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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발제

신화 번역에서 잃는 것, 신화의 키취

by 방가房家 2023. 5. 16.

웬디 도니거의 <<Other People's Myth>> 2장에 대한 간단한 논평. 첫번째 내용은 이전에 했던 생각을 다시 우려낸 것이다.

1.
신화의 가치는 번역을 통해서도 손상되지 않는다는 레비스트로스의 명제를 도니거는 다음과 같이 평범하게 만들어버린다: “향수가 바람에 실려 전달되듯이, 신화는 언어에 실려 전달된다.”(41) 번역을 통해 신화의 고전적 요소가 손상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데, 여기서 도니거가 무엇을 잃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는 부분이 유용하다. 그녀는 성서가 수많은 번역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으며, 번역을 거칠 때마다 “통행요금”을 문다고 지적한다. 미국인의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애착, 천주교 미사의 영어 번역의 사례들은 우리나라 사정을 그대로 설명해주는 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60년대 이전의 미사를 경험한 옛 천주교인들은 라틴어로 진행되는 미사에 신비로움이 가득했다고 회고하신다. 그리고 개역성경을 놓지 못하는 한국 개신교인들도 옛 어투가 형성해주는 아우라를 버리지 않고 싶어한다. 이 갈등은 불경의 한글화 작업에도 나타난다. 소통되지 않는 언어가 낳는 주술적 힘, 이것이 신자들이 잃기 싫어하는 것이다. 종교 경전은 주문(呪文)과 투명한 언어라는 극단 사이에 존재하는데, 이 관계를 도니거는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정리해준다.
“구전, 특히 더 제의적인 전통에서는 자신들의 경전이 번역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성스러운 경전이 들려져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경전이 원어(原語)가 아닌 다른 언어로 성스럽게 유지될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스러운 경전이 읽혀져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들, 특히 더 이성적이고 덜 제의적인 전통의 사람들은 보통 경전이 번역되어 읽히도록 한다.”(42)

2.
신화의 현대적 존재 양태를 이야기할 때 도니거의 태도는 의외로 보수적이다. 신화의 키취에 대한 언급이 그것이다. 이것은 현대 신화에 대한 엘리아데의 입장, 즉 신화의 잔존, 위장된 신화, 더 나아가 상징의 유치화(幼稚化, infantilization)라는 주장과 연속선상에 있다. 도니거는 “내용은 신화적이지만 형식이 신화적이지 않은” 경우와 “형식은 신화적이지만 내용이 신화적이지 않은”(38) 경우를 신화의 키취라고 부른다. 신화가 키취에 손상되지 않는 경우도 이야기하지만, 기본적으로 키취는 “보통 전통적 신화가 전통에서 끌어오는 본질이 결여되어 있다.”(40) 신화적인 ‘형식’이라고 할 때, 도니거는 구전 전승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신화를 담는 형식은 필연적으로 다양화하며, 도니거 자신이 영화를 중요한 매체로 인정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그 형식들을 비신화적인 것이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다. (연속선상에 놓고 있긴 하지만) 키취와 고전을 대조하는 서술(39)에서는 고급문화적 취향마저 느껴진다. (신화와 고전을 동일선상에 놓은 분석은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삼국지>>를 신화로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는데, <<삼국지>>가 다양한 형태로, 즉 여러 번의 번역, 어린이용 도서, 만화, 드라마, 그리고 “게임”으로 현대인에게 향유되는 양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후의 저작에서 이 부분에 대한 도니거의 태도는 확실히 유연해졌다고 생각한다. <<Implied Spider>>나 "Post-modernism and -colonial -structural Comparison"에서 그녀는 신화가 대중적 창작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영화를 비롯한 대중매체의 신화의 등장을 훨씬 자유롭게 사용하며 키취라는 용어 사용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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