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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발제

일곱 큰 죄에 대한 책 하나

by 방가房家 2023. 5. 16.
책에 대해 검토해 달라는 부탁을 받아 쓴 글.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다 보니 글의 본래 목적과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Solomon Schimmel, The Seven Deadly Sins: Jewish, Christian, and Classical Reflections on Human Psycholog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1. 이 책의 제목은 <<죽음에 이르는 일곱가지 죄: 인간 심성에 대한 유대교, 기독교, 그리스 철학의 사색들>> 정도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직역에 가까운데, 그러한 번역의 문제를 잠시 지적하고 넘어가자. 이 번역에는 ‘죽음’이 대단히 강조되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저자가 지적하듯이 ‘죽음에 이르는 죄’(deadly sins)는 중세에 관습적으로 굳어진 이름이지 정확한 명칭은 아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근원적인 죄나 머릿죄(capital sins)가 될 이 죄들은 중세 사람들이 중한 죄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 죄를 저지르는 것이 바로 죽음으로 연결되는 그런 죄들은 아니다. 여기서 중한 죄라는 것은, 그 죄가 다른 죄를 유발한다는 의미에서 중한 것이지, 죽음과 상관있어서 중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일곱 죄들 간에도 중요도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을 죽음의 죄라고 부르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다만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기독교의 일반론이 엄밀하지 않게 적용되어 ‘중한 죄=죽음의 죄’라는 식으로 이름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한 점을 고려할 때, 관습적인 지칭에 불과한(그리고 우리말에서는 관습적이지 않은) ‘deadly sins’를 옮길 때 죽음이 도드라지게 나오는 번역은 최소한 책 제목에서는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참고로 가톨릭 신학에서는 이 개념을 칠죄종(七罪宗)이라고 부른다. 그런 딱딱한 말은 권할만하지 않고 ‘일곱가지 큰 죄’로 의역하는 정도가 어떨까 싶다.
 
2. 번역 얘기가 나온 김에 일곱 죄들에 대해서도 검토하도록 하자. 책에서 다루어지는 일곱 죄들은 교만(pride), 질투(envy), 분노(anger), 음욕(lust), 탐욕/탐식(gluttony), 인색(greed), 나태(sloth)이다.(일곱 죄의 내용은 전통에 따라 차이가 날 수도 있다.) 이 용어들은 통일되어 있지 않다. 오만, 시기, 음란, 사음(邪淫), 태만, 게으름 등 여러 다른 번역들이 사용될 수 있는 개념들인데, 여기서 내가 사용한 것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의에서 결정된 가톨릭 교회용어이다.1) 이 중에서 이 책의 경우 가톨릭 용어를 따를 수 없는 것은 탐식(gluttony)이다. 가톨릭에서는 탐욕이라는 추상화된 죄목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는 과다한 음식 섭취라는 구체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으므로 탐식으로 되어야 할 것이다.

[독일 화가 오토 딕스(Otto Dix)의 1933년 작품 <Die sieben Todsünden>.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여기엔 일곱 죄가 형상화되어 있다. 왼쪽 아래의 노파는 나태를 나타내며 등에 히틀러 탈을 쓴 아이를 태우고 있다. 그 뒤에는 죽음 모양을 한 분노, 교만이, 그 위의 큰 머리는 탐식을, 탐식 옆에 유방을 잡고 있는 여인은 음욕을, 여인 위에는 탐욕이 있다.]

3. 책의 내용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딴 얘기들이 길었다. 이 책의 내용은, 현대인들이 겪는 여러 심리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일곱 큰 죄로 대표되는 서양 전통의 인간 본성에 대한 논의를 통하여 찾는 것이다. 현재의 고민에 대해 전통의 지혜에 귀 기울이는 태도를 취한다. 일곱 죄를 통해 책의 틀을 짰지만, 이 책은 기독교 죄 개념에 한정된 책이 아니다. 제목에서 밝히고 있듯이, 유대교, 기독교, 그리스 고전 사상의 논의들을 폭넓게 탐색하면서 죄에 대한 서구 전통을 망라하고 있다. 느슨하게 묶이는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 사상에는 당연히 유대교의 히브리 성서2)가 전제되어 있고, 서양 중세에 일곱 죄 개념이 성립된 것에는 그리스 스토아학파 학자들의 영향이 컸다는 점에서 세 전통은 얼추 만나는 지점이 있다. 그럼에도 일곱 죄 개념은 중세 가톨릭 신학에서 형성되고 중세의 대중적인 사유에서 꽃핀, 기독교 중에서도 가톨릭 특유의 개념이다.3) 저자가 이 책에서 특수한 기독교 개념을 통해 서양 지혜를 아우르는 것에는 그만한 자유로운 태도가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이 인지될 필요가 있다.
또한 이 책은 과거의 죄 개념에 대해 말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현재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되는 과거 현인들의 말씀들은 모두 현대인들의 고민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제시되는 것이다. 현재의 문제를 위해 과거 지혜들을 부려 쓰는 저자의 태도는 유연하고 (여러 평자들이 말한 대로) 지혜롭다. 바로 이 점에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 있다.
 
4. 책의 미덕을 구체적으로 살피기에 앞서, 이 책이 한국 독자에게 낯설게 다가설 수 있는 부분을 잠시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이 책의 저자는 심리치료를 하는 심리학자이자 유대교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이다. 이 책에는 저자의 이중의 이력이 철저히 반영되어 있고, 여기에 두 가지 낯섦이 있다.
첫번째 낯섦은 이 책의 문제제기의 현실적인 맥락인 심리치료이다. 미국에서는 심리적인 불안을 느끼면 정신과의사를 만나 카운슬링을 받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심리치료를 받는 사람에 대해 정신병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현대인의 정서적 불안에 대해 심리학이 담당하는 역할이 큰 사회의 독자를 대상으로 이 책은 씌어졌다. 이 책이 제기하는 문제의 출발은 심리 상담의 현장에서이다. 저자는 현대인의 다양한 불안에 대해서 심리학이 어떠한 가치의 문제에 대한 해답 없이 자기통제(self-control), 감정의 조절만을 이야기한다는 점에 문제를 제기한다. 자기통제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온 서양의 전통을 참조함으로써 풍성한 답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가장 중요한 주장이다. 저자는 현대의 세속주의와 전통의 지혜를 자주 대비한다. 세속주의가 답하지 않는 많은 것들을 서구 전통의 지혜에서 얻으려 한다.
정신적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정신병원을 찾는 것이 아닌 한국 독자들은 조금 거리감을 느낄 수 있다. 정신병원을 찾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다는 것은 한국에서는 심리적 문제가 심리학으로 모두 이전된 것이 아니라 전통적 지혜의 역할이 어느 정도 수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러한 점에서 미국의 ‘세속주의’와 우리의 세속주의가 완전히 같지는 않다. 많은 부분 공통점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세속에는 동양 전통으로부터 전수된 자기 수련의 흐름도 공존한다. 생활의 심리적 불안에 대한 상담이 어른들의 가르침을 통해 해결될 때도 있는 우리의 삶은, 심리학이라는 특화된 분야에 맡기길 좋아하는 미국인의 삶과 다른 면이 있다. 그러한 점에서 세속주의와 전통적 종교 사상을 날카롭게 대비시키며 현대 세속의 공허함을 비판하는 저자의 논리에 완전히 수긍되지 않는 측면이 한국 독자들에게는 있다.
두번째 낯섦은 저자가 유대교 학자라는 데 있다. 유대교 전통, 특히 랍비들의 전통은 한국에 거의 소개되어 있지 않은 영역이다. 이 책에서 전통적인 기독교적인 죄 해석을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저자의 관점은 기본적으로 유대교적이며 기독교적인 것을 벗어난 입장도 많이 제시된다. 사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여러 전통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해답을 찾는 시도 자체가 랍비들의 자유로운 해석학적 전통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대교 전통에 기반을 두는데서 오는 이 낯섦은, 한국 독자들에게 새로운 전통을 소개하는 매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
 
5. 앞서 이야기한대로 이 책의 미덕은 현재의 문제의 맥락에서 전통적인 지혜를 불러들여 그 유용함을 보여주는 데 있다. 이 책이 얼마나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는지는, 일곱 큰 죄를 다루는 각 장의 시작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그가 어떤 현재의 문제들을 일곱 죄들에 관련시키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교만(pride): 저자는 걸프전 때 미국과 이라크가 서로를 비방하고 깎아내리며 서로의 자존심(pride)에 상처를 주는데 주력했음을 상기시킨다. 현대 국가 간의 전쟁에서 야기되는 감정의 문제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②질투(envy):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같은 국가간 분쟁에는 후세인의 질투가 개재되어 있고, 사회적 갈등에도 성공한 아시아계에 대한 다른 인종들의 질투가 있다.(이런 미국적이고 나이브한 관점이 책의 매력을 반감시키기도 한다) 개인적인 관계에 있어서도 남부럽지 않은 교수가 동창회 이후 친구들에 대한 질투로 인해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된 자신의 환자 이야기를 한다. ③분노(anger): 분노는 다른 위험한 감정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감정임을 지적하면서, 현대 심리 상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이 감정임을 이야기한다. ④음욕(lust): 저자는 현대 미국 사회의 성범죄 관련 통계를 제시하며 이 심각한 문제에 대한 전통 종교의 가르침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⑤탐식(gluttony): 미국 소비문화에서의 음식에 대한 강조, 그리고 다이어트에 대한 강조가 존재하는 식문화에 대한 언급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⑥인색(greed): 자본주의 문화에서의 부의 강조, 도덕적 제약 없이 이익 추구를 우선시하는 사회 분위기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 ⑦나태(sloth):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현대인들이 늘고 있어 불행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 심리 상담은 그들에게 의미를 제공하는데 무력하다는 지적으로부터 논의가 시작된다.
 
6. 위와 같이 현대의 상황에서 문제를 도입한 후, 저자는 능수능란하게 그리스 철학자들, 교부 철학자들, 랍비들의 다양한 견해들을 인용하고 비교하고 의미를 도출한다. 그 방법은 종교 교리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음욕에 대한 장에서 그의 유연한 태도가 빛을 발한다. 음욕에 관해서 기독교 신학자들은 엄격한 태도를 취해왔다. 성적인 행위 뿐 아니라 성욕을 품는 마음까지도 죄를 짓는 것으로 보아 엄격히 통제하고자 하였고, 음욕이야 말로 인간의 죄스러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으로 비난한 것이 전통적인 기독교의 태도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러한 기독교 신학적 입장은 현대인들에게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는 태도를 보인다. 그보다는 히브리 성서에 나오는 유대교의 성에 대한 태도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즉 히브리 성서에서 성적인 욕구를 하느님이 주신 축복으로서 누리는 것을 찬양하는 문구들을 보여주며 그 욕구를 누리되 그 적절한 정도가 어디인지를 고민하도록 촉구한다.
7. 일곱 큰 죄는 한국인들에게 그리 친숙한 개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개념들은 가톨릭 교리에 담겨 있는 것들이지만, 이들이 풍성하게 발달한 것은 대중적인 의식 안에서였고 문화적인 형태, 즉 문학 작품이나 회화에서 생생한 형태로 남아있다. 저자의 지적대로 게헤나(Gehenna)나 지옥에서 고통 받는 무섭고 생생한 이미지들, 단테 <<신곡>>의 지옥편과 연옥편, 히에로니무스 보쉬가 그린 지옥의 공포 등(222)에서 생명력을 지닌 개념으로 전승된다. 기독교라는 종교는 전해지지만 기독교가 뿌리박고 있는 문화까지 송두리째 전해지지는 않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의 차원에서 더 번성한 일곱 큰 죄들은 한국인들에게 낯설다.
최근에 영화 <<세븐>>을 통해서나 우리들은 일곱 죄들이 무엇인지 헤아리는 정도이다. 그러나 이 개념이 우리에게 낯설다는 사실 말고 중요한 사실이 또 있는데, 그것은 일곱 죄 개념이 200년도 전에 처음 한국인들이 기독교를 접할 시점부터 소개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조선 유학자들이 천주교를 접한 중요한 책들 중에는 마테오 리치가 쓴 <<천주실의>>와 더불어 판토하가 쓴 <<칠극>>도 있었다. <<칠극>>4)은 일곱 큰 죄들을 극복하는 일곱 덕목들을 서술한 책이다. 예수회 선교사 판토하는 유교적 용어들로 일곱 죄들과 덕목을 설명하였다. 그 과정에서 동양의 수양론과 서양의 수양론 사이의 대화도 이루어졌다. (사실 우리가 다루고 있는 책의 가장 뚜렷한 한계는, 저자가 서양 지혜 이외의 전통에도 ‘수양론’이 존재함을 전혀 의식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글에서 말하는 지혜는 철저히 서양의 지혜이다. 결론에서 저자는 중국 이민자가 간통한 부인을 망치로 때려죽이는 사건을 예로 들면서 죄에 대한 인식이 문화적이라는 중요한 논의를 펴는데, 이 부분에서도 중국은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다루는 야만적인 문화로만 묘사되지 그 문화적 전승에 대한 관심은 없다.) 남인 계열 유학자들은 일곱 죄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으며, 그리하여 성호 이익은 그 논의가 “유학의 극기설(克己說)과 같은 것으로, 설명하는 순서가 정연하며 비유가 적절하여 유학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점도 있다”는 서평을 남겨놓았다. 이처럼 개념 소개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에도 왜 일곱 큰 죄의 개념들이 여전히 우리에게 낯선 것일까라는 물음은 나의 개인적인 관심사이다. 가설적인 대답을 해 본다면, 우리에게는 전통적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수양론의 전통이 발달해 왔으며 서양의 마음 다스리기 전통을 받아들일 절실한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우리가 다루는 책은 서양의 마음 다스리기에 대한 지혜들을 매력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렇게 소개된 서양의 지혜를 우리의 지혜와 비교하고 그 대화를 통해 더 나은 해답을 모색하는 것은, 이 책을 통해 한국 독자들이 누릴 수 있는 다른 특권이 아닐까 한다.
 

1) 이 결정 사항에는 옛 어투를 고칠 것을 권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교오”는 “교만”으로, “간린”은 “인색”으로, “미색”은 “음욕”으로, “탐도”는 “탐욕”으로, “해태”는 “나태”로 바꾸고, “분노”와 “질투”는 그대로 쓴다.

 

2) 히브리 성서(the Hebrew Bible)는 구약성서(the Old Testament)를 가리킨다. 구약/신약의 구분은 기독교 입장에서 이름붙여진 것이므로 유대교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고 따라서 중립적인 ‘히브리 성서’를 사용한다. 요즘 미국 종교학계에서는 히브리 성서/신약 성서의 용법이 학술적인 명칭으로 정착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당연히 히브리 성서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3) 개인적으로는 이 개념이 형성된 역사적 과정에 흥미를 가졌는데, 그것은 이 책이 다루는 바가 아니다. 대신 저자는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책을 소개하고 있다. Morton W Bloomfield, The seven deadly sins: An introduction to the history of a religious concept, with special reference to medieval English literature (Michigan State College Press, 1952).

 

4) 판토하, 박완식·김진소 옮김, <<칠극: 일곱 가지 승리의 길>> (전주대학교 출판부, 1996). <<칠극>>은 1614년 북경에서 처음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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