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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선교사문헌

울프, "한국 방문"(1885)

by 방가房家 2010. 5. 22.
1885년 선교잡지에 실린 한국 방문기 내용의 일부. 한국종교에 관한 부분을 옮겼다.
J. R. Wolfe, "A Visit to Korea," <<The Foreign Missionary>> 44 (1885): 161-63.

울프:
성공회 부주교. Church Missionary Society(CMS) 소속으로 중국 푸조우Fuh-chow福州에서 활동하였다. 1886년에 부산에서 중국신자의 도움을 받아 선교본부를 임시로 개설한 적이 있다. 2년간 일하고 중국으로 돌아감. 그가 쓴 선교 호소 편지가 <<The Missionary at Home and Abroad>> 1888년 5월에 게재되어 호주의 경남지역 선교의 계기가 되었다.
그의 편지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http://www.kcnp.com/new2/read.asp?idx=070000196


[서울 여행과 한국에 대한 서술(161-62)]
……

(162-63)
나는 이 나라 어디에도, 혹은 서울 내의 어디에도 우상이라 우상을 모신 사원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흥미로웠고 놀라웠다. 사람들은 우상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았고 신들을 위한 사원을 세우지 않는 것 같았다. 도시 전체에 사원이 없었다.[다른 저자들에 의하면 이러한 진술은 너무 광범위한 면이 있다. -편집자] 한국인은 실질적으로 종교 체계가 전혀 없다. 불교는 왕국의 멀고 격리된 지역 이곳저곳에 흔적이 남아있긴 하지만 금지된 종교이다. 지난 5백년간 지배 왕조는 불교를 폭력적이고도 성공적으로 억압해서 사람들의 마음과 동정에서 불교를 완전히 제거했다. 유교는 종교 체계는 아니지만 사계층과 관료들의 지지를 받는다. 그러나 대중들에게는 영향력이 거의 없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매우 미신적이고 귀신을 무서워하는spirit-fearing 사람들이다. 그들은 죽은 영웅이나 사회적 은인들을 신격화하여 숭배하며, 죽은 조상에 대한 숭배는 전국적으로 행해진다. 중국에서 문명화의 노력을 마비시켰던 풍수 미신 역시 한국인들의 마음과 행동에 광범위하고도 유독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비의적 미신의 부적이나 담당자에게 의뢰하지 않고는, 어떤 집이나, 담장, 벽, 길도 지어지거나 생길 수 없다. 주물숭배fetichism 역시 광범위하게 행해진다. 그들이 좋아하는 나무와 돌들이 숭배되며, 신에게 바치기 위해 나뭇가지 위에 헝겊을 올려놓고 나무에 절하는 모습을 길가다가 흔히 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죄의 용서를 구하기 위해 산꼭대기에 둥근 돌을 가져와서는 돌이나 돌에 들어있다고 생각되는 귀신spirit에 절을 한 후 그곳에 돌을 남겨두고 온다. 유령과 귀신에 대한 공포 역시 가난에 찌든 사람들에 만연해 있다. 그들은 무서움을 없애거나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가장 유치한 방법에 의탁한다.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산길과 외딴집에 교수대 비슷한 틀이 세워지고, 거기에 딸랑거리는 종, 방울, 등유 깡통이 달리고, 이 소리가 귀신을 쫓아내고 치명적인 두려움을 일으킨다고 믿어진다. 누군가가 죽을 때는 숨이 다하기 전에 머리를 서쪽을 향하게 한다. 낡은 옷을 벗긴 후 새 옷을 입힌다. 죽어가는 이의 네 친구가 시신에 손가락을 올려놓는다. 그리고 나가 지붕 위에 서서 떠나는 영혼에게 돌아오라고 큰 소리로 외친다. 부인의 임종 시 남편은 있어서는 안 되고, 남편의 임종 시에도 부인이 있어서는 안 된다. 망자를 위한 애도 기간은 중국처럼 3년이다. 이 기간 동안 애도자들은 반쯤 접은 우산 모양의 큰 대나무나 버드나무 모자를, 얼굴과 상체를 가리기 위해 어깨까지 내려오게 써야 한다. 그들은 또 삼베옷을 입어야 하고 외출할 때는 얼굴을 삼베 부채로 가려야 한다. 또한 슬픔을 상징하는 복장을 한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은 예의 바르지 못한 행위로 간주된다. 몇 년 전 한국에서 로마 가톨릭이 무시무시하게 박해받던 시절에는, 사제가 이 풍습을 이용해서 조문 복장을 하고 감시를 피한 일도 있다. 그리고 신앙 때문에 많은 형제와 한국인 개종자들이 무참히 살육 당했을 때는 정말로 애도한 것도 있을 것이다. 수년 동안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이 방법으로 이 나라에서 감시를 피해 남아있었으며, 폭풍이 지나갈 때까지 박해받던 개종자들을 돌볼 수 있었다.
이들 고귀한 사람들의 신실함, 자기희생, 자기부정의 정신을 존중하고 부러워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선교지에서 도망가거나 이교도로부터 개종시킨 사람들을 버리지 않고 가장 잔혹한 고통과 죽음 앞에 자기 생명을 기꺼이 열정적으로 내놓았다. 나는 로마 가톨릭의 치명적인 잘못을 알고 증오한다. 또 교황 제도가 인간 영혼에 치명적인 독소로 가득함을 잘 안다. 그러나 나는 선교 사역을 버리기보다는 서울에 자기 생명을 바친 이 고귀한 영웅들의 업적을 조금이라도 폄하하려고 하는 비난에 절대로 힘을 더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의 그들 노력의 기록은 고귀한 영웅적 행위의 기록이며, 기독교가 창시자의 손으로부터 나와서 그리스도를 위한 정복이자 죽음을 맞이하는 날의 기록으로 의미가 있다. 아, 그토록 고귀한 신앙이 완전히 그릇된 체계를 위해 쓰이다니! 그러나 그들에게 영광이 있을지니라. 현재 한국에는 일곱 명의 로마 가톨릭 선교사들이 금욕적인 주교의 지휘 아래 일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필요하다면 성직과 더불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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