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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공부/기독교세계

기독교와 술 3

by 방가房家 2023. 5. 26.
보수적인 한국 개신교인에게, 금주는 기독교인이 되기 위한 불가침의 전제이다. 어찌하다가 그리되었을까? 그 역사적 과정을 되짚어 보아야 한다.
간단히 얘기하자면, 청교도의 유산을 지닌 미국 교회에서 강력한 금주 운동이 일어났고, 그 운동의 에토스를 지닌 사람들이 한국에 개신교를 세웠기 때문에 한국 개신교가 술 안먹는 종교가 된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미국 선교사들에게서, “기독교는 술 안 먹는 종교”라고 배웠고, 그 배움을 곧이곧대로 간직해왔다. 1차적으로는 한국에 온 선교사들이 술에 대해 엄격히 금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큰 영향을 받았고, 2차적으로는 일제시대 때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금주 운동이 있었다.
미국 종교사에서 금주 운동의 역사는 복잡하고, 또 그것이 한국 기독교사에서 어떤 식으로 수용되어 전개되었는지에 대해서도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나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이 말은 자신있게 할 수 있다. 술 안먹는 것, 한국 개신교회의 특성이지 보편적인 기독교의 특성은 아니라고. 미국 교회의 영향을 받아 생긴 특성으로, 한국 사회 내에서 독특하게 강화된 특성이라고.
술을 금지한다는 것, 교리적인 차원에서는 지엽적인 실천론에 속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활인으로서의 개신교인에게, 금주는 참으로 심각한 문제이다. 한국에서 살아가기에 더욱 그러하다. 한국이 어떤 사회인가?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술권하는 사회”이다. 술은 한국 사회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혈관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술을 마시고 마시지 않고는 개인의 도덕이나 건강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음주의 동아리 안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공동체의 참여 여부와 직결된 문제이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술에 관하여 개인의 양심을 왈가왈부하는 것은 대단히 나이브한 접근이다. 그의 삶의 현장을 살펴보면 그러한 요구가 대단히 비현실적이고, 때로는 불가능하다는 것 잘 알 수 있다. 뭐, 여기에 관련해서는 수많은 사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어떨까? 여기선 술 안먹고도 멀쩡하게 잘 산다. 개인주의가 철저하게 보장되는 곳인지라 개인의 호불호는 철저히 존중받는다. 집단적으로 모여 술마시는 일이 잦지도 않을뿐더러, 우리나라처럼 그 술자리가 공적인 영역의 역할을 하는 경우 별로 없다. 파티라는 것, 자기 먹고 싶은 것 손에 들고 삼삼오오 모여 떠드는 자리이다. 전체주의적인 한국의 술 문화와 비교해서는 안 된다. 미국 교회들도 술 안 마시는 곳 적지 않다. 하지만 그 의미는 천양지차다. 사회적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술을 안마시는 행위의 의미는 달라진다. 미국의 금주가 개인의 도덕적 선태의 차원에서 어느 정도 운위될 수 있다고 한다면, 한국에서 술 안마시는 행위는 심하게 말자면 사회적 순교에 해당할 수 있는 심각한 실존적 결단이다. 그것은 주류(酒類) 사회에서 비주류로 살아가겠다는 결연한 자기 표명이다. (이와 비교할 만한 것으로, 춤의 문제가 있다. 미국의 보수적인 교회에서는 댄스 파티 참여를 금지한다. 미국애들한테는 심각한 문제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적어도 중고등학교에서) 춤이 그리 심각한 문화가 아니기 때문에,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다.)
때문에 개신교인들은 술 문제에 관한 다양한 태도를 가진다. 가장 흔한 것은 음주의 문제와 종교의 문제를 분리하는, “나름대로의 기독교”이다. 스스로를 "날라리 기독교인이"라고 칭하는 이들이 주로 이 범주에 들어간다. 어떤 이들은 최소한의 음주를 하되 주일날의 회개로 죄를 탕감할 것이다. 혹은 비타협적인 태도를 고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은 기독교인들끼리 대안적 공동체, 문화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논란의 여지는 많지만, 나는 대학 사회의 기독교 동아리들에 이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 복잡한 사연들을 어찌 여기서 정리하겠냐만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음주 문제는 한국 개신교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참된 기독교인”을 실천해 나가는 과정에서, 한국 개신교인이 삶에서 겪는 충돌과 그로 인한 성격 형성이 한국 기독교 연구에서 중요한 주제이다. 삼위일체, 예수의 신성과 인성, 성령론... 나는 그러한 것들보다 금주의 문제가 한국의 개신교를 규정하는 열쇠라고 생각한다. 문화적인 충돌의 지점이야말로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대목이다. 예를 들어, 이번 주에 십일조를 내야 하는지 망설여질 때, 이번 설에 제사를 지낼 것인지 말 것인지의 문제, 남의 장례식장에 가서 절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하는 그 찰나, 이러한 것들이 한국의 개신교인을 규정해주는 소중한 디테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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