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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만남

선교사들의 종교 이론에 관한 발표

by 방가房家 2023. 5. 19.

발표: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사대회의 성취이론에 관한 재고”

한국기독교역사학회 주제발표(2010년 5월 1일, 새문안교회)
 
한국에서 활동한 북미 선교사들의 타종교에 대한 태도는 ‘성취론fulfillment theory’(다른 종교에도 기독교적 계시의 신학이 존재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기독교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으로 설명되곤 한다. 안선생님의 발표는 이에 대한 반론의 성격을 지닌다. 엄밀한 의미에서 성취이론은 1910년 에딘버러 선교사대회 제4위원회에서 채택된 것으로, 북미 선교사들의 신학적 입장과 직접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게 발표의 요지이다. 대신 그들의 입장은 종교하강설(원시유일신론)으로 요약될 수 있다는 것.
나는 기본적으로 성취론이라는 명명으로 선교사의 타종교관을 정리하곤 하던 기존의 서술에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한 관행에 제동을 거는 발표문의 취지에 십분 동감한다. 발표문의 바탕이 되는 자료들의 정리가 워낙 탄탄하기 때문에 얻어들을 부분이 많은 발표였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미처 검토하지 못한 자료들도 많아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발표문의 주장에 찬성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것 같지는 않다. 주장 안에 깔린(혹은 내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신학적 복선에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글의 첫 부분(2-3쪽)에선 당대의 종교이론을 셋으로 정리한다. (1)이교도들은 원래 유일신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나 점차 타락하여 우상숭배로 변한 모습으로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하강설”(=원시유일신론) (2)원시종교로부터 진화하여 유일신 사상에 이르게 되었다는 “종교진화론” (3)타종교에 내재한 기독교 계시의 흔적들이 기독교 선교와 문명화에 의해 진화하면 기독교의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성취이론”. 

(2)는 종교학사에서 많이 다루어지는 이론들이며 (3)에는 지금의 종교다원주의의 기본적인 주장들이 함축되어 있다. 진보적 신학에서 주장되는 내용이며 종교학에서 무시할 수 없는 유산을 남겼다. (1)은 잊혀진 이론에 가까운데, 이 발표문에서 이에 관련된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또 그것이 초기 선교작업(특히 하느님 용어 결정)에 큰 영향을 주었음을 밝힌다. 그 부분이 이 발표의 강점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 셋을 산뜻하게 구분해 놓은 대목에 문제가 있다. 발표문에서는 성취이론을 이렇게 정리한다. “성취이론은 모든 종교 안에 기독교 진리의 계시가 존재한다는 면에서는 원시유일신론과 흡사하고, 그 계시가 진화하면 기독교의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면에서는 진화론과 흡사함을 알 수 있다. 즉 성취이론은 원시유일신론과 종교진화론 간의 타협점이라고 볼 수 있다.”(3) 좋은 정리라고 생각되지만, 이렇게만 말하면 성취이론은 원시유일신론과 진화론 딱 중간에 놓인 제3의 이론인 것처럼 보인다. 이런 분류는 성취이론이 종교하강설과 아주 다른 것으로 보이게 한다. 그 다름을 역설하는 것이 발표의 목적인데, 그럼으로써 공통점을 지워버리려고 한다.
 
내가 볼 때 성취이론과 종교하강론(원시유일신론)은 그렇게까지 다른 주장이 아니다. 그 주장들은 타종교와 기독교의 관련성을 설명하고자 하는 신학적 고민에서 나온 것으로 “기독교 진리의 흔적이 타종교 내에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이 두 주장의 핵심적인 바탕이 된다. 만약에 종교하강론을 바탕으로 해서 성취이론을 정립한 선교사가 있다고 상상을 해보아도 모순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 둘은 연속성을 이룬다. 둘의 차이는 주창자들의 인적 구성(시대나 지역)이나 주장의 목표에 있지 전제가 다른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차이를 강조하는 것일까? 행간을 읽으며 내 추측을 마구 보태어 이야기하자면, “성취이론fulfillment theory이란 일종의 비교종교학적 이론”(4)이라는 표현에 그 이유가 있다. 선교사들의 신학은 성취이론이라는 진보적이고 종교학적인 입장이 아니라 종교하강설이라는 “보수적이고 신학적인” 입장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이 발표의 의도라고 생각된다. 간단히 말해 종교학적인 혐의를 벗어던지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내 생각을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첫째, 세 입장은 다른 종교와의 만남을 계기로 종교에 대한 인식을 재정립하려는 지적은 시도였고, 그런 의미에서 모두 비교종교학적인 이론이다. 둘째, 성취이론은 비교종교적인 이론이고 종교하강설은 신학적인 이론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성취이론과 종교하강설을 묶어 신학적인 비교종교학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
 
안선생님은 성취이론이 당시의 보편적인 신학도 아니고 한국에 있는 선교사들의 입장과 동일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성취이론은 인도 선교사들이 중심이 된 주장이고, 동아시아에서는 마테오 리치부터 시작하는 오래된 선교 전통이 존재해왔다. 그 두 선교 집단의 차이를 지적하는 것은 타당하다. 또한 언더우드와 같은 보수적인 태도를 취한 선교사에서 후대의 성취이론의 맹아를 찾는 견강부회를 지적한 것도 매우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차이를 갖고 ‘종교학 폭탄’ 돌리기 놀이를 하는 건 반대다.
 
덧말) 다른 발표는 “1920년 세브란스연합의전 나병학과 설치계획을 통해 본 미북장로교 구라사업”이라는 매우 도발적인 제목을 달고 있었다. 반종교적인 태도의 발표자가 아니라 한 재미在美학자의 발표였다. 현대 한국어 감각에 익숙한 분이었다면 ‘구라사업’은 ‘나병(혹은 한센병) 진료 사업’이라고 풀어쓰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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