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베사 데 바카(Alvar Núñez Cabeza de Vaca)는 스페인 원정대의 일원으로 아메리카 탐험에 참여하였다가 1528년 지금의 플로리다 지역에 난파당한 사람이다. 그 이후 8년 동안 그는 북미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다. 그는 북미 원주민들의 무리의 도움을 받아 생존할 수 있었으며, 그들과 어울려 지금의 뉴멕시코 지역까지 걸어서 이동하였고, 결국 멕시코 지역에서 스페인 원정대를 만나 돌아오게 된다.(그가 여행한 지역에 대해서는 아래의 지도를 클릭해서 확인해볼 것) 그는 거의 원주민 사회의 일원이 되다시피 생활하면서 경험한 일을 후에 책(Naugragios)으로 출판하는데, 이 책은 유럽에서 여행기로 인기를 끌어왔을 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당시의 문화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로 가치를 갖는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유럽인 최초의 아메리칸>>(숲, 2005)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있다. 고맙기 그지없는 일이다. [카베사 책의 원문과 영어 번역, 그리고 관련 자료와 연구들은 La Relación Online에 매우 잘 정리되어 있다.]
책에서 ‘기독교인’이라는 말로 유럽인을 지칭한다. 그러므로 탐험 초 카베사와 그의 동료들은 ‘기독교인’이다. 그런데 8년간의 탐험(여행 혹은 고생)이 끝난 후 ‘우리’의 범위는 인간으로서 정을 느끼게 된 원주민들로 확장이 되었고, 드디어 찾고 찾던 ‘기독교인’들을 만났을 때 우리의 경계가 달라져 있음이 확연히 드러난다. 우리와 기독교인이 구분되고 있으며, 이 지점에서 카베자는 난폭한 '기독교인'이 아니라 원주민 사회의 상징 세계를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기독교인들과 심하게 말다툼을 벌였다. 기독교인들이 우리와 함께 왔던 인디언들을 노예로 끌고가려 했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기독교인과 함께 길을 떠나며 그동안 가지고 다니던 터키석으로 만든 활과 가죽주머니 그리고 화살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182)
서양 사회로 돌아온 카베사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것은 원래의 기독교인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돌아왔을 때의 낯섦은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그때서야 우리는 우리 몸에 걸칠 만한 옷도 받았지만 나는 오랫동안 그 옷을 입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나는 한참을 마룻바닥에서 자야만 했다. 침대에서는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195-6)
카베사가 원주민 사회에 적응하는 모습이 이 책의 핵심이라 하겠다. 처음에 그는 상인으로서 여러 부족 사이를 왕래하며 필요한 물건을 갖다주고 먹을 것을 얻는 식으로 지낸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원주민 사회의 주술의(呪術醫)의 역할을 하게된다. 원주민들이 환자를 데려 오면 그는 성호를 그러주고 기도를 하였고 그것이 효험(!)을 보고 소문이 돌아 그는 원주민 부락을 옮겨다니며 치료를 해주는 일을 하였다. 그에게 치료 도구가 있었을리 만무하고 그야말로 기도를 드리고 편히 쉬게 하는 말 그대로 주술을 행한 것인데, 그것이 원주민들에게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이 대목에 대해서는 나중에 분석적인 연구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그는 한 예외적인 장면에서는 수술을 하기도 했고, 그 기적으로 인해 사람들을 몰고 다니는데, 예수의 행적을 방불케 하는 이 모습이 여행기의 하이라이트라고 하겠다. 20세기 화가 데 그루지아가 이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였는데, 이 그림들은 여행기 못지 않은 감동을 전해준다. (나는 투산에 있는 그루지아의 미술관에 가본 적이 있다.)
그가 기독교인들에게 복귀한 후, 멜토르 디아즈의 전도를 도운 이야기가 끝에 나온다. 디아즈는 원주민들에게 천국과 지옥에 대해 설명하고, 기독교인이 되어 우리가 명령하는 대로 하느님께 봉사한다면 우리는 인디언들을 형제로서 잘 대해주겠다고 이야기한다. (189-190)
이에 대하여 인디언들은 통역관을 통해 자기들의 의사를 전해왔다. 선량한 기독교인이 되어 하느님을 섬기며 살아가겠노라고 결정했다는 것이다. 인디언들은 하느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어떻게 제물을 바쳐야 하는지도 물어왔다. 옥수수를 경작하기 위한 물을 과연 누구에게 달라고 빌어야 하는지 그리고 건강을 달라도 누구에게 빌어야 하는지도 물어왔다. 우리는 인디언들에게 하늘에 계신 분에 빌라고 이야기했다.(190)
이어서,
우리는 인디언들에게 하늘에 계신 분을 그들만의 이름으로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인디언들은 ‘아구아르’라고 대답하면서 바로 이분이 이 세상과 이세상에 있는 모든 만물을 창조하고 길러내는 것으로 믿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인디언들은 물을 비롯해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아구아르’가 보내준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우리는 인디언들에게 바로 그 분이 우리가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니 앞으로는 ‘하느님’이라고 부르라고 시키며 하느님께 봉사하고 경배하라고 전했다. 인디언들은 우리가 시킨 그대로 잘할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 이 모든 것을 마음 속 깊이 이해하고 있으니 인디언들 자신은 그 실천도 어렵지 않다는 것이었다. (190-1)
이상의 선교의 대화, 그 안의 상호 이해와 오해는 어느 정도 전형적인 것이기도 하다. 내 독서의 목적인 이러한 소통과정에 대한 분석인데, 그러나 이 부분은, 생생한 그의 경험의 기록에 비추어 본다면 이 책의 부록 정도에 해당되는 내용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