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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교리

기독신보 1932년 7,8월 사설들

by 방가房家 2009. 1. 11.

이번에 본 내용들은 그저 그렇다. 여름이라 수양회, 강좌 등을 열심히 하자는 이야기가 주로이고 눈에 띄는 내용은 없다. 마지막에 실린 토마스 목사 기념관 사설에서 나오는 피의 은유가 강렬한 느낌을 주는 정도. 모르는 단어를 좀 익혔다. 그 중에서 ‘손도’라는 표현은 전공과 상관있는 단어다.
 
편의―대(便衣隊)[―/ ―이―]【명사】 예전에 중국에서, 무장하지 않고 평복으로 적지에 들어가, 후방을 교란하고 적의 상황을 살피던 부대.
손도(를) 맞다  【관용구】 오륜에 벗어난 행실이 있어서 그 지방에서 쫓겨나다. 남에게 배척을 당하다.

 
1932년 7월 6일 (제17권 제48호/제866호)
분류: 사설
제목: 實力을 길르자 -各修養會를 앞두고
이 복잡한 사회에서 완전한 인격을 갖추고 성공하려면 실력준비에 힘써야 하는데, 뜻 같은 이들이 모여서 수양을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연합공의회 주최로 교역자 수양회가, 조선감리교회 교육국 주최로 종교교육대회가, 장로회 종교교육부 주최로 종교교육 수양회가 있는데, 이것들이 대중에 보편적으로 시행되지 못하고 특수계급에서만 참여하게 되어 유감이다.  일반 대중을 지도하기에 넉넉히 준비할 것을 바란다.
 
1932년 7월 13일 (제17권 제49호/제867호)
분류: 사설
제목: 託兒所運動과 夜間講座 (特히 農村을 中心하고)
유무산의 구별과 유무식의 차등을 없이 하기 위해 우리는 근본운동에 헌신하여 하기아동학교, 림간학교, 문자보급운동 등을 해오고 있다. 여기서 다른 의견을 말하자면, 여름동안 농촌을 위한 탁아소를 설치할 것과 농촌에서 살고 문맹이나 상식을 갖지 못한 이들을 위해 저녁에 강좌를 가질 것을 제안한다.
 
1932년 7월 20일 (제17권 제50호/제868호)
분류: 사설
제목: 靈土擴張의 新戰策
우리는 하느님나라가 확장되기 위하여 투쟁하는 자들이다. 비관의 함정에 빠지거나 무비판 무관심에서 그렁그렁하는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비상이 필요한데, 그것은 편의대(便衣隊)적 단병접전(短兵接戰), 다시 말해 평신도들의 개인전도이다.
 
1932년 7월 27일 (제17권 제51호/제869호)
분류: 사설
제목: 相衝되는 二大勢力
현대생활에 미움과 사랑의 두 세력이 상충한다. 계급해방이나 여성해방을 철저히 부르짖는 신흥주의자들은 기성주의(旣成主義)자를 극도로 미워하며, 반면에 기성주의자들은 반대 세력을 막으려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편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미움의 세력들을 정복하는 사랑의 세력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인류에게 새 생명을 넣어주는 사랑의 세력의 확장을 위해 투철한 인식과 통일된 이론과 조직화된 활동이 필요하다.
 
1932년 8월 3일 (제17권 제52호/제870호)
분류: 사설
제목: 機會均等을 絶叫함 (夏期修養會 及 講演會 等을 보고)
여름철을 이용하여 각종 수양회가 열리는데, 어떤 수양회는 시기 관계로 어떤 수양회는 장소 문제로 참여하는 이가 많지 못하니 이는 준비한 정력이 아깝고 혜택을 두루 받지 못하는 것이다. 기회 균등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대중에게 고루 기회가 돌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1932년 8월 10일 (제17권 제33호/제871호)
분류: 사설
제목: 自力更生의 첫길(上) 「消極的으로는 虛禮廢止에」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시대를 알고 각성해야 한다. 각성 없이 사는 한 예가 허례를 숭상하여 관혼상제를 분수에 넘치게 하는 것이다. 초상이나 혼례를 치룰 때 동네사람들에게 과하게 쓰지 않으면 손도 맞은 집이 될 걱정을 한다. 이 허식을 타파하고 각성을 줄 이는 그리스도인뿐이다.
 
1932년 8월 17일 (제17권 제34호/제872호)
분류: 사설
제목: 自力更生의 첫길(下) 「積極的으로는 勤勞와 協同에」
우리는 조선 민중의 정신을 부흥시켜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살게 하는 책임을 지닌 자들이다. 교육을 받았다는 것들이 고등부랑자들로 살아가니 마을마다 놀고먹는 기생충들을 소탕하여야 할 것이며 일자리를 만들어 일하게 해야겠다. 마을에서 물건을 사고 팔 때는 한데 합하여 협동조합 형태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1932년 8월 24일 (제17권 제35호/제873호)
분류: 사설
제목: 農村傳道의 急務
농촌이 날로 피폐해져서 농촌진흥문제가 많이 대두된다. 교회에서는 1928년 예루살렘 국제 선교대회에서 농촌문제에 대한 결의가 있은 후 이 문제 해결에 여러 방법으로 노력중이다. 제일 급한 것은 농촌전도로 농민의 정신을 각성시키는 것이다. 어느 농촌에든지 커다란 예배당이 있지만 동리 사람들의 낮잠자는 곳이나 모든 죄악을 빚어내는 소굴이 되어버리고 만다. 교회당국자는 도시 전도보다 농촌 전도에 전력해야 한다. 농촌에서 자작농하면서 교회를 지도할 사람을 양성하고 교인의 공동 경작으로 전도인 생활에 안정을 얻게 해야 한다.
 
1932년 8월 24일 (제17권 제35호/제873호)
제목: 하기아동성경학교 동역자 제위께
필자: 具聖書
올해 여름아동성경학교에 대해 당국에서 금하는 곳이 여러 곳 있었다. 당국에서 오해가 있기 쉬운 것도 무리가 아니고 우리가 분명히 할 점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러분이 수고한 결과를 발표할 때가 되었는데, 본부에 들어온 보고는 별로 없으니 보고하여주기를 바람.
 
1932년 8월 31일 (제17권 제36호/제874호)
분류: 사설
제목: 순교자의 핏줄기
하느님의 뜻에 복종하는 핏줄기의 세력은 사람답지 못한 차별을 없이 하고 새로운 개벽을 시작하니, 이 피의 비린내를 마시는 자마다 이 피에 마음을 적시는 자마다 새사람으로 지어지는 것이다. 이 핏줄기에 깊이 감촉된 자들은 더 굵은 핏줄을 만들어 더 많이 물들이고 더 힘있게 냄새를 끼쳐서 현생활의 환경을 다시 만든다. 핏줄기와 이어진 이들의 가상한 표현을 종종 만나는데, 이를 통해 그들의 발자취를 묵상하고 따라가려고 노력하게 된다. 오는 9월에 헌당식을 하려고 준비 중인 도마스 목사의 기념당도 그 하나이다. 이 건물은 진실로 도마스 선교사가 그리스도의 피에 적시워서 체득한 희생의 피의 징상(徵狀)이다. 우리는 비석이 망두석화하지 말고, 동상이 사천왕화되지 말고, 기념당이 신당화되지 말도록 조심해야 한다. 소극적으로는 우상화를 경계할 것이며 적극적으로는 우리 각자가 기념품이 되어야 한다.
 
1932년 8월 31일 (제17권 제36호/제874호)
제목: 朝鮮基督敎史上(新敎) 唯一한 紀念聖堂인 도마스 紀念禮拜堂 落成
조선예수교장로회총회와 그 외 내외 각 단체들의 후원으로 1928년에 첫 사업인 도마스 목사의 전기를 발간하였고 지난 3월 8일에는 두 번째 사업인 예배당 건축을 착공하여 4개월 반의 공사 끝에 조선 기독교 신교사상의 유일한 기념성당인 예배당이 준공되었다.

지양  06.11.28 17:41 
저는 '신흥주의'와 '기성주의'라는 표현이 재미있네요. ^^
 
 
房家  06.11.28 19:09 
진보와 보수의 갈등을 다 미움의 세력이라고 싸잡아 비판하는 전형적인 양비론이 드러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衍塘  06.11.28 17:47 
8월 24일자 글의 '동리 사람들의 낮잠자는 곳'이 눈에 들어옵니다. 성전은 '성스러움'을 기반으로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일상'의 공간이 되어선 안된다는 법이라도 있는 걸까요.
(건물로서의) 교회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이런 의문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房家  06.11.28 19:14 
기본적인 의미는 시설이 방치되고 있다는 것을 개탄하는 표현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의미화시키던 간에, 건물주의 의도가 중요하겠죠. 법적인 소유권자가 자신의 의도대로 시설을 운영하겠다는 것이니까 뭐라 할 수 없지 않겠어요? 그게 일상적인 공간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법'이라면 법이겠지요.^^
 
피랑H  06.11.29 09:33 
순교의 핏줄기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이차돈이군요. 우윳빛 핏줄기가 하늘로 발사되고 머리는 휭 날아 떨어져서 그 자리에는 백률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 말이지요. 재밌는 것은 순교자의 피에는 항상 보상이 따른다는 것이에요. 순교를 했으니->이루어졌다. 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안했으면 정말 안되었을까? 싶기도 하고...어쨌든요. 아! 그 문장중에 <동상이 사천왕화 되지말고>의 사천왕은 절앞에 사천왕 말하는 거 맞나요?
 
 
房家  06.11.29 13:46 
그 사천왕 맞습니다. 절에 있는 것들을 우상으로 보는 사람들이 쓴 글입니다. 순교의 대가에 대해서는 여러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불교마저도 그럴 정도니. 반면에 기억되지 않는 죽음들도 많고, 죽어서 두고두고 욕먹는 죽음도 있고(마녀 사냥의 경우)... 죽음에 대해서는 참 할 말이 많죠. 어찌 보면 죽음이야말로 종교에게 가장 중요한 현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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