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나무>, 한국 대중음악에서 이처럼 은유의 중첩으로 이루어진 텍스트를 만난 적이 없다.
내가 방의경의 노래를 만나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어디 방씨 가수가 누구 있나 살펴보던 중에 그녀 노래들을 듣게 되었는데, 청아한 목소리와 낯선 가사들에 전기에 감전된 듯이 그냥 사로잡혀 버리고 만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노래들은 엄청난 사연과 내공에 둘러싸인 노래였다.
지금의 우리와 방의경을 그나마 연결시켜 줄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양희은의 <아름다운 것들>의 작사가라는 사실 정도이다. (김세화가 부른 <나비야>(하양 나비)라는 노래도 방의경이 만들었다.) 그러나 70년대 방의경은 포크계의 두목으로 불리며 선굵은 활동을 하고 있었다. 남성으로는 김민기가 있다면 여성으로는 방의경이 있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1974년 낸 독집 앨범(이 앨범의 전곡은 방의경 작사, 작곡이다) 이 발매되자마자 판매금지조치가 내려지고 얼마 후 그녀는 미국으로 떠나간다. 그 이후 그녀는 철저히 잊혀져 있다가 최근 들어 조금씩 재조명되고 있다.
산꼭대기 세워진 이 불나무를
밤바람이 찾아와 앗아가려고
타지도 못한 덩어리를 덮어버리네
오 그대는 아는가 불꽃송이여
무엇이 내게 죽음을 데려와주는가를 음~덩그러니 꺼져버린 불마음 위에
밤별들이 찾아와 말을 건네어도
대답 대신 울음만이 터져버리네
오 그대는 아는가 불꽃송이여
무엇이 내게 죽음을 데려와주는가를 음~산 아래 마을에도 어둠은 찾아가고
나돌아갈 산길에도 어둠은 덮이어
들리는 소리 따라서 나 돌아가려나
오 그대는 아는가 불꽃송이여
무엇이 내게 죽음을 데려와주는가를 음~
이 노래말은 굉장히 어렵다. 불과 나무라는 역설적인 조합으로부터 시작하여 알듯 말듯한 은유들이 얽혀 있다. 그러나 분위기는 충분히 감지된다. 자기 자신을 미처 태우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울음, 죽음, 어둠 등의 음울한 이미지들이 겹쳐진다. 이처럼 노래가 암호같은 언어들로 채워진 것에는 방의경의 취향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당시 박정희 정권의 혹독한 검열을 의식한 것이 직접적인 이유인 것 같다. 방의경 노래엔 당시 정치 상황이 컨텍스트로 깔려있다는 것은 만든이나 듣는이나 검열하는 이나 다 인지하고 있던 터였다. (어쨌거나 이 노래는 나오자마자 금지곡이 되었다.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금지곡이 된 이유는 불나무가 사전에 없는 단어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방의경이 이 노래를 만들 때 전태일 열사를 염두에 두고있지 않았나하는 느낌이 자꾸만 든다.
나오자 마자 칼질을 당하고 압수된 앨범이기에 방의경 독집은 극히 희귀한 레코드판이다. 매니아들도 소문만 듣고 구경은 못한다는 이 앨범의 단가는 200만원을 넘는다고 한다. 물론 물건이 없으니 돈이 있다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 좋다는 게 이런 희귀한 자료에 접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5-6년 전만 해도 내가 방의경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가능성의 거의 없었을 거다. 하지만 이제는 우연히라도 그녀 노래를 접할 수 있고, 불법이겠지만 내 블로그에 올릴 수도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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