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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얻어배우는 것

덴마크 무함마드 만평에 관한 학술행사

by 방가房家 2023. 5. 19.

(2006.2.17)

요즘 이슬람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덴마크 신문 만평을 둘러싼 분쟁에 대한 심포지엄(The Danish Cartoon Crisis: Perspectives on the Global Controversy)이 있었다. 작년 말 예언자 무함마드를 조롱한 만평을 게재한 한 덴마크 신문에 대해 무슬림들이 반발하였고, 그 파장이 덴마크를 넘어 이슬람 국가들에서 반 덴마크 시위가 일어나고 덴마크 외교관이 소환되는 등 아직까지 그 분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종교학과 종교분쟁 연구소가 주체가 되어 현재 진행중인 이 분쟁에 대해 개략적으로나마 스케치를 하고 이슈를 정리하는 자리는 마련한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현재의 이슈 대해 전문가들을 모아 행사를 마련하다니, 역시 우리학교 종교학과는 참 좋은 곳이야’라는 생각을 하며 갔는데, 거기서 나온 이야기들이 생각만큼 신통치는 않았다.

한 사회학자는 종교와 정치의 관계가 서구와 이슬람권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정교분리는 서구사회의 역사적 산물이며 다른 문화권에서는 맥락이 다르다는 이야기였다. 기본적으로 염두에 두어야하는 이야기임에는 틀림없으나, 그 이야기만으로 자기 시간을 채웠다. 이슬람권에 대해서는 별 언급도 없이. 법학자는 신문에서 표현의 자유에 관련된 판례들을 열거하면서 덴마크 신문의 만평을 싣는 일이 불법적인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의 입장은 불법이 아니라고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이야기는 주로 불법과 합법의 경계가 어디인지를 말하는데 할애되었다. 언론학자는 나와서 미국 신문에서 다루어진 쟁점들을 요약해서 정리해 주었다. 그런 게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속성인갑다하는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핵심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자기가 아는 범위 내에서 안전빵으로 운행하려고 하는.
마지막으로 나온 종교학자 우드워드의 이야기는 경청할 만 했다. 비록 그 특유의 대중적인 화법이 잘 발휘된 것이긴 해도.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현지조사를 한 이슬람 전공자이다. 그는 예언자를 조롱하는 것은 서구 문화에서 매우 오랫동안 반복된 일이었으며, 이에 대한 무슬림들의 항의 역시 새롭지 않은, 예견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말을 시작했다. 서양의 대표적인 고전 단테의 <신곡>에서 무함마드는 지옥에서 지독한 형벌을 받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수백년동안 서구문화에서 무함마드에 대한 조롱은 끊임없이 재생산되어 왔다. 반면에 반대로 무슬림들이 기독교나 유대교의 성스러운 인물을 조롱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예수, 모세, 아브라함 등의 인물들은 이슬람교에서 위대한 예언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비대칭의 상황에서는, 서구인들의 조롱에 대한 무슬림들의 인내 혹은 반발의 도식만 형성되어 반복되어 왔다. 율법을 어기면서 예언자를 형상화해서 조롱하는 일에 정당성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덴마크 내 무슬림 공동체에 대한 위협일 뿐이다.

발표에 대한 미국 청중들의 반응을 보는 일이 발표 자체보다 더 흥미로울 때가 많다. 첫 질의자는 큰 덩치의 백인 아저씨였다. 굉장히 씩씩거리면서, 저번 주에 신문에 이 문제로 독자 투고를 했다고 했다. 그는 이 사안에 검열이 작동하고 있다며 미국 언론의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고 항의했다. 이에 대해 법학자가 카툰의 신문 게재는 (법적으로 보면) 가능하지만 부적절한(inappropriate) 일이라는 견해를 밝히자, 코끼리같은 덩치의 이 아저씨가 크게 울부짖는다. 순간 무서웠다.
이 아저씨 얘기에 따르면 미국에서 이 카툰을 직접 게시한 신문은 전국에서 4개에 불과했다고 한다. 미국 언론의 신중한 대응에 꽤 놀랐다. 이슬람권과의 관계가 첨예한 사회문제라서 그런지 주의를 기울이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겨레신문에서 카툰을 올렸고, 이에 대해 한국의 무슬림들이 그림을 올리는 것 자체가 무슬림들을 모욕하는 행위가 된다는 항의를 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겨레신문이 부주의했음은 분명하다. 나도 이 카툰 이미지들을 갖고 있지만 ‘자료’라는 명목으로 이 블로그에 올리는 일은 자제했다. 솔직히 말하면, 올리려는 생각도 좀 있었지만, milkwood님의 “타문화 존중과 범세계적 윤리”를 읽고서 내가 경박했음을 깨달았다.

백인 아저씨 다음으로 너댓명의 아랍계 학생들이 발언을 했다. 청중들 중에 아랍계의 비율이 높지 않아 예상치 못했던 일인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학생들이 이 사안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 학생이 자기들이 예언자에 대한 오해를 벗고 참모습을 알리기 위해 모임을 마련했다고 알리고 나가는 사람들에게 팜플렛을 돌리는 데서 그 의도가 분명히 나타났다. 의도성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아랍 전통 복장을 한 여학생이 또박또박 한 이야기는 논리정연하고 설득력이 있었다. 그 학생은 이 문제가 서구 사회에 살고 있는 무슬림 공동체들의 삶에 굉장히 큰 문제인데 이 날 패널들이 다른 문제들만을 늘어놓은 데 실망했다고 토로했다. 또, 서구의 언론들이 동성연애자들의 감정을 고려해서 동성연애 사진을 직접 노출시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카툰 게재 문제가 언론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해당 공동체에 대한 사회적 존중의 문제임을 환기시켜 주었다.
그렇다. 얼마 전 임수경씨 아들 사고에 대한 악플 처벌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수구 단체와 한나라당의 ‘부적절한’ 패러디를 둘러싼 논쟁에서 드러나듯이, 우리 사회도 이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단계를 지나 그 표현이 담지하는 사회적 가치의 합의를 고려하는 시점에 있다. 유럽과 아랍 국가들 사이에 불거진 이 문제를 방관하는 미국 사회의 입장에서(이슬람 전공인 한 친구는 이 사건은 아랍과의 관계가 나빠질대로 나빠진 미국의 입장에서는 대미 감정을 완화시키는 호재인데, 이 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언론 보도는 본 적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좋은 쪽으로 해석하면, 이 사건 보도에 대한 논란은 무슬림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사회적 존중의 합의를 이루어나가는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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