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배움/얻어배우는 것

장신대에서 있었던 학술행사

by 방가房家 2023. 5. 19.

(2005.5.28)

장신대에서 열린 “20세기 개신교 신앙부흥과 평양 대각성운동”이라는 학술 행사. (관련 기사) 주제가 괜찮았다. 한국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에 영향을 끼친 세계 기독교사의 부흥운동들을 조명하면서 비교연구를 모색하는 자리였다. 시간상 6개의 발표 중 2개를 들을 수 있었는데, 주제발표인 “미국 교회 대각성운동과 한국교회의 1907년대 부흥운동의 비교연구 -유사점과 상이점을 중심으로”가 내가 관심 있는 부분이자, 전체 행사의 취지를 보여주는 발표였다. 미국사와 한국 교회사가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나로서는 관심이 갔다.


주제 발표 내용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비교 연구라는 이름 하에 미국과 한국 기독교사의 사실들을 죽 열거해놓은 글이다. 미국사 300년과 한국 초기 기독교사를 비교하는 것부터가 균형이 맞지 않는데, 더 큰 문제는 대부흥운동과 기독교 자체를 뒤섞어 서술하고 있는 것. 그래서 글에서 유사성이라고 나열한 교육 운동, 교회 연합 운동, 애국 애족 운동 등은 견강부회한 내용들이다.
다른 나라 기독교사를 공부하다보면 우리나라의 경우가 눈에 많이 밟힌다. 비슷한 상황에서 우리나라 교회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는 식의. 그러나 그런 비슷함의 느낌이 하나의 연구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여행객이 다른 나라에서 느끼는 기시감이 그 나라에 대한 문화론은 아직 아닌 것처럼. 그런 면에서 그 발표의 시각은 아직 설익다. 예를 들어 미국 건국부터 19세기까지의 정치 상황을 서술해 놓고 나서, “한국에서의 1907년 대부흥운동이 일어나던 즈음의 정치적, 사회적 환경도 미국의 그것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나이브하다. 어차피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는 식의 태도라고나 할까. 최근에 종교학에서는 비교라는 쟁점을 놓고 이론적인 연구가 치열한데, 이 정도의 비교는 최근의 이론적 성과를 들이대며 비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이 행사에서 특이한 점은 발표들을 통해 장신대인들을 무엇을 듣고 싶었는지를 희미하게나마 감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냥 학술행사려니 하고 갔었는데, 가보니 학교 전체의 행사라는 느낌을 받았다. 시설 준비나 유인물의 수준도 남달랐고(덕분에 ‘수지침 겸용 펜’이라는 좋은 기념품 받고 입이 벌어졌다. 발표문 제본이나 팜플렛 수준 등을 보면 다른 인문학 학술 행사 준비하는 사람들이 보면 돈지랄한다고 입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학생을 위한 출석표를 제공해주는 치밀함 때문인지 많은 수의 학생들이 참석한 큰 규모의 행사였다.
그런데 나는 부흥운동이라는 주제를 놓고 학생들과 교수들이 “정통성”이라는 주제를 도출하고자 한다는데 경악했다. 아무리 정통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도 말이다. 당시 미국 대각성 운동의 흐름을 무디의 운동과 피니의 운동으로 구분하고, 한국은 “칼뱅신학을 중시하는” 무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강조하는 질문자의 태도는 놀라운 것이었다. 구분 자체도 무리할 뿐더러 칼뱅 신학이 부흥회에 무슨 중요성이 있다는 말인가. 영국의 커(Kerr) 박사의 웨일즈 부흥운동 연구 발표에서도, 웨일즈 부흥회가 한국 부흥회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지를 밝혀주지 않아 아쉽다는 논평자의 태도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이에 대해 커는 영향 관계보다는 그 지역 맥락에서의 연구가 있어야 한다는 지극히 옳고 원론적인 답변을 하였는데, 이 답변은 무언가를 확인받고 싶어하는 참석자들을 만족시키지 못한 것 같다.
그들 머릿속에 자리한 족보가 있다. 유럽의 칼뱅 “정통주의” 신학이 미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것. 칼뱅의 정신이 무디의 부흥회를 거쳐 평양신학교의 대부흥운동으로 불타올랐고 그 후신인 장로회 신학대학교로 면면히 이어진다는 것. 가상적인 족보이다. 내 생각엔, 족보를 완성시키려는 꿍심을 갖고 부흥운동을 연구한다면 엉뚱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