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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얻어배우는 것

버스웰 교수의 선불교 강연

by 방가房家 2023. 5. 19.

(2004.9.11)

로버트 버스웰은 한국 불교 연구로 잘 알려진 미국 학자이다. 미국 내 한국 불교 연구의 좌장이라고나 할까, 영향력이 큰 학자이다. UCLA(이 학교는 미국의 한국학 연구 중심지이다) 한국학과에 있으면서 후배학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우리 학교에 그의 제자가 둘 있다는 것 외에 구체적인 것은 모르지만, 다른 곳에도 꽤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는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그는 송광사에서 5년이나 승려로 수행 생활을 한 한국통이기 때문이다. 한국말도 잘 한다. 한국 불교계와 미국 학계를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하기에 대접을 잘 받는 편이다.
그런 그가 우리학교에 강연을 왔길래 가 보았다.
그는 최근에 “Zen Monastic Experience”(‘선 수행 체험기’ 혹은 '선 수행자의 경험')라는 책을 내었고, 책 내용과 얼마나 관련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일한 제목으로 강연을 하였다. 150명 수용하는 교실이 가득 차고, 30명 정도가 서서 들었으니 강연은 성황이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별로 인상적인 강연이 못되었다.
강연은 미국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선(Zen)에 대한 고정 관념들을 말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미국 사람들의 고정관념들은 형편없다. 보통 선사들은 극단의 고행의 이미지로 비춰지고, 그 반대 극단으로는 동성애적인 이미지를 지니기도 한다. 키아누 리브스의 붓다 연기는 고행 이미지의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미국인들이 선 수행자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터무니없을 때가 많고, 그것을 바로잡는 것이 강연의 본론이 된다. 그의 메시지는 간결하다: “선사들도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이다. 그러니 편견을 버리고 그들을 보자.”

버스웰이 강연 본론에서 한 것은 슬라이드로 한국의 절과 승려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가 있었던 송광사를 중심으로 하여 절의 모습과 승려들의 수행 생활의 면면을 여러 사진을 통해 보여주고 설명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이게 일주문이고, 이게 승려들 사는 요사채이고, 이게 참선하는 모습이고, 이게 청소하는 모습, 머리깎는 모습, 선사 장례 지내는 모습이고... 이 슬라이드 상연이 한 시간 정도 지속되고 강연은 끝났다. 그리운 고국 산하와 아름다운 절의 모습들을 영어 설명을 곁들여 듣는 일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난 그걸 보려고 그의 강연을 들은 게 아니었다. 마치 여행객의 후일담을 듣는 것과도 같은(물론 여행자가 할 수 있는 강연이 아니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야기를 학술 행사에서 듣는 것은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의 예쁜 책표지만큼의 강연이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곳이군”이라고 말하며 흩어지는 미국 청중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강연이었단 말인가...
아마 한국 불교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당장 미국 청중들에게 필요한 일이고, 버스웰은 그걸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한국 불교를 미국인들에게 말해주는 전문가이니까... 하지만 “필요한 것” 너머의 학문적인 성찰의 결여는 가슴아프다. 아무리 슬라이드 상영이라 할지라도 그런 깊이가 배어있음을 기대하게 되는데, 나의 영어도 아직 부족하고(사실 그의 날아다는 듯한 영어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아 여러 얘기를 놓쳤다) 무언가를 느끼기 힘들었다.

강연 전에 포어드 교수는 버스웰 교수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그로 인해서, 이제 선불교를 이야기할 때 한국을 빼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20년 전만 해도 선불교를 이야기할 때 한국을 떠올리지 않는 게 오히려 일반적이었는데 말이다.” 참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의 상식으로 볼 때 한국의 선불교는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선불교의 본고장 중국에는 선불교의 흔적밖에 남아있지 않고, 일본에서는 일본화한 형태로 발전해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에는 조계종에 고전적인 선불교가 강력한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 중국 송, 명대의 전성기 선불교에 가장 근접한 형태를 고집스레 지켜가고 있는 게 우리나라의 선불교이다. 무엇이 선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현재의 우리나라의 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잠깐 딴 얘기를 하면, 우리나라가 뭐 하나 받아들이면 그걸 정통(혹은 정통이라고 생각하는 형태)로 무섭게 유지하는 똥고집이 있다는 얘기를 흔히 한다. 성리학이 그런 예이고, 근본주의적인 기독교가 그렇고, 맑시즘이 그렇다고 이야기를 한다. 선불교 역시 그런 예 중 하나이다.
선불교를 논할 때 한국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서구 학문 세계에서는 그게 그리 당연하지 않다. 선불교에 대한 학문적 관심은 일본학자 스즈키의 연구서가 서구인의 동양에 대한 환상을 자극하면서 비롯되었다. 오랜 기간동안 선불교는 일본의 종교였다. 연구가 진행되면서 선불교의 본고장 중국에 대한 연구로 확장되었다. 선(禪)의 일본어 발음 젠에 중국어 발음 챈이 보태어져 젠/챈이 되었다. 한국은? 학문 세계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중국의 아류 정도로 생각되는 조그만 나라의 말까지 배워 공부할 연구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들어서야 일부에서나마 선이 젠/선/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버스웰같은 학자의 존재 때문이다. 학계의 영토싸움에서 한국이라는 존재는 이제야 빼꼼히 머리를 내밀기 시작한 것이다.

선 연구에 한국이 중요한 곳이라는 “엄연한 사실”이 버스웰이라는 학자가 있게 된 든든한 기반이다. 한국 선불교를 제대로 체험한 사람으로서 그는 학계에서 당당히 자기 영역을 구축하였다. 그의 학자로서의 성공은 포지셔닝의 성공에 기인한다. 한국이라는 영토를 성공적으로 학계에 위치시킴으로서 그는 탄탄한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성공한 학자이다.
하지만 자리잡기 그 이상의 무엇이 있는지 아직 잘 알지 못한다. 그의 저작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학자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학문 세계에서 큰 결례이다. 그러기에 그의 책을 읽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말을 삼갈 수밖에 없다. 완전히 알아듣지도 못한 강연 한 번 들은 것 뿐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내가 받은 인상은 적어도 그가 열심히 공부하는 학자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학문 세계의 정치판에서 성공적인 자리잡기를 했다는 사실을 넘어서서, 그의 학문의 깊이를 느껴보고 싶었는데, 아직은 그걸 느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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