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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발제

트랜스휴머니즘 시대의 신학적 인간론

by 방가房家 2023. 5. 14.
“종교와 트랜스휴머니즘”(Religion and Transhumanism)이라는 책의 2장. 트랜스휴머니즘에 의해 변화한 인간 개념을 설명하고 이것을 여전히 신학적 인간론의 논의 안에서 설명하고자하는 시도. 영락없는 신학 논문으로서의 논리 전개이다.
 
Matthew Zaro Fisher, “More Human Than the Human? Toward a ‘Transhumanist’ Christian Theological Anthropology”, Calvin Mercer & Tracy J.T Rothen ed., <Religion and Transhumanism> (Santa Barbara: Praeger, 2015).
 
1. 포스트휴머니즘의 두 형태: 사이보그와 트랜스휴먼
(이 글에서 제일 새로웠던 부분인데, 그나마도 다른 학자의 견해를 소개한 것. 포스트휴먼, 트랜스휴먼 등은 마구 혼용되는 단어인 것 같다. 아래와 같은 구분은 그 학자 특유의 것으로 아직 학계의 합의는 없는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각기동대를 처음(!) 보았는데, 아래의 구분에 따르면 공각기동대는 사이보그와 트랜스휴먼의 대결이라고 생각된다.)
 
쓰웨트베이츠(Thweatt-Bates, Cyborg Selves)의 구분이 논의의 기반이 된다. 두 형태의 구분 기준은 기술과의 결합에서 몸의 역할에 어느 정도의 강조점을 두느냐이다.
-사이보그(cyborg): 사이보그라는 혼성적 육체화(hybrid embodiment)가 인간-비인간의 존재론적 관계의 상징 역할을 하는 포스트휴먼 구성. 몸은 생명기술적 정체성의 일부로서 포함된다.
-트랜스휴먼 업로드 시나리오(transhuman upload scenario)/업로드된 의식/트랜스휴머니즘: 가상의 존재나 지속적인 인공 육체를 향한 이론적 가능성을 제시하는 트랜스휴먼 구성. 생물학적 한계는 극복 대상으로 여겨진다.
 
 
2. 트랜스휴머니즘의 문제
(정신이 육체에 업로드될 수 있다니? 트랜스휴먼에 전제된 지독한 영육이원론을 어찌 할까? 내가 보기엔 답이 없다.)
 
트랜스휴먼에서 기술은 이전의 도구 사용의 연장으로 이해된다. 기술적 결합은 논리적으로 인류의 진화 역사의 연장선상에 있다. 자연을 극복하려 한다는(supernatural) 점에서 종교적 측면을 논할 수 있다. 종교와 트랜스휴머니즘은 동물적 설명에 대한 반작용으로 ‘초월’을 향해 활동한다. 또한 이 세계를 다른 세계로 바꾸는데 필요한 도구를 발달시키는 노력, 우리 자신의 초월을 창조하려는 노력이다.
이 모델은 인간 의식이 하나의 정보 패턴이라고 전제한다. 자기 존재를 완전히 지각하는 사람을 재생산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신학의 입장에서 제기되는 질문은 신의 형상인 인간의 신성성이 유지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최소한의 자기 인식은 유지될 수 있을까? 이쪽에서는 그렇다고 한다. 기억, 가치, 태도, 감정적 성향과 같은 특정한 정보 패턴이 보존되는 한 당신은 살아남는다고. 
그러나 몸은 어떻게 되는가? 몸이 정체성을 구성하지 않는가? 쓰웨트베이츠는 모순을 지적한다. 트랜스휴머니즘에서 한편으로는 정신이 생물 활동으로 환원된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정보 패턴이라고, 즉 다른 물질로 재현될 수 있다고 본다. 환원적 방법론을 사용하여 이원론적 목표로 나아가는 모순이다. 그래서 그는 트랜스휴먼보다는 사이보그가 포스트휴먼 신학적 인간론을 건설하는 더 좋은 토대가 된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의견을 달리 한다. 사이보그는 트랜스휴먼에 진화론적으로 앞선 것에 불과하다. 사이보그가 자연 환경 내의 가상 자아라면, 업로드는 조작된 환경 내의 가상 자아이다. 둘 다 ‘생각하는 나’(I think)가 경험의 주체이고, 둘 다 특정한 물질적 형태이기 때문에 사이보그가 육체화(embodied)되었고 업로드가 탈육체화(disembodied)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3. 신神-진화론의 신학적 인간론(Theo-evolutionary theological anthropology)
(칼 라너의 초월적 신학을 끌어들여 트랜스휴먼 신학이 가능하다는 논지를 펴는 것이 이 논문의 핵심인데, 내용도 복잡하거니와 취지에 동의가 되지 않아 거의 패스. ‘초월’ 등의 신학적 표현을 어떻게 하든 유지하려는 노력이다.)
 
저자는 진화론적 복잡성을 통한 역사 내에서 신의 형상이 창발하는(emerge) 신학적 인간론을 주장한다. 신의 형상은 인간 종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진화론 맥락에서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칼 라너에 따르면, 물질적 존재는 인간(human person)에서 활동적 초월성을 성취한다.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해 물음을 던질 수 있고 또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라너는 영혼과 물질이 존재론적으로 서로를 구성한다고 한다. 물질은 하느님의 창조 행위를 통하여 영혼으로부터 창발된다. 물질이 존재의 선이해(pre-apprehension)를 통해 세상으로 뻗어 나온 우발적인 존재로서의 근본적인 구조를 스스로 깨달을 때, 창조된 우주 내에서 영혼이 인식된다. 이때 ‘세상으로 뻗어 나옴’을 전취(前取, Vorgriff)라고 부른다.
(참고: 전취는 현실 세계 안에서 만나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인식 대상을 초월하는 능동적 정신의 초월능력이다. 전취는, 말하자면, 인간이 세계 안에서 만나 직접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개별 대상을 유한한 것으로 파악하고 이 개별 대상의 하성(何性, quiddity)을 추상하여 ‘무엇’으로서 판단하는 지성적 가능성이다.)
 
 
4. 우리는 자연 세계의 역동성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인류만이 하느님의 편애를 받는다는 인간중심적 주장을 지탱하기 버겁다. 우리는 다른 종, 컴퓨터 프로그램, 혹은 업로드된 친구와 ‘나와 너’(I-thou) 관계를 갖는 지적 공간 안에 존재한다. 
예수의 인성이라는 로고스의 가정을 통해 진화론적 질서 내에 하느님이 개입(in-breaking)함은 인간성의 신성성과 창조 내의 신의 형상을, 그 물질적 변형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절대적으로 보장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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