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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선교사문헌

"한국의 잔류물"(1900) 중에서

by 방가房家 2010. 5. 6.
헐버트의 다음 글에서 종교에 관련된 언급만 옮겨 놓았다.
Homer B. Hulbert, "Korean Survivals," <<Transactions of the Korean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1 (1900).
 
 
만약 한국이 당나라와 그 이후에 중국의 이념에 완전히 종속되었다면, 1500년이 지난 후 이 나라에는 토착적 기원이라든지 잔류물(survival)이라고 할 만한 것을 지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의 독특한 것이자 중국과는 구분되는 다른 측면을 제시할 것이다.(29)
 
<<문헌통고文獻通考>>에서는 고구려의 풍속과 관습을 자세히 묘사한다. 유교에 관한 내용은 없고, 토착 주물숭배와 샤머니즘에 대해 묘사한다. (32)
 
나는 한국이 대부분 중국의 종교 체계를 가져왔음을 말했다. 나는 유교 숭배가 서기 원년 조금 후에 한국에 소개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기독교가 영국에 처음 소개된 것과 같은 시기였다. 그러나 기독교는 유교가 한국에서 일으킨 것보다 훨씬 근본적인 변화를 영국에 일으켰다. 선사시대 영국의 고대 드루이드교 제의는 한국 원시 부족의 주물숭배에 밀접하게 상응한다. 주물숭배는 지금도 존재하고 있으며 한국인들의 종교적 믿음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한국 대중들에게 유교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한국의 주물숭배는 중국에서 온 것이 아니다. 이는 한국 고대부족에 대해 기술한 사람들이 말하는 바이고, 그들이 말하는 바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한국 미신들과도 상당히 일치한다. 한국에는 보름달과 초승달을 기념하는 축제가 있다. 한국에는 동물에 대한 숭배와 수많은 종류의 귀신(spirits) 숭배가 있다. 중국어의 유입 이전부터 한국인을 두렵게 했던 징조(omen)들은 고대 칼데아인, 페르시아인, 로마인들을 두렵게 했던 것과 동일하다. 일식, 운석, 바람의 울음, 도시의 야생동물, 예상치 못했던 자연의 다양한 현상들의 출현이 그것이다.(35)
 
한국인의 기질은 중국인과 일본인의 중간이다. 그는 중국인보다 충동적이지만 일본인보다는 덜하다. 그는 중국인의 이성주의와 일본인의 이상주의를 결합하였다. 일본의 이상주의적 성격에 의해 불교 신앙의 신비주의가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되었다. 한국인들은 그만큼 열정적인 불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불교 철학이 힘을 잃지 않게 할 정도의 이상주의는 지니고 있었다. 불교의 영향력은 더 심오한 기독교 신비주의를 만나게 될 때까지 지속되었던 것이다. 이 모든 점에서 한국인은 중국으로부터 두루 벗어나 있다. 나는 북경에서 20년간 중요한 자리에 있었던, 중국에 정통한 유럽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절치고 불교의 기초적인 내용조차 이해라는 승려가 있는 곳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예상할 수 있었던 바이고, 이는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해당되는 점이기도 하다. 한국 고유의 귀신론(demonology)은 불교와 결합해서, 서로를 분별해내기 힘든 복합적 종교(composite religion)를 형성하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불교의 형식 아래 네 근본적인 흐름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신비주의, 운명론fatalism, 염세주의pessimism, 정적주의quietism이다. 이것들이 한국인의 정서에 내재해 있음은 그들이 흔히 사용하는 표현을 통해 알 수 있다. “모르겠소”(I don't know)가 그들의 신비주의이다. “할 수 없소”(It can't be helped)가 그들의 운명론이다. “망하겠소”(going to the dogs)가 그들의 염세주의이다. “놉시다”(Let's knock off work)가 그들의 정적주의이다.(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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