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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발제

트랜스휴머니즘의 죽음관에 대한 한 신학적 비판

by 방가房家 2023. 5. 14.
이 글의 저자는 기술로 죽음을 극복하려는 트랜스휴머니즘의 태도를 신과 같아지려는 인간의 교만이라고 비난한다. 거의 바벨탑 느낌. 전형적인 신학적 논리. 이 글에 대한 내 생각은 저자가 사족처럼 붙여놓은 마지막 문장과 같다. “물론 트랜스휴머니즘이 기독교 구원론 드라마를 구현해야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이 글은 왜 쓴 거지?
 
Todd T. W. Daly, “Diagnosing Death in the Transhumanism and Christian Traditions”, Calvin Mercer & Tracy J.T Rothen ed., <Religion and Transhumanism> (Santa Barbara: Praeger, 2015).
 
트랜스휴머니즘과 기독교 전통의 죽음 진단
 
1. 의학저널에 실린 한 우화(“The fable of the dragon tyrant”)에서 죽음은 매일 만 명의 사람들을 제물로 받는 폭군 괴물로 묘사된다. 과학 기술에 의해 이 괴물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죽음을 다스리는 것은 트랜스휴머니즘의 이상이다. 죽음을 죽이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여러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죽음을 인간이 제어하는 범위 내에 놓아야 한다고 공언한다. 그들은 인간의 신체적 한계 극복을 통래 죽음에 도전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개인의 자유와 개인의 선택에 대한 높은 가치가 전제되어 있다. 죽음은 개인의 궁극적 종언이고 인간 자유와 독립성의 위협이기 때문에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에는 자연세계에 대한 경외, 존중, 공감이 결여되어 있다.
 
2. 죽음을 극복하는 세계관이라는 점에서 트랜스휴머니즘과 기독교가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죽음 이해에 큰 차이가 있다. 기독교의 죽음 극복은 그리스도가 죽음으로부터 육체적으로 부활한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스도는 죽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자신을 죽음에 내어놓음으로써 죽음을 무해하게 하고 죄를 치유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여기엔 원죄 교리라는 죽음에 대한 도덕적 의미가 존재한다.
본회퍼에 따르면, 인간의 타락 신화는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하느님과 같은’(시쿠트 데우스Sicut Deus) 존재가 되어버린 것을 의미한다. 선악과의 유혹은 제한 없는, 하느님과 같아진다는 약속이며, 하느님만 속한 더 높은 유형의 존재를 추구하며 인간은 죄를 짓게 되었다. 
기술을 통해 죽음을 극복하려는 트랜스휴머니즘 프로젝트가 묘사하는 세계의 근저에는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인간관이 존재한다. 죽음의 도덕적 측면을 거부함으로써,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죽음을 죄의 결과보다는 물질적 존재가 대하는 궁극적 적으로 잘못 진단하였다.
물론 트랜스휴머니즘이 기독교 구원론 드라마를 구현해야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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