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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발제

누미노제 경험으로 메소포타미아 종교를 기술하는 것

by 방가房家 2023. 5. 16.

Thorkild Jacobsen, The Treasures of Darkness: A History of Mesopotamian Religion (New Heaven: Yale University Press, 1976), ch.1을 읽고 남긴 메모.

야콥슨은 오토가 이야기한 누미노제 경험을 전제하여 메소포타미아 종교를 서술한다. 기독교 구도를 따르는 이러한 서술 대신 다른 서술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는 종교는 세계 외적인 실재인 누미노제에 대한 반응으로 서술될 수 있다는 강력한 오토 테제가 전제로 주어진다. 물론 이 경험은 일상의 사물들을 통하여 표현되는데, 이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지시어 또는 은유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종교가 일상의 경험으로부터 구성된다고 서술하는 것과, 외적 실재에 대한 반응이 일상의 경험을 통하여 나타난다는 서술은, 일견 비슷해 보일수도 있겠지만 큰 차이가 있다. 야콥슨은 후자를 택한다. 그리하여 은유가 지시하는 힘을 과장이나 문자적 의미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방성과 “종교적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야콥슨이 이야기하는 “참된 종교적 반응”은 기독교를 모델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내재와 초월이라는 신학 용어를 통해서 메소포타미아 종교의 특성을 서술한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 가장 초기 자료에서 나타나는 자동사적 속성, 즉 신성이 물질의 외적 형태에 머물고 있음을 유대교에서 후대에 발달된 신학(호렙산에서 모세에게 나타난 현현)의 초월과 대비시키는 것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의 말대로 두 경험은 다르다. 그러나 그는 이 초기 특성을 “메소포타미아다움”으로 말하고 싶었던걸까? 그의 서술대로 물질적 형태로 나타났던 메소포타미아의 신격들은 이후 인격신의 모습을 갖추고, 지배자로서, 그리고 나중에는 보호자로서의 속성을 나타낸다. 그러한 역사적 변천을 염두에 두면서도 내재라는 특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다른 질문을 던져보면, 초월과 내재의 대립이 이 종교사를 서술하는 데 적절한 용어일까? 그것은 ‘이 종교는 기독교와 다르다’라는 언명에서 그리 많이 나아가지 못한 이야기가 아닐까 의구심이 든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성스러움이 꺼림칙한(uncanny, 길가메쉬 이야기에서 인용된 이 신에 대한 경험은, 오토의 서술에 가장 부합되는 자료라는 생각이 든다) 행운으로도, 파괴적인 힘으로도 다양하게 경험된다. 그리고 이 힘은 의례적 드라마, 신상의 조형, 종교 문학, 그리고 사원의 건축을 통하여 불리고 다루어진다. 나는 야콥슨이 이 서술이, 메소포타미아인들의 삶의 경험에 종교적 경험이 어떻게 조응하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누미노제 경험을 표현하기 위하여 어떤 삶의 경험들이 매개가 되어 은유로 사용되었는지를 서술하는 야콥슨의 오토식 서술말고, 삶의 경험들로부터 어떠한 종교 경험이 구성되었는지를 서술하는 것이 더 나은 서술 방식으로 모색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야콥슨이 이야기하는 누미노제 경험은 메소포타미아 종교 자료로부터 유추된 결론일까, 그것을 서술하기 이전에 전제된 것일까? 아는 후자라고 생각하며, 그렇기 때문에 다른 서술 방식이 제안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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