 우주"를 번역한 것이다. 이 부분은 그리 길지는 않지만 메소포타미아의 정치 사회적 변화와 더불어 종교 문화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생동감있게 잘 서술한 중요한 대목이라고 생각된다.

이전에 숙제로 번역한 것이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다가 너무 말이 안돼는 부분이 많아서 많이 수정하였다. 내가 번역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욕이 많이 나왔다. 더 찾아서 고칠 부분이 있으니 계속 업데이트되지 않을까 예상됨.

 



바람잘 날 없는 시절

우리가 앞에서 이야기한 것은, 누미노스에 대한 매력과 두려움 사이에서 번민하는 인간이 어떻게 누미노스를 추구하거나 혹은 회피할 지 선택하는 요소를 도입하였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초기 풍요 제의들을 논의하면서 우리는 이러한 선택이 어떻게 상황에 따라 조건지어지게 되었는지를 보았다. 사람들이 봉헌하고 했던 힘들은, 그들의 생활이 의탁하는 상황과 현상에서 만나는 힘들이었으며 결핍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약속해주는 힘들이었다.
기원전 2천년대의 시작과 더불어, 항존(恒存)하는 배고픔의 공포만이 인간 조건의 불확실성을 일깨우는 주요인인 것은 아니게 되었다. 도적이 쳐들어올 때나 전쟁 때 칼에 맞아 급사(急死)하는 것도 배고픔만큼이나 무서운 위협이 되었다.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바로는 기원전 3천년대와 그 이전 시대는 비교적 평화로웠던 것 같다. 전쟁과 침략이 알려져 있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항상 있었던 것도 아니고 생존을 지배한 것도 아니었다. 기원전 2천년대에는 그것들이 일상의 질서가 된 것으로 보인다.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까지도 언제라도 적이 쳐들어올 수 있다는(어떤 전쟁 군주는 약탈물을 채우기 위해 메소포타미아를 가로지르는 운하를 이동하는 긴 선박들을 연결하기도 했다) 긴박감 때문에 삶이 불확실하고 안전하지 못했다. 여왕과 귀부인들은 항상 그들의 불쌍한 자매들과 마찬가지로 다음날이면 과부가 되고 집과 아이들을 잃고 야만인 가정에 잡혀가 종살이를 할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었다.

아! 내가 파멸한 날이여,
아! 내가 파멸한 날이여,
......
그날 그가 여기에, 집에 있던 내게 왔지
그날 그가 산에서 내려와 길을 통해 내게 왔지
그날 그 배가 강으로 내게로 왔지
그날 나를 향해 배가 내 부두에 정박했지
그날 배의 주인이 내게로 왔지
그날 그는 그 더러운 손을 내게 뻗었지
그날 그는 내게 외쳤지: “일어나, 배에 타!”
그날 재산은 빼앗겨 배 뒷켠에 실리고
그날 나는 가장 오싹한 공포에 벌벌 떨었지
적은 군홧발로 내 방을 짓밟았어!
그 적은 내게 더러운 손을 내밀었지!
그는 손을 내게 내밀고, 나를 위협했어!
적은 손을 내게 내밀어, 나를 공포에 죽도록 했어
적은 나를 협박했어. 나는 그를 협박하지 않았는데
적은 내 옷을 벗겨 자기 부인에게 입혔어
적은 내 보석줄을 끊어 자기 아이들에게 걸어주었어
난 그의 집 안에서 돌아다니는 팔자가 되었지

이 시의 화자인 여왕은 여신이고, 그녀가 묘사하는 공격은 (역사적) 시간 내에 위치시킬 수 있는 것이 못된다. 그러나 “내가 파멸한 날”에 대한 그녀의 쓰라린 기억은 초기 왕조 시대 많은 귀족 부인들의 것이기도 하다.
이 시대 위험의 강도(强度)는 도시들마다 둘러쳐져 있는 거대한 성벽들을 통해 가늠될 수 있을 것이다. 무시무시한 필요만이 성벽들이 말해주는 엄청난 노동을 쏟아 붇게 했을 테니 말이다. 이 필요는 이 시기의 새로운 주거 형태에도 잘 나타난다. 수메르 중앙 지역에 대한 로버트 아담스(Robert M. Adams)의 조사에 의해서, 초기 왕조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이전에 그 지역의 특징이었던 작은 개방 촌락들의 연합망이 사라졌다는 점이 밝혀졌다. 대신 마을 사람들이 성벽 뒤의 안전을 찾으면서, 지역의 대도시들이 성장하였다.


통치자 은유

이러한 위험들 속에서 사람들은 이제 생명에 있어 중요한 집단 보안의 제도, 즉 대연합과 관료들, 그리고 그 시기에 형태를 갖춘 왕권이라는 새로운 제도에서 안전을 찾을 수 있었다. 자료에 따르면 왕권은 원래 일시적인 직책이었다. 왕은 전쟁의 위협이 있을 때 뽑혔고 일단 긴급 상황이 끝나면 권위의 행사를 멈추었다. 이제 긴급 상황은 만성적인 것이 되었고, 왕이라는 직책은 이 때문에 종신직이 되었으며, 그래서 자신의 군대를 갖고 사람을 부리고 도시의 성벽을 유지하였다. 점차 모든 주요 공동 작업에 있어서의 지휘력은 왕에게 위임되었고 그에게서 통합되었다. 우룩의 통치자에게 바쳐진 전통적 문형의 헌사 안에는 그 시대에 대한 이야기가 보존되어 있는데, 그 글에는 성곽 도시의 수호자와 적의 격퇴자인 왕에 대한 신뢰가 표현되어 있다:

(도시) 우룩, 신들의 작품,
그리고 (그것의 사원) 에안나, 천상에서 내려온 사원...
그것들을 이루는 부분들을 만든 건 위대한 신들(자신)이다
거대한 벽이 수평선에 걸친 비구름이었던 것처럼
고귀한 거처가 안(An)에 의해 마련되었던 것처럼
(우룩과 에안나도) 당신에게 위임되었다,
당신은 왕이며 수호자이다!
머리를 깨부수는 자, 안의 사랑을 받는 왕자,
오! 그가 온 후에 얼마나 두려움을 불러 일으켰던가!
그들의 군대는 녹아 사라지고, 후방에 흩어졌다.
그들의 부하들은 그에 맞설 수 없었다.

새로운 열망과 함께 새로운 구원자상이 생성되었으니, 그것은 통치자이다. 통치자는 부하들 위에서 찬양받았고, 전사로서 두려운 이였고, 그의 명령에 깃든 권력으로 인해 대단한 분이었다.
새로운 통치자 개념이 당대의 사고에 미친 영향은 쉽게 어림하기 힘들 정도이다. 예술에서 이전의 제의적 모티브는 전쟁과 승리의 표현들에 자리를 내주었다. 문학에서는 새로운 형식인 서사 이야기가 신화와 나란히 자리잡았다. 서사시에서 통치자로 대표되는 인간은 영웅이며, 이야기는 그의 용기와 지혜를, 심지어는 신의 권위에 도전할 정도까지 찬양한다. 예를 들어 어느 이야기에서 길가메쉬는, 태양의 신이자 정의의 신인 이난나 오빠가 하지 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난나 편을 든다. 그에 대한 벌로 타봉(打棒)을 빼앗기고, 그래서 그의 충직한 부하 엔키두가 지하세계에서 그걸 되찾으려다 죽게 된다. “천상의 황소” 이야기에서는 길가메쉬가 이난나를 욕보인다. 후와나(Huwana)의 이야기에서는 길가메쉬가 엔릴의 산지기를 죽임으로써 그를 무시한다. “엔메르카와 아라타의 왕” 서사시에서는 아라타의 인간 통치자가 지혜를 짜내 그에게 알려진 이난나의 의지를 좌절시킨다. 그리고 조금도 성공하지 못한다. 인간과 그의 신에 도전하는 힘을 믿는 경향은 아가데(Agade) 시기까지 이어져 의욕이 넘치는 왕 나람신(Naramsîn)이라는 인물에서 가장 두드러진, 그러면서도 가장 경계(警戒)적인 표현으로 나타난다. 엔릴에 대한 나람신의 도전은 아가데의 파멸과 그의 통치의 종결로 귀결되었다.
신들에 대한 경배 부족과 교만이라는 이러한 경향을 맞이하여, 종교는, 우리가 방금 이야기한 예에서 보여지듯이, 결국엔 신이 농락당하지 않을 것이며 신의 보복은 확실하다고 단언하는 방법으로 대처하였다. 또 더 새로운 방식으로는, 비록 세속적인 기원을 가진 것이긴 해도 이 새로운 통치자 개념이 실질적으로는 이전에는 쉽사리 제시되지 않았던 누미노스의 중심 측면으로의 접근을 제시하였다는 통찰을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압도성”과 “활력(energy)"으로서의 전율(tremendum)의 측면의 누미노제이다. 우리가 앞 시기의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회로 상정한 작고 조밀한 촌락과 소도시 사회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사회 분화가 존재하지 않았고, 경외와 숭배의 감정이 발달할 기회도 그리 많이 주어지지 않았다. 왕이라는 한 인물에 권력이 집중되면서 경외와 위엄의 경험은 일상 생활에 들어왔다. 왕이 표상하는 독특한 권세는 새로운 것이었다. 그의 권세는 평화시나 전시에나 사회의 중심적 의지였다. 그는 모든 사물에 있어 추동력이었기 때문이다.
초기의 경제 상황으로부터 획득된, 매혹(fascinosum)에 주로 집중하는 옛 은유에 비해서 통치자라는 새로운 개념은 누미노스 경험을 더욱 심오하게 상기시키는 것을 가능케 한 만큼, 이 개념이 신에 대한 은유로 확대 적용된 것은 이해할만한 것이다. 두드러진 예가 닌기르수(Ningirsu)에 대한 라가쉬의 구데아의 기도이다. 이 기도는 우리가 다루고 있는 시대보다는 이후의 것으로, 통치자 은유의 초기 적용이라기보다는 통치자 은유와 자연에서 취해진 이전의 은유가 단순히 섞인 것에 가깝다. 닌기르수는 티그리스 강이 산악 지역의 지류로부터 내려온 적갈색의 빗물로 범람할 때 매년 발생하는 홍수와 폭풍우의 힘이다. 그는 “큰 산”, 폭풍의 신 엔릴의 첫 아들로 자리매김하는데, 엔릴의 명칭은 분명히 지류들이 흘러나온 동쪽 산을 언급하고 있다. 닌기르수는 꿈에서 구데아에게 자신의 신전을 지을 것을 명했지만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구데아는 기도한다:

오 나의 주인 닌기르수, 주여,
꽃이 떨어져 붉게 물든 수원(水原)의 물이여
전능한 주여, “큰 산”에서 나온 원천의 물이여
맞설 자 없는 영웅
닌기르수여, 나는 당신의 집을 지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어떤 식으로 할 지 모르겠습니다
전사여, 당신은 “마땅한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엔릴의 아들, 주 닌기르수여
일의 중심(heart)을 나는 모르겠나이다
당신의 마음(heart)은 바다(에서 일어나는 파도)처럼 일어나서
흩어지는 파도(가 부서지듯이)처럼 부서집니다
홍수의 물결처럼 도시를 파괴하며처럼 적의 나라로 폭풍처럼 돌진합니다
오 나의 주인이여, 당신의 마음을,
저항할 수 없는 (둑의 틈으로부터 나오는) 급류를,
전사여, 저 멀리 하늘처럼 (가닿을수 없고) 떨어진 당신의 마음을,
내가 어찌 알리오리까?

“주인”, “주”, 그리고 “전사”라는 용어로 표현되는 통치자 은유는 신이 경험되는 자연 환경의 한없는 힘에 특히 잘 들어맞는다. 그리고 기도자는 전율스런 신비(mysterium tremendum), 절대 타자, 산에서부터 휩쓸며 내려오는 홍수 물결의 무서운 힘에 대한 구데아의 경외를 적절하게 전한다.
통치자 개념과 마찬가지로 통치자 은유는 그 의미가 생성된 사회정치적 맥락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통치자로서의 신이라는 새로운 관점에 의해서, 통치자의 전체 정치적 맥락이 신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그리하여 -신들은 주변의 모든 주요한 현상들에 깃든 힘이기 때문에- 전체 현상 세계에 영향이 미치게 되었다. 우주가 하나의 정치체(polity)가 된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보이고 경험된 세계가 어떠했는지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가장 좁은 지역의 차원, 자신의 사원과 도시의 통치자로서의 신의 역할을 살피는 데서부터 시작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국가 정치적 무대에서의 시민으로서의 그들의 더욱 넓어진 의무와 기능을 볼 것이다.


영주 신

가정에서 더 중요한 신들은 단순하게도 영지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넓은 사원 대지를 관리하고, 밭갈고 씨뿌리고 수확하는 행위가 제 때 이루어지는지 감시하였으며, 영지에 속한 도시와 마을의 질서를 유지하였다.
기르수에 있는 닌기르수(Ningirsu)의 사원 엔니누(Enninu)는 그러한 신의 영지의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는 다양한 자료로부터 그 조직에 대해서 특별히 잘 알고 있다. 사원과 토지의 허드렛일은 기르수의 통치자의 지휘아래 행해졌다. 이와 비슷하게 신의 부인 바바(Baba)의 사원은 통치자의 부인에 의해 감독되었고, 신의 아이들의 사원은 통치자의 아이들, 혹은 아이들의 이름으로 감독되었다. 통치자는 방대한 인간 조력자들을 거느렸다. 어떤 이는 신의 식사를 준비하고 대접하며, 신의 옷을 돌보고, 신의 거처를 깨끗이 하는 등 매일의 제의를 수행하며 사원에서 일했다. 다른 이는 밭갈이, 씨뿌리기, 관개 사업, 추수, 어로, 그리고 당나귀, 소, 양, 염소를 돌보는 일 등을 감독하였다. 방아찧기, 방적, 모직은 남성 감독들도 있지만 대체로 여성 직원들의 몫이었다. 서기관과 회계는 수입과 지출을 면밀히 감시하였다.
수메르인들의 관점에서 인간은 약하고 신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에, 사원 안팎의 모든 인간 일꾼들이 신의 힘을 통해 힘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었다. 각각의 인간 노가다들은 인간 십장들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십장들 위에는 신 관료들이 작업을 지휘하고 인간의 노력에 성공을 불어넣어 주었다. 에니누의 일을 유지하는 것을 통해서 닌기르수를 위해 일했던 간부 신들의 완벽한 명단이, 구데아(우리가 이미 인용했던 닌기르수에게 바치는 기도를 한 기르수의 지도자)의 비문으로 우리에게 남아있다. 구데아는 어떻게 해서 조력자 신들을 새로 지은 사원의 관직에 임명하였는지를 이야기해준다. 이야기는 고위 관리직을 임명받은 닌기르수의 아들 이갈리마로부터 시작된다:
올바른 사람의 손을 올바르게 인도하기 위해서, 그러나 악인의 목덜미(neck-stock?)를 잡기 위해서, 집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 집을 쾌적하게 하기 위해서, 그의 도시, 영지 기르수에 법령을 포고하기 위해서, (구데아의) 손에 오래 지속되는 왕홀을 쥐어주기 위해서, 닌기르수라 불리는 양치기가 (달의) 노란 터번처럼 (당당하게) 고개를 쳐들게 하기 위해서, 맨살의 사람들(들판의 일꾼들), 린넨을 쓴 사람들(가정의 하인들), 그리고 머리에 뭘 쓴 사람들(관료들?)을 에니누의 안뜰에 자리를 잡아 배치시키기 위해서, 그(구데아)는 이갈리마, 즉 기르수의 고위 관리자이자 그의(닌기르수의) 사랑스런 아들을 울눈(성상안치소) 안의 주 닌기르수를 위한 의무를 수행하도록 한다. 커다란 문 잎사귀로서.
신 이갈리마-그의 이름은 “숭배 받는 이의 문 잎사귀”라는 의미를 지니는데-는 가장 신성한 장소, 울눈의 문의 인격화이다. 수메르인의 시적 상상력에 의해 그는 보호의 임무를 맡고 닌기르수의 고위 치안관이 되었다. 치안의 우두머리로서, 정의를 유지하고, 악인을 체포하고, 도시의 법령을 선포하고, 그리고 통치자가 재판을 할 때 그의 왕좌와 권위의 상징 왕홀을 지키는 것이 그의 의무였다. 이러한 이유로 그 자리는 “옥좌를 지키는 이”, 구잘라(g u z a l a)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갈리마는 또한, 추종자들이 모여드는 에니누의 안뜰을 관리하고 그들을 각각 줄 지워 자리잡게 하는 일을 맡기도 하였다.
이갈리마 다음에, 구데아는 닌기르수의 장손, 슐샤가나(Shulshagana)를 거명하고, 집사로서 그의 임무를 규정한다. 우리는 닌기르수의 가정에서 필요한 일들이 신의 “종복” 킨다지(Kindazi) 여신에 의해 돌보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신의 목욕을 준비하고 신의 침대에 신선한 건초가 갖추어져 있는지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슐샤가나는 대가정에서 장손이 으레 하듯이 음식과 밥먹기 전후에 손씻기 위한 물을 나르는 것을 감독한다. 닌기르수의 변덕스런 마음은 두 음악가 신들에 의해 달래진다. 한 명은 “가수” 우슘갈칼라마(Ushumgalkalama)로 자기와 같은 이름의 하프를 뜯으며 즐거움을 제공했고, 다른 한 명은 비가(悲歌) 가수 루갈리기후샴(Lugaligihusham)로 다른 종류의 하프를 뜯으며 음울한 기분일 때 위안을 주었다. “하녀”로는 닌기르수는 부인 바바와의 사이에서 난 일곱 딸(구름의 의인화)을 두었다. 그녀들의 특별한 일은 그에게 청원을 하는 것이었다.
신의 생활의 공적인, 행정적인 측면에는 “조언자” 신 루갈시사(Lugalsisa, 그의 이름은 “(잘못을) 바로잡는 왕”이라는 뜻이다)가 있었다. 그는 닌기르수가 저 멀리 에리두로 제의적 여행을 떠날 때 섭정으로 일했다. 신이 관심을 가져야 할 일들은 아무렇게나 그에게 던져지는 것은 아니라, 그의 “비서”(s u k k a l) 샤칸-샤바(Shakan-shabar)에 의해 준비되고 골라진 다음에 신에게 제출되었다. 내적인 법률과 질서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우리가 고위 관리직으로 정치적 기능을 살펴보았던, 신의 아들 이갈리마가 있었다. 바깥의 위협에 대해서는 닌기르수는 두 명의 “장군”, 루갈쿠르덥(Lugalkurdub)과 쿠르슈나부루암(Kurshunaburuam)을 두었는데, 물론 군대의 선두에는 그 자신이 전차를 타고 나섰다.
전차는 평화적인 용도도 갖고 있었다. 전차은 제의적 여행 때 닌기르수를 에리두를 행한 길 전부나 일부를 실어 날랐다. 전차를 끌었던 나귀 한 마리의 이름이 “에리두의 나귀”이기 때문이다. 이 녀석과 닌기르수의 다른 나귀들은 나귀지기 신 엔시그눈(Ensignun)에 의해 보살펴졌다. 반면에 다른 목동 신 엔룸림(Enlumlin)은 양치기로서 닌기르수를 섬겼다.
에니누에 속한 방대한 땅은 대부분 구에딘나(Guedinna)라고 불리는 비옥한 지역에 속한 것으로, 경작지, 습지, 그리고 사막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닌기르수의 밭갈이 신 기스바레(Gishbare)를 볼 수 있다. 또 어부들의 “세금 징수원” 라마르(Lamar) 신이 있는데, 그는 습지 산물이 윤택하도록 돌보고 닌기르수에게 정기선으로 돌아다니는 사절 이민샤탐(Iminshattam)을 보내 보고를 올린다. 마지막으로는 “삼림 감시원” 딤갈라브주(Dimgalabzu)가 있는데, 그의 역할은 구에디나의 경작되지 않은 지역의 야생 동물을 보호하여 금수들이 새끼를 낳아 기르고 번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신의 관념은 연속성과 혁신을 동시에 보여준다. 닌기르수는 여전히 봄의 뇌우와 티그리스강의 홍수에 존재하는 풍요의 힘이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경제 활동에서 토지의 생산적 관리자로서, 특별히 “밭갈이”로 직업적 형태를 갖는다. 이것은 그가 니누르타(Ninurta)라는 이름으로 엔릴의 사원 토지를 경작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엔릴의 “밭갈이”로 존재하는 니푸르에서 뚜렷이 보인다. 더 중요한 새로운 점은 정의에 대한 신의 관심과 수호자와 군사적 지도자로서의 그의 역할이다. 이러한 것들이 통치자 은유와 더불어 신에게 생긴 통치자 기능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왕권(n a m - l u g a l)은 전쟁의 지휘권에서 기인했다. 공격의 위협이 올 때, 젊은 귀족이 일시적으로 전투에서 공동체를 이끌었으며 긴급 상황 동안 최고의 권력을 수여받았다. 신이 통치자로서 여겨지게 되자, 그가 외부의 적으로부터 보호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엔테메나(Entemena)의 원뿔과 같은 초기 왕조 시대의 텍스트를 보면, 닌기르수가 기르수에 이웃한 영원한 적 움마(Umma)와 어떻게 싸웠는지를 알 수 있다. 유명한 독수리 돌기둥(Stele of Vulture)에서는 신이 그물을 적에게 던져서, 새잡이가 그물에 걸린 새를 잡듯이 적의 머리를 하나하나 철퇴로 부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초기의 왕권이 임시직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왕의 영향력과 권위가 긴급 상황이 끝남에 따라 약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젊은 왕들은 당연히 그들의 권력을 유지할 기회를 환영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권력의 자리를 도덕적으로 인정받는 방식으로 재확인할 수 있는, 성경의 의미로는 “판관”으로서 잘못을 바로잡는 일에 종사하기를 희망하였다. 통치자 은유는 또한 신을 향한 정의에 관해서도 적용되었다. 그래서 라가쉬의 우뤼님게나같은 통치자는 님기르수와의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부랑아와 과부들을 힘있는 자에게 넘기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의 언어는, 악인을 제지하고 난세와 닌기르수의 일반법에 주의를 기울였던 후대의 통치자 구데아에서 되울림하고 있다.
통치자 은유가 신들에게 부여한 확장되고 다양화된 관심들 때문에, 신이 인간에게 무엇을 바라는지가 여러 모로 애매해졌다. 이전의 견해에서는 누미노스를 “자동사적인”(intransitive) 것, 즉 본성상 현상이 존재하고자 하는 어떤 현상의 안과 이면에 존재하는 힘으로서 보았다. 이제 통치자로서의 신의 역할(토지 관리, 전쟁과 평화의 결정, 옳고 그름의 판결)은 모든 종류의 문제를 일으켰고, 문제를 풀 책임을 인간 통치자에게 의존하였다. 행위하기 전에 인간 통치자는 정확히 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그것도 확실히 알아야 했다. 공동체가 신의 분노나, 그 못지 않게 좋지 않은 신의 무시로 인해 고통받지 않도록, 그는 개인적으로 신이 원하는 바가 정확히 이행되는지를 살펴야 했다.
부분적으로 그러한 지식은 물론 전통으로부터 주어졌다. 신들은 확실히 그들의 사원이 보살펴지고, 그들의 제의가 올바르게 행해지고, 그들의 축제가 올바른 시기에 열리고,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람들로부터 주목과 경배를 받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그것들을 “표준”(standing) 질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이 전부가 아니었다. 상황은 신들의 의지가 그리 분명치 않은 쪽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신은 새로운 사제나 여사제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누구를 원하는가? 신은 그의 낡은 사원이 다시 지어지기를 지금 원하는가, 나중에 원하는가? 아니면 전혀 원하지 않는가? 신은 침략하는 이웃에 대하여 전쟁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외교적 수단을 썼으면 하는가? 물론 신은 사람들이 추측하기 힘든 그의 의지를 숨길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의지는 예언되어야 하고 실행되어야 한다.
그러한 경우(그것들을 “특수”(specific) 질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에 통치자는, 꿈이나 환상에서 나타난 신으로부터 온 메시지, 징후나 전조, 신에게 접근하여 할 수 있다면 답변을 얻어 낼 수 있는 전통적인 방식 등에 의존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구데아는 꿈에서 그가 닌기르수의 사원을 다시 지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자신의 해석 능력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해몽신 난쉐(Nanshe)에게 자신의 꿈의 상징적 의미의 설명을 부탁했다. 그녀의 조언을 좇아 그는 닌기르수로부터의 새로운 꿈의 메시지를 찾아내었다. 의미를 얻어낸 후에 그는 아이 하나를 살해해서 그 간의 모양을 통해 신의 의지를 읽어내고 확인 받는다. 그 중요성의 관점에서 볼 때, 점치는 기술이 번성하고 풍부하고 자세한 기술 문헌이 생성된 것은 놀랄 일이 못된다.

우주 관료들

영지의 수장으로서, 지역 공동체의 지도자로서의 역할 이외에도 주요 신들은 관직을 갖고 있었으며 국가의 혹은 우주의 무대에서 수행할 역할을 지녔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이러한 역할은 본질적으로 풍요의 힘이라는 옛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제 신의 내재적인 성격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안이나 엔릴과 같은 상위신이나 신들의 전체적 의회에 의해서 수여되는 의무이다. 그리하여 닌기르수/니누르타, 즉 봄의 뇌우의 힘은 단지 그의 내적 본질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우주적 관직에서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는 고원에서 엔릴을 위해 싸우는 그의 “전사”이다. 마찬가지로, 강과 습지의 맑은 물의 신 엔키는 이제 더 이상 그 물의 풍요의 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다음과 같은 의무를 지닌 관료이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의 깨끗한 입구를 청소하는 것,
푸르름을 풍성하게 하는 것,
구름을 짙게 만들어, 물을 모든 경작지에 풍부하게 제공하는 것,
낟알이 밭고랑에서 머리를 들게 하는 것,
그리고 사막의 목초지를 풍성하게 하는 것,
농장과 과수원의 묘목이 숲에 심겨진 것처럼 뻗어나게 하는 것.

엔릴 자신은 이제 더 이상 바람 속의 힘, “주의 바람”이 아니다. 그는 모든 바람을 관장하며 그들에게 그의 명령을 실행시킨다.
이러한 우주 관료들에 대한 용어는, 구데아가 하위 내정 관직에 사용한 용어인 메(me)와 동일하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우주의 조직은 다양한 일들을 지닌 토지의 조직에 상응한다. “엔키와 우주 질서”라고 불리는 신화에서, 우리는 어떻게 엔키가 바로 그러한 용어들을 써서 엔릴을 위한 우주를 조직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의 지배권을 설립하고, 신 엔빌루루(Enbilulu)를 “운하의 시찰관”으로 임명한다. 그리고 습지와 바다를 정리하고는 그것을 관장할 관료신을 임명한다. 다음에 그는 비를 조직화하여 이슈크르(Ishkur)에게 관장하게 한다. 그 뒤에 농업 분야의 임명이 뒤따른다. 경작, 관개, 추수는 농부 신 엔킴두(Enkimdu)와 곡물의 여신 에지누(Ezinu)에게 맡긴다. 농업 후에는 벽돌 제조와 건축가의 기술이 벽돌 신 쿨라(Kulla)와 건축가 신 무슈다마(Mushudama)에게 할당된다. 동일한 방법으로 엔키는 사막의 야생동물을 조직하고, 농업을 설립하고, 경계를 고정하고, 건축부지와 들판에 대한 한계를 설정하며, 직조(織造)를 설립한다. 그리고 각각의 경우마다 감독의 관료로 알맞은 신들을 임명한다.
엔키가 경계를 관장하는 신으로 앉힌 이는 정의의 태양신 우투(Utu)이며, 그가 맡은 책임의 보편적인 범위는 신화에서 “하늘과 땅에 대한”이라는 말로 강조되어 있다. 이 점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세계 모든 것들이 같은 원리와 같은 판단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모든 사람과 사물들이 동일한 원리 아래 있으며 정의에 입각한다는 이러한 개념은, 많은 면에서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이것은 “정의로운 전쟁”(just war)을 만들어냈다. 전쟁은 이제 법의 판결을 집행하는 힘의 사용과 동일시될 수 있었다. 그래서 엔테메나(Entemena)는 에안나툼의 우툼과 벌어진 성공적인 경계 전쟁에 대해서 엔릴의 “정의로운” 명령에 따라 닌기르수에 의해 수행된 것으로 소개하였다. 처음부터 엔릴은 기르수와 우툼의 영토 분쟁을 판결하였으며 그들 사이의 바른 경계를 확정하였다. 이 경계선이 이후에 우툼의 통치자에 의해서 침범 당했으며, 그래서 엔릴은 닌기르수에게 그의 명령을 시행하도록 명령한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아가데의 사르곤은, 루갈자께시(Lugalzaggesi)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격퇴하였을 때, 이것을 사르곤의 판례에 내려진 엔릴의 “심판”이라고 이야기하였다. 매우 전문적인 법률 용어들이 사용되었다. 우투헤갈(Utuhrgal)이 수메르 왕권을 참칭한 야만인 구티안에 대해 해방 전쟁을 일으켰을 때, 그는 대리인을 동반했다. 마치 재판에서 원고에게 그의 고소를 검토할 공식 “대리인”이 주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잘못한 사람에 대해 ‘법대로 하자’는 이 가능성은, 사람들을 해하는 악령이나 질병의 악귀의 해로운 행위를 다루는 주문들에 의해서 우주적 차원에서 사용되었다. 그러한 경우에 희생자는 악령들을, 밤에는 지하세계에서 심판을 하는 태양신 앞에 고소하거나, 혹은 길가메쉬와 지하세계의 다른 판관에게 고소하였다. 판관들은 악령과 귀신들을 체포해서 그들이 탈출해 나온 지하세계 감옥으로 돌려놓을 것을 요청 받았다. 고소하는 행위는, 월식에 관련된 악령에 의해 왕이 위협받을 때 왕을 정화하는 대(大) 빗림키(bît rimki) 의례에도 깔려있다. 일출(日出) 의례는 우투와 신들의 의회 앞에서 법복(法服)을 성장(盛裝)하는 형식을 취한다. 엔키는 평결이 실행될 것을 보장하는데, 이것이 소송 “보호하기”라고 알려진 기능이다.


궁극적 권력: 신들의 의회

메소포타미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권위는 신들의 의회였다. 사안이 발생하면, 신들의 의회는 우브-수-우킨나(U b - s u - u k k i n n a)라고 불리는 니푸르 에쿠르(Ekur, 엔릴의 사원이 거기 있다)의 전정(前庭) 한 쪽에서 개회되었다. 그리고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신들은 음식과 음료로 자신의 기운을 북돋곤 했다. 의회를 주재한 것은 하늘의 신 안(An)이었다. 신들은 의회에서 내린 결정을 지키겠다는 선서를 통해 다짐했다. 그러면 안건이 상정되고 그에 대해 투표를 했다. 각각의 신들은 헤암(h e a m), 즉 “그렇게 합시다"(so be it)라고 말함으로써 찬성을 나타냈다. 의회의 결정은 일곱 “명령의 신들”로서 최종 형태가 빚어지고, 결정의 수행은 주로 엔릴에게 주어졌다.
의회가 다룬 일은 기본적으로 두 종류였다. 의회는 신과 인간을 불문하고 잘못한 이에게 심판하고 판결을 내리는 재판소로서 기능하였다. 또 그것은 인간이든 신이든, 왕과 같은 공직을 선출하고 해임하는 권력기관이었다. 재판소로 기능한 두 예로는, 젊은 남자였을 때의 엔릴이 닌릴을 강간했을 때 그를 벌한 것과, 에누마 엘리쉬에서 반란을 선동한 킹구를 고발한 것이 있다. 선출하는 기능으로는, 에누마 엘리쉬에서 마르둑을 왕으로 뽑은 것이 있다. 반면에 이신-라사(Isin-Larsa) 시대의 많은 왕의 찬가에서 인간 왕을 선출하는 의회의 역할을 지적한다. 왕-인간이든 신이든-을 폐하는 권력은, 대(大) “우르에 대한 애도”에 현저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거기서 우르의 여신 닌갈(Ningal)은 그녀가 종말이 다가오는 느낌에 얼마나 괴로워했는지를 말하고 있다:

내가 그 폭풍의 날에 대해 슬퍼할 때,
내게 예정된 그 폭풍의 날을,
내게 놓여진, 눈물과 함께 무겁게,
내게 예정된 그 폭풍의 날,
눈물과 함께 무겁게 내게 놓여진, 여왕인 나에게,
내가 그 폭풍의 날에 떨고 있다 할지라도,
내게 예정된 그 폭풍의 날,
눈물과 함께 내게 무겁게 놓여진,
내게 예정된 그 잔인한 폭풍의 날
나는 그 날의 재난 앞에서 도망갈 수 없었네
폭풍의 홍수같은 파괴의 두려움이 나를 눌러오고,
그리고 밤에 갑자기 나의 침실에,
밤에 나의 침실에 꿈도 주어지지 않았네
그리고 갑자기 나의 침실에 망각,
나의 침실에 망각도 주어지지 않았네.
잔혹한 분노가 나의 대지에 예정되었기에
(구렁에 빠진) 송아지의 어미소처럼
나는 그 자리에서 어찌할 수 없었네
나는 내 백성들을 구렁에서 꺼낼 수 없었네
잔혹한 비애가 나의 도시에 예정되었기에
내가 새처럼 날개를 뻗었다 할지라도
(새처럼) 도시를 날아올랐다 해도
그러나 내 도시는 기초까지 멸망당했다네
그러나 우르는 있던 곳에서 사라졌네
폭풍의 날이 그 손을 들었기에
내가 소리지르고 울부짖는다 해도
“돌아가라, 오 나의 폭풍이여, 너의 사막으로”라고,
폭풍의 가슴은 나에게서 들려지지 않네
자신의 도시가 운명에 따라 버려지는 것을 내버려 둘 수 없었던 여신은, 헛되이 안과 엔릴에게 중재해달라고 노력해본다. 그러고서 결사적으로 그녀는 신의 의회에게 결정을 철회해 달라고 마지막 시도를 해 본다.
그렇다면 참으로, 의회에, 다수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곳에,
아누나키가 그들 자신을 (결정을 유보하도록) 묶어두며 자리에 앉아있을 동안
나는 내 발을 끌고, 팔을 뻗어
진정으로 안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네
진정으로 엔릴 앞에서 통곡했다네:
“내 도시가 멸망치 않도록 해주소서!”
난 진정 그들에게 말했지
“우르가 멸망치 않게 해주소서!” 나는 진정 그들에게 말했지
“나의 백성들이 죽지 않게 해주소서!” 나는 진정 그들에게 말했지
그러나 안은 절대로 그 말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어
그리고 엔릴은 안과는 달리 “괜찮다, 잘될 거야!”라고 하며 내 마음을 달랬지
(보아라) 그들은 도시가 멸망하였다는 가르침을 주었다네
(보아라) 그들은 우르가 멸망하였다는 가르침을 주었다네
그리고 운명의 방침으로 주민들도 죽어야 한다는 것을

도시의 운명은 결정되었고, 무시무시한 명령의 실행은 엔릴에게 넘겨진다. 우리가 아는 일어난 일을 평범한 언어로 진술한다면, 동쪽에서 온 거친 산악인들(엘람과 수아 사람들)이 수메르를 침략해서 우르를 포위 공격했고, 결국 주민들이 항복했을 때 그들은 도시를 무자비하게 약탈하고 불태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언어는 수메르인들이 알고 있는 바의 발생한 것을 전달하기에 부적절하다. 우주적 의미에서 우르를 멸망시킨 것은 엔릴의 요소인 폭풍으로 표현된 엔릴 자신의 파괴적 본성이다. 산에서 온 야만인 무리는 단지 본질이 표현된 우연한 형태일 뿐이며, 실체는 엔릴의 폭풍이다.

엔릴이 폭풍을 불렀다. 사람들은 흐느낀다.
많은 양의 바람을 그가 대지로부터 몰아왔다. 사람들은 흐느낀다.
수메르로부터는 선한 바람들을 앗아간다. 사람들은 흐느낀다.
악한 바람들이 그를 대리하였다. 사람들은 흐느낀다.
그것들을 폭풍의 관리인 킨갈루다에게 위임하였다.
그는 폭풍을 불러 대지를 박멸하였다. 사람들은 흐느낀다.
그는 재앙의 바람을 불렀다. 사람들은 흐느낀다.
엔릴은 기빌을 조수로 선택하면서 천상의 태풍을 불렀다. 사람들은 흐느낀다.
(눈먼) 태풍은 하늘을 통해 울부짖고. 사람들은 흐느낀다.
폭풍은 땅 위에서 으르렁거리며 대지를 파괴하였다. 사람들은 흐느낀다.
제방에 난 틈처럼 전정될 수 없는 격분이 마구 물어뜯으며 도시의 배를 삼킨다.
사람들은 흐느낀다.
그는 (큰) 불을 불러온 폭풍 속에서 밝힌다. 사람들은 흐느낀다.
화난 바람의 측면에 사막의 불탄 마음을 밝힌다. 사람들은 흐느낀다.
정오의 화염처럼 이 불은 타올랐다.
도시를 멸한 것은 이 폭풍이다:
미움에 찬 엔릴에 의해 명령된 폭풍,
나라를 갈아 없애는 폭풍,
옷처럼 우르를 뒤덮고, 린넨 천처럼 우르를 가리다.
그것이 깨끗이 물러갔을 때, 모든 것은 끝났다:
그날에 폭풍이 도시를 떠난다. 그 도시는 폐허였다.
오 아버지 난나여, 그 도시는 폐허로 남았나이다
사람들은 흐느낀다.
그날에 폭풍이 마을을 떠났다. 사람들은 흐느낀다.
사람들(의 시체)이, 질그릇 조각이 아니라,
진입로에 흩어져 있다.
성벽은 구멍나있고,
높은 문과 길들은 죽은자들로 가득 차있다.
축제의 군중들이 모여들었던 넓은 거리에는
죽은자들이 뒤범벅이 되어 누워있다.
모든 거리와 길에 몸뚱이들이 누워있다.
춤추는 사람들로 가득 차곤 했던 너른 벌판에는
사람들이 무더기로 쌓여있다.
마을의 피는 이제 주형의 금속처럼 마을의 구멍을 채웠다.
시체들은 태양 아래 버터처럼 흐믈흐믈해졌다.
신들의 의회는 결정을 내렸고, 결정은 실행되어야 했다.

통치자 은유의 상승이 이끌어간 지점을 살펴볼 때, 우리는 실존의 전반적인 관점이 바뀌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사물들이 스스로 발생했고 신들이 “자동사적인” 힘이었던 이전의 세계로부터, 우리가 자연이라고 부르는 것을 훨씬 넘어선 확장된 관심을 가진 신들에 의해 통치되는, 역동적으로 관리되는 계획적이고 목적이 있는 세계로 넘어간 것이다. 법과 도덕 질서의 수호자로서의 사회로, 승리와 패배를 결정하는 정치로 변화하였다. 그 신들이 역사를 움직이고 형성하게 되었다.
어떻게 이 새로운 관점이 우르의 파멸과 같이 거대한 역사적 재앙을 설명하는가? 그들의 운명을 정당화하는 희생자에서 죄악이나 과실을 찾아야 할까? 분명히 아니다. 우르 편에서의 과실의 문제는, 도시 신 난나/수엔이 우르를 대변해 아버지 엔릴에게 호소하는 또 다른 긴 애도에서 제기된다. 그는 말한다:

오, 나를 낳으신 아버지여!
나의 도시가 당신에게 무슨 짓을 했습니까?
왜 당신은 도시에서부터 등을 돌렸습니까?
오 엔릴이여! 나의 도시가 당신에게 무슨 짓을 했습니까?
왜 당신은 도시에서부터 등을 돌렸습니까?
첫 수확을 실은 배는 당신의 빵과 음식을 갖고서
더 이상 니푸르의 엔릴에게 가지 않습니다!
..............................
오, 나를 낳으신 아버지여!
내 도시를 고립에서 풀어 다시 당신 팔에 안기게 하소서!
오 엔릴이여! 내 도시를 고립에서 풀어 다시 당신 팔에 안기게 하소서!
내 (사원) 에키슈누갈을 고립에서 풀어 다시 당신 팔에 안기게 하소서!
우르에서 당신에 대한 명성이 나오게 하소서.
사람들이 당신을 위해 번창하게 하소서.
멸망당했던 수메르의 길이 당신을 위해 복원되도록 하소서!
엔릴은 대답으로 우르를 비난하지 않고, 단지 항상 폭력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것, 신은 사물이 영원하다는 보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할 따름이다:
엔릴은 그의 아들은 수엔에게 대답하였다:
“버려진 도시의 마음은 울고 있다.
애도의 갈대(피리에 쓰이는)가 거기서 자라나오니,
그 마음은 울고 있다,
애도의 갈대(피리에 쓰이는)가 거기서 자라나오니,
그 사람들은 울며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 고귀한 난나여, 네 자신을 돌보아라,
어떤 교환이 네게 눈물짓게 하였는가?
평결을 번복하는 일은 없다네, 의회의 명령을,
안과 엔릴의 지시는 항상 바뀐 적이 없다고 알려져있지.
우르는 진실로 왕권을 받았지만,
오랜 기간 받은 것은 아니었어.
예로부터 한 나라가 일단 세워지면,
지금 있는 곳으로 진행된다네
누가 왕의 지위의 기간을 완전한 것으로 보았는가?
그 왕권, 임기는 근절되었지. 도시는 슬퍼하겠지.
(너) 나의 난나여, 너는 슬퍼하지 마라.
너의 도시를 떠나라!

그렇다면 실상 정의, 즉 인간의 정의는 신들의 만장일치의 의지의 절대 권력 앞에서 빛이 바래는 것이다. 신들은 도전 받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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