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원일, “사진의 보급과 의례문화의 변화”, 장석만 외, 《한국의 과학과 종교》, 들녘, 2019.
다른 글을 찾다가 옆에 있던 내 글도 보게 되었다. 몇 년 전에 쓰고 잊고 있었는데, 꽤 열심히 썼다는 생각을 새삼 하면서 보았다. 출판된 책이라 인용문 몇 개만 소개한다.
우리는 영정 사진 없는 장례식을 상상할 수 없다. 한국의 전통 장례를 잘 묘사한 영화 <축제>(1996)의 유교식 장례식에서도 사진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우리는 사진의 존재를 딱히 어색하게 여기지 않는다. 전통 장례절차 한복판에 사진이라는 현대의 기술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새삼스럽지 않다.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장례식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어떻게 이렇게 된 것일까?
선교사의 사진이 사용되는 가장 전형적인 방식은 선교 내러티브의 구성이다. 세계 다른 선교지와 마찬가지로, 한국에 온 선교사들이 찍은 선교 현장과 한국의 풍물 사진들은 본국에 보내어져 선교 성과를 보고하는 동시에 더 많은 선교 지원의 필요성을 시각적으로 인식시켜 후원금을 모금하는 데 사용되었다. 사진은 ‘암흑 속의 이교도’(heathen in his blindness)였던 한국인이 복음의 빛을 통해 구원받는 모습을 전달하는 효과적인 매체였다.

모든 한국인이 사진이라는 낯선 기술을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것은 아니었다. 사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양반 계층과는 달리 민중 계층에서는 사진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했다.…… 기본적으로 사진 거부는 사진이 가진 권력적 속성에 대한 본능적 반응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유교식 장례에서 사진 사용이 결정적으로 고착화된 것은 일제에 의해 제정된 ‘의례준칙’의 문구 때문이었다. 일본총독부는 1934년에 의례준칙을 제정하여 관혼상제 절차를 규정하였고, 허례허식을 철폐한다는 기본적인 논조는 해방 이후 한국 정부에서도 계승되어 가정의례준칙, 건전가정의례준칙을 통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1934년 의례준칙의 상례(喪禮) 항목의 영좌 절차에는 빈소에 영좌를 설치할 때 “지방(紙榜)이나 사진을 건다”고 명시되어 있다.……정부 공문서에 ‘사진’의 삽입은 일상 의례의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사진의 사용이 망자의 미지에 대한 기존 유교적 태도와 배치되는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례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중요한 것은 식을 올린 이들에게 원판사진이 혼인을 증명하는 증거력 있는 자료였다는 사실이다. 이 결혼식에서 혼인증서는 의례 절차에서 배제되었고 사진 촬영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