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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발제

페이절스, <사탄의 탄생>

by 방가房家 2023. 5. 16.
 
일레인 페이절스(Elaine Pagels)의 <<사탄의 탄생(The Origin of Satan)>>(루비박스, 2006). 좋은 책이고, 번역도 좋다.

영지주의 문헌들과 그 사회적 배경을 다루는 페이절스의 다른 책들과는 달리 주로 4복음서를 갖고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중간에 약간 지루할 수도 있다.(나는 그랬다) 하지만 페이절스처럼 이름난 저술가는 자신이 논의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잘 설명한다. 이 책의 서문은 책의 내용을 요약적으로 보여주면서, 그것이 기독교 전체의 맥락에서, 또 종교사의 맥락에서 어떤 문제를 다루는 것인지를 인상적으로 소개하는, 모범적인 서문이다. 이런 서문을 쓰는 능력이 부럽다.
상식적으로 기독교는 유일신을 섬기는 일원론적인 종교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선과 악의 대립을 강하게 전제하는 이원론적인 종교로 신앙된다. 간단히 말하면 원수를 미워하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하는 것은 그런 것이다. 페이절스는 날카롭게 이 모순을 짚으면서 논의를 시작한다.
일부 유대교도들과 기독교인들은 일신교를 표방하면서도 점점 더 하느님의 전령인 천사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타락한 천사와 귀신(demon)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경향은 특히 서기 1세기부터 강해졌다.(6)
사탄의 존재에 대한 믿음, 기독교사에서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신앙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기독교 선교의 맥락에서도 강조되어 왔다.(책에서 중심적으로 다루어지지는 않지만 내 입장에서 중요한 언급이다.)
오늘날에도 기독교의 세례는 “마귀와 그것의 모든 소행”을 엄숙하게 부인하고 귀신 쫓기를 수용할 것을 요구한다. 개종자는 이전에 신으로서 숭배하던(그리고 두려워하던) 모든 영적 존재가 실은 ‘귀신’이라는 것을 고백한 다음에야 세례를 받았다.(6-7)
사탄이라는 존재는 기독교사에서 1세기(이 글에서 다루는 복음서들이 기술되던 시기)부터 시작되어 발달된다. 그것은 반대편 무리들을 정죄한다는 정치적 맥락에서 사용되던 것들이다. 그 역사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세기에 들어 에세네파(자기들이 천사와 한편이라 생각했다)와 예수의 추종자들을 포함한 일부 유대교 집단들 사이에서 사탄, 혹은 바알세불, 벨리알이라 불리는 존재가 중심에 서기 시작했다. 예컨대 마가복음에서 천사는 원 판본의 첫머리(1:13)와 끝(16:5-7)에만 등장하는 데 비해, ‘마귀(devil)’는 중대한 첫 장면에서 소개됨으로써 유대교 주류 전통에서 일탈한다. 예수가 하는 일은 하느님의 성령과 귀신들이 벌이는 끝없는 싸움과 관련되는 것으로 이야기되고, 이때 귀신은 사탄의 ‘왕국’에 속한 존재라고 설명된다.(마가 3:23-27) 그 같은 비전이 기독교 전승에 통합되면서, 기독교도들은 자신을 신의 협력자로 파악하고 대립 세력(처음에는 다른 유대인들, 다음에는 이교도들, 그리고 후에는 이단이라 불리는 반대파 기독교도들)을 귀신(악마)으로 여기게 되었다.(7-8)
이 책은 “인간 간의 갈등을 표현하고 우리의 종교 전통 내에서 인간 적을 찾기 위해 사탄을 어떻게 인용하는지”(9)를 분석한 것이다. 요즘 많이 이야기되는 타자성의 문제이다.
이 책은 사탄이 우리가 우리 자신, 그리고 ‘타자’라고 부르는 존재들을 인식하는 방식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사탄은 ‘타자’라는 위치로 대변되고, 그러므로 우리가 인간적이라 생각하는 자질들이 부정에 의해 정의된다.(9)
저자는 이 책이 그려내는 것을 “기독교 역사에서 줄곧 ‘타자’를 귀신으로 만들어온 기독교의 단층선(斷層線)”(11)이라고 표현한다. 상대방을 타자화시키고 악마라고 부르는 것, 그 양상을 보이기 위해서 저자가 사용한 자료는 정치 찌라시들이 아니라 복음서이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복음서 저자들이 예수의 죽음의 탓을 유대인에게 돌리기 위해 로마를 대표하는 빌라도를 애매한 위치에 놓고 유대인들을 악의 세력으로 놓는 다양한 서술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본문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진다.

기독교가 꼭 적대자를 설정하여 악으로 몰아세워야 하는 종교는 아니라는 항변도 존재할 수 있으며, 저자는 이것을 인식하고 있다. 서문에서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 아니냐고 반문하는 자기 친구 얘기를 소개했고, 맺음말에서는 성 프란체스코부터 마틴 루터 킹 목사까지 “자기가 하느님의 편에 있음을 믿으면서 적을 마귀도 세우지 않는 기독교도들”이 있음을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적이 사악하며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라고 가르치고 그런 믿음을 바탕으로 행동해왔다.”(224) 그것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저자의 이 역사적인 연구는 그런 이원론적인 기독교에 화해의 빛은 비추어주는 윤리적인(그래서 신학적인) 메시지도 던지고 있다. (이길용 선생님의 책소개도 참고할 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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