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조너선 스미스의 <Relating Religion>의 2장에서 메모한 것이다. 이 책의 2, 3장은 엘리아데의 대표작 <Patterns in Comparative Religion>을 본격적으로 분석한 논문이다. 여기서 다루어진 엘리아데의 책은 우리나라에 두 종류의 번역이 나왔다. 불어판을 번역한 이재실의 <<종교사 개론>>(까치, 1993)과 영어판을 번역한 이은봉의 <<종교 형태론>>(한길사, 1996)이다. 제목이 영 딴판인 것은 아래에 잘 설명되어 있듯이 출판 과정의 우여곡절 때문이다. 불어판 제목인 “Traité d'histoire des religons”를 <종교사개론>으로 옮긴 것은 틀린 것은 아니겠으나, 스미스의 의견을 참고한다면 ‘Traité’는 간단한 입문의 의미인 ‘개론’보다는 포괄성을 담고 있는 ‘론’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게다가 엘리아데는 본격적인 ‘종교사’를 서술하기 앞서 그에 대한 서설로서 형태론적인 접근을 이 책에서 시도한 것이니 ‘종교사에 대한 개론서’라고 받아들여지는 이 제목은 아무래도 적절하지 않다. 한편 영어 제목 <Patterns in Comparative Religion>을 옮긴다면 ‘비교 종교 연구에서 나타나는 유형들’ 정도가 될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pattern'은 유형이다. 그러나 엘리아데가 생물학의 유형론(morphology)적 접근을 종교 자료에 적용한 것이라는, 아래 글에 나오는 조너선 스미스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책 제목을 <종교 형태론>이라고 옮긴 것은 (관점에 따라서는) 엘리아데의 의도를 잘 살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래 글(2장)은 다음 글(3장)에서 엘리아데 책의 구조를 본격적으로 탐구하기에 앞서 책의 맥락을 소개하는 글이다. 엘리아데의 작업은 괴테의 생물학적 기획(괴테의 생물학, 이 얼마나 낯선가...)의 연장선상에서 독해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괴테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나오지만, 엘리아데에 대해서도 상당히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예컨대 <종교형태학>의 영어 번역 <Patterns in Comparative Religion>이 신중하지 않게 이루어졌고, 엘리아데가 그것을 검토하였는지도 불분명하다는 내용은 충격적이다. 우리가 ‘원서’로서 귀하게 여기던 그 책이 그런 책이었다니. 엘리아데의 무신경함에 화가 난다. 책 제목 나오는 과정도 그랬고... 물론 당시 급박한 상황이라든지 엘리아데의 엄청난 작업을 보면 번역에까지 신경 쓰기 힘들었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래도 학자가 자기 저서에 책임감을 가져야지. 그는 위대한 사상가임에는 틀림없으나, 학자로서는 불친절하다. 고생하는 후학들도 생각해줘야 한다.
또 스미스의 평가 중에 엘리아데 말년의 대작 <세계종교사상사>를 ‘awkward’하다고 평한 것도 놀랍다. 책이 미완성이고 체계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나온 표현이겠으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건 부정적인 표현이다. 아무래도 스미스는 엘리아데의 지적 전성기인 1949-57년의 작업을 중시하는 것 같다.
Jonathan Smith, <<Relating Religion>>
2. Acknowledgements: Morphology and History in Mircea Eliade's Patterns in Comparative Religion (1949-1999) Part I: The Work and Its Contents
“<형태론>은 종교학에서 영향력 있는 접근을 정초한 저작이다. 이 책에 동의하거나 반대하면서 생각할 수는 있어도, 이 책을 회피하거나 제외하고서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책에 관하여:
엘리아데의 이전 저작에서는 연금술, 요가, 루마니아 민속에 관한 연구는 있었지만, 전지구적 스케일의 연구가 나온 것은 <형태론>이 처음이다. 1937년 부카레스트 대학에서 한 종교 상징에 대한 강의가 첫 시작이 되었고, 1940-41년에 “(비교)종교사 서설”('Prolegomena to the History of Religions' or 'Prolegomena to a Comparative History of Religions') 원고 작성을 시작한다. 1945년에 파리에서 원고 집필을 재개하였으며, 1946-48년 고등교육원의 강의가 기초를, 특히 처음 두 장(章)의 기초를 이룬다. 1948년에 불어로 출판을 의뢰하기 시작. 처음에는 “종교사 서설”을 제안했으나 기각, 다음에는 “성스러움의 형태론”을 제시했으나 기각. 1949년에 “종교사 개론”(Manual of the History of Religions; Traité d'histoire des religons)으로 출판되었다. 독어판과 영어판에서는 각각 <종교적인 것과 성스러움 것: 종교사의 요소들>, <비교 종교학의 유형들>(Patterns in Comparative Religion)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불어 제목의 ‘traité'는 입문서로서의 간결함(introductory brevity), 포괄성(comprehensiveness)을 모두 의미하는데, 스미스가 보기에는 엘리아데가 의도한 것은 후자의 특성이다.
영어 번역은 1958년에 나왔다. 1949-57년에 엘리아데는 가장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였다. 그때 프랑스판 <종교형태론>(1949), <영원회귀의 신화>(1949), <샤머니즘>(1951), <요가>(1954), <대장장이와 연금술사>(1956), <성과 속>(1965), 그리고 야심적인 소설 <금지된 숲The Forbidden Forest>(1955)이 출간되었다. 1958년에는 시카고 대학에 적을 두고 영어권 청자들을 불러들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1955년에 <영원회귀의 신화>가 번역되었고, 다른 번역들이 준비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이 책은 출판인의 딸이자 회자 설립자의 여동생인 로즈마리 쉬드(Rosemary Sheed)가 번역하였다. 그녀가 다른 불어책을 번역하였다는 기록도 없고, 엘리아데가 번역을 검토하였다는 기록도 없다. 번역은 불만족스럽다. 쉬드는 계속해서 공식(formulation)들을 잘못 번역하고 본문을 잘못 이해한다. 영어 번역에서 엘리아데의 기술적 용어들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문장이 빠지기도 하고, 기독교 주제를 다룰 때는 문장이 첨가되기도 한다.
형태론과 역사:
비트겐슈타인이 <황금 가지> 말고 <형태론>에 대해서 말했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프레이저의 진화론, 발전론적인 자료 배열에 대해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조언한다. “역사적 설명, 즉 발전 가설로서의 설명은 자료를 요약하는--자료를 개관하는-- 단지 한 가지 방법일 뿐이다.” 프레이저가 모아놓은 자료들은 괴테가 말한 “알려지지 않은 어떤 법칙”을 지시한다. 그래서 “나는 단지 사실적 자료들을 정렬하여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쉽게 통하게 하고 그것에 대한 분명한 관점, 일목요연한(perspicuous) 방식으로 보일 수 있게 할 수도 있다.” “일목요연한 제시는 우리가 ‘연관성을 본다’는 바로 그 사실에 놓여있는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형태적 연관성을 보여주는 일목요연한 방법, 그것을 괴테의 용어로 ‘형태론적’(morphological) 방법이라고 부를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이 드러낸 것은 문화 연구에서 뿌리 깊은 인식론적인 이원성, 즉 형태론적인 접근과 역사적 접근의 이원성이다. 진즈부르그는 이론적인 측면에서 유형론적/형식적(typological or formal) 연관성과 역사적 연관성 사이의 대립적 관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그가 하려는 것은 형태론과 역사를 통합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스미스가 <형태론> 독서를 통해 하려는 것이 그것이다. 형태론과 역사라는 두 관점의 통합의 실험을, 두 관점 간의 논쟁의 역사를 <형태론> 안에 집어넣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괴테와 엘리아데:
괴테의 식물 연구는 1790년 논문 <식물의 변태>(Metamorphosis of Plant)로 대표되는데, 그 연구가 19, 20세기 생물학 사유에 남긴 족적은 잘 정리되어 있다. 다른 분야의 족적을 몇 개 들어 보면, ⒜ 헤겔의 <<철학적 과학의 백과사전Encyclopaedia of Philosophical Sciences>>(1817) 초판에서 “식물”과 관련한 단락은 괴테의 형태론적인 개념을 전개하였으며, 역동적 통일체라는 원리를 도입함으로써 린네의 정적이고 외적인 분류를 극복하였다. 데리다의 Glas(1974)는 이것의 확장된 변형을 취하여 창조적으로 놀이를 했다. ⒝ 괴테의 「변형」에 대한 릴케의 철저한 연구는 그의 Sonette an Orpheus(1923)에 영향을 주었다. ⒞ 언어학에서 ‘유기적 형식’이라는 훔볼트의 개념, 그리고 생물학에서 괴테의 보다 이른 시기의 ‘Urform’ 이론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는 일은 노엄 촘스키의 Cartesian Linguistics라는 지성적 모험에서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다. ⒟ 괴테의 식물학적 형태론을 “세계사의 형태론”으로 전환시키려는 슈펭글러의 전면적인 시도가 있다.
엘리아데가 <변태>에 가졌던 애정은 각별했다. 그는 스미스의 “티끌 모아”에 대해 논평할 때, 종교학자들이 현상학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실제로 머릿속에 있는 것은 형태론이라고 말했다. 스미스는 엘리아데의 저작에서 역사와 유형의 역할이 잘못 이해되는 것은 엘리아데가 괴테의 형태론의 자장(磁場) 안에 있음이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엘리아데는 <시련>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괴테가 식물 형태론을 연구하고 있을 때, 그는 모든 식물 형태들을 추적하여 그가 “원형적 식물”(the original plant)이라고 부른 것까지 소급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으며, 결국에는 그 원형적 식물(Urpflanze)을 잎과 동일시하였다. …… 내 입장에서, 최소한 나의 초기 입장에서 볼 때, 나는 많은 나무들--사실들, 사람들, 의례들-- 가운데 숲에 대한 시야를 유지하기 위해서 종교학자들은 “원형적 식물”, 자기 분야에서 말하면 원형적 이미지(the primal image)의 추구를 잘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간단히 말해서,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종류의 구조주의는 …… 의미의 기초가 되는 원형적 질서(the primordial order)를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어떤 의견을 가진 종교학자가 되었든 간에 그의 의무는 성스러운 현상의 원래 의미를 파악한 후 역사를 해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괴테의 형태론:
엘리아데의 작업 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