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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공부/기독교세계

그 많던 조상들은 어디로 갔나?

by 방가房家 2023. 5. 26.

1.
고린토인들에게 보내는 바울의 편지는 고린토 교회 공동체의 여러 실질적인 문제들이 많이 다루어지는 서한이다.
이 편지의 15장 29절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다. 예수님의 부활이 실제적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지 않는다면,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무엇 하려고 그런 일을 합니까? 죽은 사람이 정말로 살아나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그들은 죽은 사람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습니까?

그는 “죽은 사람을 위한 세례”를 언급하고 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마도 고린토 교인들은 예수 이전에 죽은, 그래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지 못한 자기 조상들을 대신하여 세례를 행하였을 것이다. 이 대리 세례에 대한 언급은, 신약 성서 다른 어디서도 나오지 않는다. 이후 기독교 역사로 미루어 보건대, 이러한 세례는 이단적인 것으로 여겨져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바울의 서신 말고는 당시 고린토 교인에 대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그 정도로 추측해 볼 따름이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의 관행을 특별히 문제삼지 않는다. 오히려 그 관행을 인정하고, 때문에 부활이 그저 영적인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는(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육체적인” 부활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적인 사건임을 논증하는데 이용하고 있다. 그 점 때문에(이단시하지 않기 때문에) 이 구절은 지금 교인들에게 좀 당혹스럽다.
2.
한국 기독교인이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이런 것이다.
“세종대왕은 천국에 가셨나요?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지금 어디 계신가요?”

기독교에 비판적인 한국인들은 아마 위의 질문을 많이 던져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시원한 대답을 기독교인들에게 얻어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 질문을 받는 한국 개신교인은 딜레마에 빠진다. 자신의 신학 지식에 대입해보면 답은 뻔하다. “지옥에 갔죠.” 그런데 당연히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 상대방의 정서적 거부감을 감당할 수 없으며, 교인 자신도 확신을 갖고 말하기엔 망설여지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 개신교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다. 조상과의 유대감이 강하고, 그것이 사회 구성원리이기도 한 한국 사회에서, 이 부분을 한국 개신교의 약점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3.
한국인과 똑같지는 않지만, 고린토인들은 비슷한 문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결방법을 찾은 것이다. “인간적으로 생각해서” 세례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조상들이 지옥에 가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들은 독특한 세례를 행하였을 것이다.
종교사에서 “림보”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구약에 나오는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 훌륭한 분들이 예수의 복음을 듣고 세례받지 못해서 지옥에 갔다는 게 말이 되나? 태어나자마자 죽은 애기는 어떻게 되는 건가? 죄지을 시간도 없는 걔네들이 지옥에 가는 건 불공평하지 않나? 이러한 까다로운 물음들에 답하기 위해, 그런 사람들은 림보라는 어정쩡한 공간에 있다가 따로 구원을 받을 기회가 주어진다고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4.

위에서 나는 한국 개신교의 약점이라고 말하며 가톨릭은 슬몃 빼버렸다. 왜냐하면, 완전한 것은 아니더라도, 가톨릭인들은 이 문제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신학적인 개구멍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가톨릭의 내세관은 연옥을 포함한 삼분법적인 세계관이다. 기본적으로 연옥은 지극히 선하지도, 지극히 악하지도 않은 보통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림보 비슷하게 복음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훌륭한 옛 어른을 위해 활용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단테의 신곡을 보면 그가 존경했던 그리스 현인들이, 차마 지옥의 자리에 배치되지는 않았고, 연옥의 한 자리에서 배치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승인을 받은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신학 개념이다. 이 개념에 따르면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도 구원의 길은 막혀 있지 않다. 이것은 복음을 만나지 않았던 우리 조상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다.

5.
이 문제에 대하여, 고린토인과 비슷한, 특이한 입장을 보이는 종파가 있다. 몰몬교이다. 그들은 “대리 침례 의식”을 주장한다. 그들은 개인의 구원을 주장하지 않고, 침례를 통한 가족 공동체의 구원을 주장한다. 그들의 문건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지상의 인간에 있어서도 가장 깊은 사랑은 그 가족 즉 부인과 자식들에 대한 것이다. 따라서 사랑하는 부모는 그 자녀와의 생활이 죽음과 함께 분리되지 않고 영원히 지속되는 관계로 남아 있기를 바라고 그와 같은 상태는 인간에게 가장 행복한 상태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끊이지 않는 가족 관계의 인봉은 마침내 한 조상으로 연결되고 그러므로 말일성도는 이 세상에 태어났던 또는 태어나는 모든 사람에게 모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들도 이 지상에서의 인봉 축복을 받기를 희망한다.
이미 복음을 모르고 죽은 선조들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는 데(요한 3:5) 이 침례 의식은 지상에서만 가능한 의식으로써 대리 침례의식에 의해서 만이 죽은 자들의 영혼이 구제될 수 있다. (고린도전서 15:29) 따라서 돌아가신 선조들을 위해 대리 침례와 가족으로서의 영원한 인봉 의식을 하기 위해서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교회 회원들은 계보사업을 통하여 죽은 선조와 혈족을 찾아 그 사람의 이름으로 그 사람을 위하여 신성한 성전에서 대리 침례 의식 또는 남편과 아내 간의 영원한 결혼의식, 부모와 자식간의 인봉 등을 함으로써 그들이 구원의 축복과 하나님의 자녀로 받을 수 있는 모든 축복을 받도록 하여 주고 있다.

조상을 지옥에 보내야 하는 한국 교인의 딜레마를 해소하는, 거의 맞춤형 교리라고 불러도 좋을듯하다. 나는 아직 한국의 몰몬교인을 만나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본적이 없다. 하지만 이 부분은 한국 교인의 입맛에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몰몬교 선교사들은 이런 한국적 정황을 제대로 파악하여 선교 전략에 활용하고 있을까? 잘 모르겠다. 몰몬교는 이와 연관되어 조상 찾기 운동, 다시 말해 족보 만들기 운동을 한다. 역시 한국 상황과 친화성이 있는 대목이다. 이런 부분을 기반으로 토착화된 강력한 몰몬교를 일구어낼 수 있는 역량이 한국 몰몬 교회에 있는지는, 앞으로 두고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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