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잡지 1925. 2. 15. 제19권 559호, “무당이 대세를 밧고 별세,” p.60.
(현대어 표기로 바꾸고, 띄어쓰기와 구두점을 첨가하였음.)
경기도 고양군 행주 본당에 한 무당이 있어 어려서부터 마귀를 심히 섬기다가 십구세부터 무당질로 생애를 할 세, 성당 가까이 사는 고로 열심한 교우의 착한 행실도 보고 간혹 성교(聖敎) 도리의 말씀도 들음으로써 성교의 진실함을 알아 비록 생명에 곤란이 막심하나 그 후로는 몇 해간 무당질을 아니하고 지내다가 너무 빈한하여 기갈이 자심하므로 자기 양심에는 비록 반대되나 다시 무당질을 시작하여 여러해 동안을 하다가 우연히 중병에 걸려 날이 갈수록 점점 병이 중하여 마침내 임종에 다한지라.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받게 하여 달라하고 또 죽은 후에는 자기를 위하여 미사까지 드려달라 하며 간절히 청하거늘, 곁에 있는 사람 중에 외인 하나가 병자에게 말하기를 “그러면 예수교인들이 곁에 있으니 청하여 오리까” 하매, 병자가 대답하기를 “아니라. 윗마을 성당에 가서 속히 신부님과 류마리아 부인을 청하여 오라”하며 자기 어린 딸을 보내어 기별하매, 신부는 이 말을 듣고 즉시 가보니 병가가 벌써 이왕에 이단하여 놓았던 물건들을 다 불사르고 바삐 세를 달라 청하는지라...
무당으로서 이와 같이 세를 받고 선종함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평시에 주의 진실한 씨가 그의 마음 가운데 떨어진 연고이니 그 씨가 악마의 잡풀에 싸여 비록 일찍이 충실히 자라지는 못하였으나 그 때가 이르매 바야흐로 아름다운 결실을 이루었으니...
무당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생명에 지장이 있다는 것은 문맥상 생활상의 어려움을 말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신병이 있었음을 암시할 수도 있다. 임종할 때 개신교를 거부하고 신부님을 불러 세례를 받았다는 대목도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