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의례문화/크리스마스

민정이의 '메리 크리스마스'

by 방가房家 2023. 4. 14.

김병욱 피디는 여러 작품들을 통해서 크리스마스를 다루어왔다. 2006년 12월 22일 방영된 <<거침없이 하이킥>> 33회는 크리스마스 이브를 배경으로 하는데, 여기에는 그의 전작들에서 다루어진 소재들이 중첩되기도 해서 재미를 더해준다.
예를 들어, 33회 처음은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의 “점등식”으로 시작되는데, 이는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노구(신구) 할아버지가 앞 동에서 나무를 잘라와서 장식을 하는 에피소드를 떠올리게 한다. 거기서 신구는 집안의 권력자로서 점등식이라는 의례의 주재자가 된다. 반면에 <<거침없이>>에서는 실질적 권력자가 아버지 이순재가 아니라 며느리 박해미이기 때문에, 박해미가 점등식을 주재하고 이순재는 오히려 의례에서 빠져있다. 의례의 한 장면을 통해 권력 관계를 명확히 그려보인다.


김병욱 작품 중에서 크리스마스를 가장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순풍산부인과>> 206회라고 생각된다. “미달이의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을 달아도 좋을 이 에피소드는 미달이의 관점에서 크리스마스의 풍경을 그린다. “크리스마스가 뭐 이래!”라는 미달이의 반복되는 투정이 이야기를 이끄는데, 여기에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나타난다. 이 에피소드는 1990년대 중반 한국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훌륭한 스케치로, 다음번에 따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거기에 나오는 산타에 대한 대화에 대해서는 이 글을 참조할 것.) 어쨌든 <<순풍>> 206회에 나오는 봉사의 주제, 특히 순풍 원장 오지명이 산타 분장을 하고 고아원을 찾았던 모습은 이번 <<거침없이>>에서 이순재의 산타 역할로 재현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절대 권력자였던 오지명 원장과는 달리 며느리의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움직이는 얼굴 마담으로서의 역할이다.
여기서 이순재 산타는 아이들을 윽박지르고 아이들 앞에서 정준호 루돌프를 패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아이에게 난폭한 행동을 보이고 조력자와 싸우는 산타 이야기는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아마 미국 드라마 <<Sienfield>>의 한 에피소드에서 가져온 내용이 아닌가 하는데 <<거침없이>>의 인물 구도에 잘 맞게 사용된 것 같다.

<<거침없이>> 33회의 압권은 민정이가 슬픈 표정으로 사람들에게 건네는 “메리 크리스마스”이다. 요즘 민정이를 보면 가슴 아프기 그지없다. 캐릭터 이미지 뒤집어 사용하기는 김병욱 피디의 장기인데(코미디언인 박미선과 이홍렬을 진지한 인물로 사용한다든지, <<웬만해선>>과 <<똑바로 살아라>>에서 노주현의 변신), 서민정은 <<똑바로 살아라>> 시절 세상의 아픔에 대해 면역되어 있던 소녀에서 <<거침없이>>에서 이루기 힘든 사랑을 하는 비운의 여인으로 변신해서 연일 눈물을 자아낸다. 이번 크리스마스 특집은 서민정의 슬픔을 극대화하여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슬픔에 빠져 있는 민정이가 슬픈 목소리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는 장면은 역설적 언어를 통해 크리스마스가 얼마나 슬픈 날인지를 잘 포착해낸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솔로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특집이다.
민정의 슬픔을 인상적으로 드러내는 명장면은 노래방에서 “울면 안돼”를 부르는 대목이다. 민정이는 선생님들의 노래 자리에 참석했다가, 문자 그대로 “저 노래 못해요”라고 사양했음에도 불구하고, 언어의 진정한 의미가 이해되지 못한 채 억지로 노래를 부르게 된다.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음치 민정의 캐롤이 불린다. 괴상한 음정의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슬픔의 정서는 풍부하게 표현되는 절창! 시끄러우면서도 슬프고 그러면서도 웃긴, 이 복합적인 감정을 모두 유발시키는 이 명장면이, 민정이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아래는 민정이의 바로 그 노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