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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문화61

더글러스, 의례와 경험 "의례는 틀을 제공함으로써 주의를 집중시킨다. 의례는 기억을 되살리고 연관된 과거를 현재와 연결시킨다. 의례는 이 모든 것을 통해 지각을 돕는다. 그러므로 의례가 우리가 경험한 바를 더 생생하게 경험하도록 돕는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의례는 깡통과 상자를 개봉하기 위한 언어적 지시를 도식화한 도움 그림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만약 의례가 단지 일종의 이미 알려진 것의 감각적 지도나 도해라면 그것은 언제나 경험을 따라다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의례는 이러한 이차적 역할을 하는 게 아니다. 의례는 경험을 형성하는 데 선행할 수 있다. 의례는 그것이 없었다면 알려지지 않았을 지식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의례는 단순히 경험을 외적인 것으로 만들거나 대낮으로 끌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 2023. 5. 1.
절에서 지내는 제사 현재 절에서 지내는 천도재에 관한 논문에서 흥미로운 진술을 볼 수 있었다. 서울에 있는 한 절의 주지께서 하신 말씀. 제사를 점점 절에서 많이 지내는 추세죠. 이제 제사 많은 집 같은 경우에는 하루로 정해가지고 지내버리는 경우도 많아요, 벌써. 1년 제사 지낼 거를 쫙 모아서 하루에 다 잡아가지고 절에서, 아주 합동천도제로 해버리는 거야. 그런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그러는 날은 작은 아들은 교회 다녀, 셋째아들은 천주교 다녀, 하나는 뭐 절에 다녀, 가지각색이야. 막 요새 그렇다고 다종교시대니까. 그러니까 염불 하다보면 ‘하느님 아버지시여’ 하는 사람도 있고, ‘성부와 성자, 성신…’, 하하! (연구자: 큰절은 합니까?) 그런 사람은 큰절 안하죠. [구미래, “불교 천도재에 투영된 유교의 제사이념”, 편.. 2023. 4. 27.
구조와 역사의 잡음 구조주의는 역사적 변화를 설명하는 데 취약하다는 이야기를 가끔 듣는다. 심지어 구조기능주의는 사회의 변화보다는 정지된 상태를 설명하는 보수적인 이론이라는 이야기를 수업 시간에 들은 기억도 있다. 그러나 그런 설명은 너무 손쉬운 정리이다. 레비스트로스의 글에서 흥미로운 것은 역사와 구조가 일으키는 긴장이다. 구조는 공시적인 것이지만 통시적인 변화의 와중에 존재하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고려 없는 구조는 맥이 빠진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적 변화, 우연한 사건(event)이 구조 안에 어떻게 포섭되며 어떻게 구조를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레비스트로스 책에 언뜻 등장하지만 눈길을 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서양에서 들어온 물건들이 토템이라는 전통적인 분류체계 내에 배열되는 모습. 두 번째 이야기는 조금 더 .. 2023. 4. 26.
선교사 존스의 1902년 크리스마스 스케치 선교사 존스(George Heber Jones)의 자료를 뒤지던 중 그가 한국 크리스마스에 대해 기록한 짧은 글을 발견. George Heber Jones, "Christmas among the Koreans," Korea Review 2-2 (Feb., 1902). 1902년의 글로, 짧지만 당시 풍경에 대한 중요한 관찰들을 담고 있다. 그는 한국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벌써 자리잡았음을 이야기한다. 그는 한국에서 트리로 사용되는 소나무에 장수(長壽)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생(永生)의 약속과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덧붙이기까지 한다. 한국 초기 크리스마스의 특징적인 장식인 등불(lantern)에 대한 언급도 중요하다. 집집마다 등불을 하나씩 장만하여 교회 입구에 열지어 장식하는 모습은 불교에서 .. 2023. 4. 26.
200년 전의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싸움](Nissenbaum, Stephen, The Battle for Christmas, New York: Alfred A. Knopf, 1997.)이라는 책의 1장을 정리한 내용이다. 미국에서 크리스마스라는 새로운 명절이 어떻게 탄생하였는가를 다루는 흥미진진한 책이다. 1장의 내용은 크리스마스의 본고장 미국에서 크리스마스를 금지했던 짧지 않은 역사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내용이라 읽으면서 상당히 놀랐다. 게다가 200년 전의 크리스마스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지금과는 얼마나 다른 날이었는지! 충격적일 정도로 흥미로웠다. 번역하면 우리나라에서도 꽤 팔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내심 점찍어둔 책이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의 크리스마스를 머리 속에 떠올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이미 .. 2023. 4. 19.
할로윈 단상 (2004.11.6) 지난 할로윈 때 템피 시내를 돌아다녔다. 거리는 할로윈 복장을 차려입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잘생긴 남자들, 예쁜 여자들, 섹시한 복장들, 기기묘묘한 복장들 사이를 한시간이 넘도록 돌아다녔는데, 그 때 같이 갔던 친구가 사진을 찍은 것을 멋지게 편집해서 보내주어 여기 올린다. 옆의 사진은 화려한 할로윈의 행렬 사이에서 “지저스 크라이스트”를 외치는 아저씨의 모습이다. 이들에게 할로윈은 악마적이고 세속적인 행사에 다름 아니다. 대여섯 명의 교회 사람들이 나와 성서 말씀이 쓰인 피켓을 들고 설교를 하고 있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내 눈에 먼저 꽂히는 게 그들이었고 친구한테 사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을 했던 것이다. 연말이 되면 신촌에서 회개하고 예수 믿고 집에 빨리 들어가라고 .. 2023. 4. 18.
수신교과서의 제사, 우상, 귀신 근대 수신교과서 중 하나인 는 유근이 1908년 저술한 책이다. 60개의 주제마다 짧은 이야기, 그림, 생각할거리로 구성되어 있다. 유근은 장지연과 함께 주필로 활동한 지식인이고, 후에 대종교 교주로 활동한 인물이다.(한국민족백과사전 항목) 이 교과서에는 유교적 교양을 가졌으면서 합리적 지식인이었던 유근의 면모가 드러난다. 아이들을 위한 책이지만 던지는 질문의 깊이가 예사롭지 않다. 제20과 효행 부모의 제사를 극진히 모시는 어린아이의 예화를 든다. 그리고 만약 아이의 부모가 살아있었다면 아이의 효행이 어떠했을지 질문한다. 당시 기독교 쪽에서는 유교의 제사를 비판하면서, 살아계실 때 잘 모시는 것이 효도이지 돌아가신 후 드리는 제사는 헛된 것이라는 논리를 많이 사용하였다. 이 예화는 그러한 제사 비판에 .. 2023. 4. 17.
“보통교육 국민의범”의 ’의식‘ 1908년 발간된 예절 교과서 (普通敎育 國民儀範)은 일본의 수신서 (儀禮敎範)을 번역한 책이다. 일제가 ’국민‘의 몸짓을 규제하려는 의도에서 집필한 책으로 보아도 될 것 같다. 이 책에는 사회생활의 각종 예절이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엔 의례에 해당하는 내용도 꽤 있다. 당시 동서양의 의례, 예절들을 모아 소개하는 책들이 여럿 있는데, 이들은 의례 연구의 재료가 될 수 있다. 책의 21장은 ‘의식’이다. 학교 행사의 기본적인 규정들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4절에는 칙어 봉독을 할 때 최고의 경의를 표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일본의 교육칙어를 말한 것이리라. 심지어 칙어를 읽는 이는 양복(프록코트)를 읽는 것이 권장된다. 2023. 4. 17.
깨끗함에 관한 규례 제주시 조천읍 와산리에서 행해지는 멩감제에 대한 발표(윤순희 선생님) 중에서 제를 앞둔 분들이 몸을 깨끗이 하며 준비하는 모습에 대한 내용을 발췌해둔다. 제를 준비하는 태도는 다른 곳과 비슷하겠지만, 제주도 특유의 모습도 조금 보이는 것 같다. 제일祭日 일주일 전부터 올레(제주도 가옥에서 큰길로부터 집에 이르는 좁은 골목) ‘솟(금줄)’을 걸어 놓는다. ‘솟’은 본주가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정성스럽게 왼편으로 꼬아 만든다. 솟이 걸리면 가족들은 ‘몸정성’을 들인다. 몸정성 들이기는 네발 달린 육고기 금지, 가족끼리 싸움 금지, 부부관계 금지, 상가집 가지 않기, 화내지 않기 등이다.[사돈과 가까운 친척집에 초상이 났을 경우는 제일을 변경한다.] 외출은 되도록이면 삼가는데 길을 가다가 고양이나 개가 죽은 .. 2023. 4. 16.
크리스마스 수용에 관한 글에 부가할 자료들 8월달에 한 기독교단체 행사에서 “한국의 크리스마스 수용”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이 블로그에 있는 같은 제목의 글, 의 자료를 바탕으로 글이 되도록 새로 구성한 글로 내용상 새로운 점이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블로그에 올리지는 않았다. 요즘 접한 자료 중에서 미리 알았다면 그 글에 넣었으면 좋았겠다 싶은 것들이 눈에 들어와 여기 첨가해 놓는다.1. 글의 “2-2. 선교사들의 크리스마스와 선교지의 크리스마스”는 한국에 처음 들어왔던 개신교 선교사들이 그들 나름의 미국식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모습과, 그들의 크리스마스와는 달리 선교사 상황에서 요구된 크리스마스의 모습을 대조하는 부분이다. 선교사들이 처음에 본국의 관행에 충실한 그들끼리의 크리스마스를 즐기던(그리고 그것은 한국 교회에서 누려지던 것과는 다른 모.. 2023. 4. 16.
반의례적 냉소: 지붕킥 117회의 결혼 의 결혼 에피소드가 기다려진다는 글을 올린 바로 그 날에(시간으로 따지면 글을 올리기도 전) 결혼 에피소드가 방영되었다. 원래 일주일 정도 후에 재방송으로 을 보곤 했지만, 궁금해서 발 빠르게(?) 찾아보고 소회를 남겨 놓는다. (117회)의 결혼은 의 리나와 재환의 결혼식(이 글 참조)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순재-자옥의 결혼에는 리나-재환의 결혼에 등장했던 요소들이 더 악화된 형태로 등장한다. 거기에 없었던 요소들이 보태어져 최악의 상황을 연출한다. 리나-재환의 결혼이 수습된 형태로 끝난 반면, 순재-자옥의 결혼에선 결혼 의식에 대한 작가의 냉소(이것은 의 홍렬-종옥의 결혼에서 드러난 바 있다)가 극에 달해 수습되지 않은 채로 끝난다. 이런 냉소가 시청자에겐 달갑지 않을 것이다. “‘지붕킥’.. 2023. 4. 14.
의례의 효용: 지붕킥 104회 104회의 이순재-김자옥 에피소드는 의례의 효용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삶의 위기를 극복해주는 의례의 기능을 보여주었다고나 할까. 위기는 이순재가 엉덩이를 흔들며 노래 부르는 김자옥을 보며 싫증을 느낀 데서 비롯된다. 자옥은 순재의 싫증을 단박에 눈치 채었고 둘 사이는 서먹하게 된다. 곤란해진 순재는 의례(이벤트)의 힘에 의탁하여 위기를 모면하고자 한다. 사위 보석에게 이벤트를 준비할 것을 명령한다. 2023. 4. 14.
민정이의 '메리 크리스마스' 김병욱 피디는 여러 작품들을 통해서 크리스마스를 다루어왔다. 2006년 12월 22일 방영된 33회는 크리스마스 이브를 배경으로 하는데, 여기에는 그의 전작들에서 다루어진 소재들이 중첩되기도 해서 재미를 더해준다. 예를 들어, 33회 처음은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의 “점등식”으로 시작되는데, 이는 에서 노구(신구) 할아버지가 앞 동에서 나무를 잘라와서 장식을 하는 에피소드를 떠올리게 한다. 거기서 신구는 집안의 권력자로서 점등식이라는 의례의 주재자가 된다. 반면에 에서는 실질적 권력자가 아버지 이순재가 아니라 며느리 박해미이기 때문에, 박해미가 점등식을 주재하고 이순재는 오히려 의례에서 빠져있다. 의례의 한 장면을 통해 권력 관계를 명확히 그려보인다. 김병욱 작품 중에서 크리스마스를 가장 본격적으로 다룬 .. 2023. 4. 14.
베리 메리 크리스마스 2004년 12월 24일 엠비씨에서 방영된 베스트극장 606화 는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제작된 우리나라 드라마 중에서 수작에 속한다. 세 개의 소품들이 엮여 있는데, 각각의 이야기에서 크리스마스를 통한 화해를 그리고 있다. 전형적인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아니다. 화해의 정신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너무 교훈적이랄까 하는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화해가 우리 사회 곳곳을 가로질러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다시 말해 사회의 모습이 잘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괜찮은 크리스마스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전공상 내 관심을 끄는 것은 종교 간의 관계를 다룬 단연 세번째 이야기이다. 각각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첫번째 이야기는 가족간의 화해이다. 반항적인 딸과 재혼하려고 하는 어머니의 화해, 다른 측면에서는 딸과 어머니 .. 2023. 4. 14.
찰리 브라운의 크리스마스 (A Charlie Brown Christmas)는 1965년 제작된 찰리 브라운 시리즈의 크리스마스 특집이다. (위키의 항목을 참조할 것.) 이것은 처음으로 제작된 크리스마스 특집 만화였고, 방영되자마자 미국인들의 크리스마스 고전으로 자리잡았다. 미국인들의 대중문화 소비는 우리와 상당히 다른 점이 있는 데, 그들이 ‘클래식’이라고 부른 작품은 시즌이 될 때마다 반복적으로 향유된다. 아직도 많은 미국인들이 크리스마스가 되면 이 작품을 향유한다는 것은 이 기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The Lonely Tree”라는 올해 글에서도 나타나난 바, 미국인들은 지금도 이 작품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찰리 브라운은 왜 자신의 크리스마스가 행복하지 않을까 고민한다. 그는 즐겁게 노는 친구들에 끼어들지 못하고 .. 2023. 4.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