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종교에 대한 선교사들의 일반적인 견해가 드러난 대표적인 글. 선교잡지의 기도 코너에 실린 내용.
"The Hour for Korea," <<The Foreign Missionary>> 44 (Sept., 1885): 153-56.
한국을 위한 기도 시간
“그들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떠나서, 페니키아와 사마리아를 거쳐가면서, 이방 사람들이 회개한 일을 이야기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곳의 모든 신도들을 매우 기쁘게 하였다.” (<사도행전> 15장 3절)
옛 로마 세계에서 그랬던 것처럼, 기독교가 모든 고대 신앙들이 부패한 상태에 있는 시기에 한국에 들어가고 있는 것은 크나큰 섭리이다. 최근에 이 나라에 들린 사람들을 모두 놀라게 했던 한 가지 사실은, 이 나라에는 이상하게도 하나의 두드러진 주도적 종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독교 반대편에 형성되어 있는 주된 종교는 의심할 여지 없이 기독교일 것이다. 유교는 유식 계층과 관료들의 종교―종교라고 할 수 있다면―이다. 이들 계층의 자부심이 유교에 기초해 있다. 그러나 유교는 기독교가 강력한 면이 취약하다. 유교는 하느님에 의존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심성에 호소할 가짜 하느님조차도 제시하는 일이 없다. 유교는 규율의 체계이다. 심성에 호소하는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탄생하시기 500년 전에 죽은 옛 철학자들에 대한 기억 말고는 아무런 동기도 없는, 신앙이라기보다는 법령의 체계인 것이다.
명목상 대중들의 종교는 불교이다. 마을과 산, 그리고 먼 지방에, 유명한 사찰 부근에는 불교 신앙의 힘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그러나 나라 전체로 보면 약화되었고 또 분명히 그렇게 될 것이다. 현재의 왕조는 오래 전부터 불교의 해체를 선포하였다. 실제로 도성과 관청이 있는 구역에서는 불교가 금지되었다. 어떤 지역에서는 절이 헛간보다 나을 게 없다. 승려들은 무식하고 경멸받는다.
사람들의 진정한 종교는 그들의 조상에 대한 숭배이다. 사람들은 또한 반은 주물숭배(fetichism)이고 반은 심령주의(spiritualism)인 수많은 미신들에 종속되어 있다. 도깨비(goblin)와 신선(genii)이 뒤범벅이 되어 있는 이 미신은, 서양 학문과 기독교의 계시라는 종합적인 도구 앞에서는 물론이고 초등학생 수준의 과학 앞에서도 유지될 수 없는 것들이다. 무지, 나태, 비도덕성, 퇴화, 이들이 선교에서 극복되어야 할 진짜 장애물이다. 그러나 이들이 위력적이라고 해도, 인도의 심오하고 설득력 있는 철학이라든지 이슬람 세계(Moslem lands)의 거만하고 포악한 광신에 비한다면 기독교에 큰 장애는 되지 못한다.
현재 한국의 빈곤함을 충분히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중국, 타르타르인, 일본의 침입을 연달아 받은 것, 기술자들의 강제 이동, 현 왕조의 가혹한 수탈의 결과가 함께 이 빈곤함에 영향을 미쳤다.
5백 년 전에 불교가 왕국의 발전을 도모하던 시대가 있었다. 당시 불교의 인간적이고 문명교화적 힘은 신선하고 강력한 것이었다. 건축, 농업, 유용한 공예가 발달해 4, 5세기 동안 정점에 달해 있었다. 실제로 한국은 일본에 종교, 문자, 예술을 전해주었다. 목제품, 다양한 면직물, 보석 세공품, 금은 갑옷, 각종 놋그릇, 자기, 향로, 촛대, 동종, 불상, 깃발, 나팔, 북, 나막신 등이 빼어난 모양의 도자기와 도공들과 함께 일본으로 전해졌다. 페르시아와 아라비아에서도 한국 예술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초기에 문화적 상상력과 물질적 발달의 자극이 되었던 불교의 영향은 결국 소진되었다. 불교는 제 역할을 다 했고, 유교가 들어왔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유교는 모든 발전의 적이었다. 발달은 멈추었고 이내 부패가 시작되었다.
이와 더불어, 유능한 한국인 기술자 가족과 부락들이 일본으로 이주하도록 설득 당하거나 강제되었다. 우리가 듣기로는 “학자, 교사, 천문학자, 승려, 의사뿐 아니라 뛰어난 기술의 남녀 도공, 예술가, 도예가”들이 중세 후기에 한국을 떠나 일본에 정착하였다. 프랑스 위그노파가 인접 국가나 영국에 기들의 기술을 전달한 것처럼, 한국인 도공과 기술자, 그리고 재단사와 원예사까지 일본 도시에 정착해서 일본인들이 거의 처음 배우는 것들을 전해주어 일본을 거듭나게 해주었다. 그러므로 현재 한국인들의 빈곤과 퇴보는 인종의 열등함이나 타고난 지능과 힘의 부족 때문이 아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초기 선교사들이 일본에서 볼 수 있는 문명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헵번 박사Dr. Hepburn가 말했듯이 그들은 일본의 초기 선교사들이 겪어야 했던 것보다 더 많은 불편을 겪도록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일본 이외의 지역에서도 그만한 역사와 미래를 지닌 곳에서 동아시아에서 기독교의 공격력을 배가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헵번 박사는 한국인의 민족적 정서가 일본보다는 중국에 가까울 것이라는 염려를 말한다. 즉 오랫동안 존재했던 강력한 반외국인 정서와 보수적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특별히 지금 일본에 있는 한국인들에 대해 언급한다. 그들은 자유정신과 진보적 개념을 가진 이들로, 돌아가 정부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면 선교 발전과 국가 진보를 위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망명자로, 권력을 지닌 정파에 의해 한국에 재입국이 금지된 상태이다. 그들 중 셋은 이미 미국에 가기 위해 일본을 출발했다. 그들은 모두 고위 관료들이다. 이 일이 환영받을 만한 것이 못 되고, 한국의 한 정파를 편드는 것처럼 보여 우리 선교 사업에 해로운 일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사람들이 미국에서 친구들을 만나 우리의 교육이나 정치,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독교에 대해 진정으로 알게 되도록 도움을 받았으면 한다. 우리는 최근에 한국을 방문한 영국 선교사의 이야기를 읽다가 다음과 같은 특징들에 대한 언급들을 거듭해서 만나게 되었다. “이 민족은 대단히 친절하고, 내게 도움을 주려는 착한 성품을 지녔다.” “그들은 모두 너무나도 예의가 발라, 항상 밭에서 나와 내게 인사를 했다.” “마을 사람들은 매우 친절했고, 그들의 호의를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주었다.” “이 민족은 매우 예의바르다. 거리에서 한 양반을 만나 길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매우 친절하게도 내가 원한 모든 것을 해주려고 했고, 친절하게도 내가 찾는 장소까지 걸어서 데려다 주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굶어 죽을 것 같은 나귀를 타고 진흙탕 길을 터벅터벅 길을 가고 있는, 헤매는 외로운 방랑자에게 어느 누가 한국인처럼 꾸준한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미국에서라면 외로운 중국 사람이 그런 곤궁에 처했을 때 이웃 사람들에게 그런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러나 한국 망명자들이 미국에 가게 될 때면, 그들이 부유한 귀족이건 절박한 추방자이건 간에, 우리는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들이고 기독교인의 여러 관심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숙소가 마련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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