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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문화/크리스마스

<윤치호 일기>에 기록된 크리스마스

by 방가房家 2007. 11. 30.
 1933년 12월 24일 일요일

크리스마스가 서울 여성층에게 또 하나의 석가탄신일이 되었다. 여성들은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여성들이 관심을 갖는 건 크리스마스가 쇼핑을 위한 또 하나의 핑곗거리이자 기회라는 사실이다. 김영섭 씨 말로는, 일본인들은 벌써 크리스마스를 그루시미마쓰(クルシミマス=苦しみます)라고 신소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윤치호, 김상태 편역, <<윤치호일기 1916-1943>>(역사비평사, 2001), 605-6.



1935년 12월 25일 수요일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미국인이나 영국인이, 조선 기독교인들이 크리스마스의 신성함에 대해 자기와 똑같은 감정이나 느낌을 가졌으면 하고, 아니 이 신성한 시즌을 기뻐했으면 하고 기대하는 게 가당키나 한가? 그건 분명히 가당치 않은 일이다. 감정이 원숙해지고, 풍부해지고, 신성화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조선인이 어느 과학분야에서는--지식의 영역에서는--최고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조선인들이 크리스마스에 대해 미국인이나 영국인과 똑같은 감정을 가질 수는 없다. 아니 바랄 수조차 없다. 왜내하면 그 감정은 영국인이나 미국인이게는 시와 소설, 역사, 전통,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정 생활을 통해 수세기를 거치면서 원숙해지고 풍부해지고 선성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우리의 일본인 통치자들도 자기들 요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본인들처럼 조선인들도 신도의 신성함에 대해 똑같은 감정이나 느낌을 가지길 바라거나 강요해서는 안된다.

윤치호, 김상태 편역, <<윤치호일기 1916-1943>>(역사비평사, 2001), 358-9.



1938년 12월 14일 수요일

조선 기독교인들이 중국에 파병되어 있는 일본군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위문대(慰問袋)를 보내는 운동은 그 발상 자체만으로도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그리고 만일 이 운동이 성공한다면, 기독교는 일본 군사당국의 호감을 사게 될 것이다. 12월 25일 이전에 2-5원을 서울 YMCA로 송금해달라고 요청하는 편지가 3500여 개가 넘는 전국 각지의 교회에 발송되었다. 이 운동을 추진하는 데 가장 주도적으로 나선 사람은 유억겸 군이었다. 신흥우는 이 운동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이 운동이 2원짜리 위문대 2천 자루를 준비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모으는 데 성공한다면, 그는 뻔뻔하게도 자기가 이 운동의 창시자요 완성자인 양 전면에 나설 것이다. 그는 아주 이기적인 모사꾼으로 정이 뚝 떨어지는 인간이다.

윤치호, 김상태 편역, <<윤치호일기 1916-1943>>(역사비평사, 2001), 4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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