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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_자료/음악

Like A Prayer

by 방가房家 2023. 5. 21.

마돈나의 1989년 앨범 머릿곡인 "Like A Prayer", 특히 그 뮤직비디오는 기독교적 상징으로 가득 차 있고 또한 그 상징들을 절묘하게 활용하여 진보적인 종교적 메시지를 전달한 뛰어난 작품이다. 이 유명하고 그동안 말도 많았을 작품을 난 관련된 글을 읽고 나서야 (공부때문에!) 찾아서 보게 되었다. 2007년이 되어서야 이 비디오를 처음 보면서 “아, 마돈나가 예쁜 여자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난 이쪽에 대해서는 정보나 관심이 없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헐서더의 글(Mark D. Hulsether, "Like A Sermon," in Bruce David Forbes and Jeffrey H. Hahan, eds., <<Religion and Popular Culture in America>>(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5).)에 동의한다. 마돈나의 이 비디오는 기독교 진보 진영의 목소리, 즉 여성과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신학을 담고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의 지적대로, 이런 주장은 조심스럽게 제기되어야 한다. 그것은 이 작품이 어디까지나 음악 산업의 산물로, 게다가 그 한복판에서 그 흐름을 선도하는 가수에 의해 제작되었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며, 마돈나의 의도 여부는 또한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진보적 입장을 ‘표현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까지는 못해도 그러한 ‘목소리가 담긴’ 작품이 주류 음반계 한복판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헐서더의 잘 말해주고 있듯이, 이런 작품에는 크게 두 부류의 비평이 따라붙는데, 하나는 보수적인 기독교 진영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에 관심이 없는 문학평론가 집단이다. 물론 양쪽 모두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보수 기독교인들은 성스러운 상징들이 마돈나 비디오에 사용되었다는 사실로만으로도 분개해서 “마돈나 이 상년”하며 달려드는 분위기이다. 그래서 이 비디오는 “신성모독을 마케팅 도구로 사용하려는 시도”이며 돈을 벌기 위해 “십자가를 불사르는 것까지 허용”(88)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교회에서 포르노를 벌인다는 비난도 있다. 반면에 문화평론가 집단에서는 영 종교에 관심이 없다. 명백한 종교 상징이나 성서 인용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가기 일쑤이다.
십자가, 손바닥의 성흔(聖痕), 당신이 나를 부른다(calling)는 가사와 당신의 목소리, 성인(이 비디오의 흑인 성인은 성 마르티노 데 포레스(Martin de Porres)를 모델로 제작되었다.), 성가대 등 이 비디오는 종교 상징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 비디오의 훌륭한 점은 다만 종교 상징을 많이 사용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상징들을 매개로 종교적 약자들인 여성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아름답게 만나고 있다는 점이다. 강간과 여성을 보호하려다 억울하게 체포된 흑인 청년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은 사회적 약자들인데, 그들의 연대가 이 비디오의 주제가 된다. 그래서 내가 특히 아름답다고 느끼는 대목은, 이 비디오에서 전환적이 되는 부분으로 흑인 성가대(choir)가 등장하여 마돈나와 노래를 부르는 대목이다. 성가대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종교 생활을 응축하여 보여준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마돈나가 여성 지휘자의 안수를 받으며 눕는 대목이 나에게는 인상적이다. 물론 그보다 인상적인 대목으로는 흑인 성자와의 키스를 이야기할 수도 있다. 여기서 흑인 청년은 흑인 성자이기도 하면서 흑인 예수이기도 하다. 억울하게 탄압받는 흑인 예수 이미지를 이 비디오는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많은 욕이 퍼부어진 대목인 마돈나와 흑인 성자(혹은 예수)와의 키스 장면 역시 기독교 전통을 활용하면서 화합의 주제를 잘 살리고 있다. 신비주의 전통에서 절대자와의 사이에서 에로티시즘 전통은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마돈나의 키스는 아빌라의 테레사의 에스터시에 비한다면 강도가 낮은 것에 불과하다. 물론 마돈나의 행위가 신비주의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다만 전통의 활용에 대한 것. 그것을 목적에 알맞게 잘 써먹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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