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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발제

기원전 3천년대 메소포타미아 종교

by 방가房家 2023. 5. 6.
(이하는 Thorkild Jacobsen, "4th Millennium: The Gods as Providers," The Treasure of Darkness. 2장을 정리한 것이다.)
초기 메소포타미아 종교는 생활을 영위하게끔 해주는 자연의 힘에 대한 숭배를 통해 형성되었다. 기본적인 경제 활동 영역에서 풍요와 다산을 보장해주는 힘에 대한 숭배가 신화와 제의를 통해 신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
[남쪽에는 늪지 생활과 낚시와 사냥과 관련된 신들: 서쪽 에리두 늪지 동식물의 신 엔키(Enki), 물고기의 여신 난쉬(Nanshe), 그리고 니나(Nina)와 키닐샤(Kinirsha)에서는 깊은 물에 사는 생물들에 새 생명을 주는 두무지-압수(Dumuzi-apzu)가 있다. 유프라테스강 하류에는 좋은 나무의 신 닝기쉬지다(Ningishzida), 물을 아는 신 니나주(Ninazu), 봄에 나무와 관목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아이” 다무(Damu)가 있다. 또한 키아브릭(Kiabrig)엔 소의 신 닝구불라가(Ningublaga), 우르(Ur)엔 소의 신이자 달신 난나(Nanna)가, 쿨랍(Kullab)엔 야생 황소의 여신 닌수나(Ninsuna)와 남편 루갈반다(Lugalbanda)가 있다. 북쪽 에딘(Edin) 중앙 초지 도시들은 목동 두무지와 그의 신부 이난나를 그들의 주신으로 모신다. 북동쪽 농부들의 도시 슈루팍(Shuruppak)과 에레쉬(Eresh)는 닌릴(Ninlil)이나 닌쉐발구누(Ninshebargunu), 니다바(Nidaba) 같은 곡물의 여신을 모신다. 니푸르는 바람과 괭이의 신 엔릴(Enlil)과 그의 아들인 폭풍우와 쟁기의 신 니누르타(Ninurta)를 모신다.]


이 시기 종교를 대표하는 두무지 숭배를 통해서, 우리는 자연의 생산력에 대한 고찰이 종교적 이미지로 맺히는 양상을 볼 수 있다. 우룩 화병(the Uruk Vase)은 이 시기 풍요의 주제를 잘 보여주는 자료이다. [기원전 4천년대 말기 자료로 추정. 두무지가 선물을 결혼 들고 신부의 문 앞으로 다가가는 장면. 문 앞에는 창고의 여신 인안나가 서 있다. 아래에는 다양한 선물들이 뒤따르고 있다.]
이 글에서 제시되는 두무지 숭배(두무지는 구약성경에는 탐무즈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에스겔서> 8:14.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그곳에는 여인들이 앉아서 담무스 신을 애도하고 있지 않을가!")는 단일하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기, 다양한 지역에서 발달된 신앙들을 저자가 편의상 하나의 이야기로 꿰어맞춘 것이다. 앞으로 살펴볼 자료에서 나타나는 두무지의 모습은 공동체의 경제적 기반에 따라서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1)대추야자 열매를 생산하는 힘, 두무지-아마우슘갈라나(Dumuzi-Amaushumgalanna). 성혼을 경축하는 의례에서만 등장한다. (2)목동 두무지. 양치기들에게는 양의 의인화인 두투르의 아들, 소치기들 사이에서는 ‘들소의 여주인’ 닌수나의 아들로 인식된다. 인난나와 결혼을 축하하는 의례에서 등장하기도 하지만, 건조한 여름 햇빛에 목초지가 사라지고 목축 활동이 중단되는 시기에는 애통한 애도의 의례에서 등장한다. (3)곡물의 두무지. 보리, 특히 맥주에 깃든 힘으로서의 신으로 농부들과 관련된다. (4)‘아이’ 다무. 원래 두무지 숭배와는 독립적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유프라테스강 하류 과수원 경작자들이 숭배한 다무는 자라나는 수액에 깃든 힘을 나타낸다. 두무지의 다른 형태들과는 달리 결혼할 나이가 아니라 어머니, 누이와 함께 아이로 표현된다. 다무 숭배에는 어머니와 누이가 지하세계로 죽은 신을 찾아나서는 의례가 나타난다.
사랑
의례보다는 오락적 성격의 문헌들에서 둘의 사랑이 노래된다. 둘은 침대에서 놀고[<누이의 전갈> "The Sister's Message," 4.08.04 원문 번역], 밤새 함께 있은 후에는 결혼을 선포한다. 두무지의 매력은 “풍요함”이다.[<인안나와 두무지의 만남> "The Wiles of Women," 4.08.08 원문 번역] 인안나는 두무지와의 결혼에서 그가 농부로서 곡식을, 목동으로서 양모를 창고에 가득 채워줄 것을 꿈꾼다.[<새색시의 꿈> "The Bridal Sheets of Inanna," 4.08.01 원문 번역]
결혼
결혼에 대한 자료들은 좀더 의례적 맥락을 지닌다. <인안나와 두무지의 혼인>(Dumuzi's Wedding)에는 선물을 준비하는 절차가 소개된다. 인안나는 청금석 목걸이를 하고 원통형 인장을 든 채 남편을 맞이한다. 인안나를 껴안은 두무지는 찬란한 식탁을 약속한다. <우록 텍스트>는 두무지-아마우슘갈라나와 인안나의 결혼을 소개한다. 인안나는 ‘보석이 빛나는’ 대추야자 더미로부터 청금석을 모아 치장하는데, 이는 옷을 입는 절차의 묘사이다. 이어서 그녀는 문을 열고 신랑을 맞이하는데, 이것은 수메르 결혼 의식의 정점을 이루는 대목이다. 인안나는 대추야자를 저장하는 공동 창고를 상징하며, 그녀의 문장은 창고 입구의 기둥이다. 반면에 두무지는 매년 대추야자에서 돋아나는 새순의 힘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둘의 결혼은 대추야자를 생산하는 풍요의 힘이 창고의 저장력과 만남을 의미한다. 풍요가 영속할 것이라는 축복이 내린 것이다.
<이딘-다간 텍스트>("Hymn to Inanna," 2.5.3.1 원문 번역)에서는 이신(Isin) 왕조의 통치자 이딘-다간(1974-1954)이 두무지와 동일시된다. 이 자료에는 왕과 여사제가 행했던 성혼 의례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풍요를 상징하는 왕과 창고의 역할을 상징하는 여사제가 성적인 교합을 하는 의례를 통해서, 인간 왕이 두무지의 힘을 행사함이 선포되었다. 여기서 또 주목할 것은 두무지의 인간으로서의 성격이 강해지는 반면에, 풍요의 근원이 두무지로부터 인안나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신부의 축복>이라는 문헌에서 두드러진다. 인안나가 축복을 내리자 왕이 그녀의 샅에 얼굴을 파묻는 이 노래에서, 축복의 범위가 확장되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추야자 뿐 아니라 과수원, 목장, 강에도 축복이 적용된다. 이는 당시 경제 활동의 확장이 반영으로, 이것은 우룩 화병에 나타나는 다양한 선물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목자의 결혼 텍스트>는 목축을 배경으로 하기에 유제품이 축복으로 등장하고, 축복의 호흡도 짧다. 이 시는 풍요를 불러오기 위한 우주적 성행위를 강조한다. 인안나는 자기 성기가 털도 듬성듬성한 순결한 미개간지임을 강조하며, 어서 쟁기질을 하라고 두무지를 좨친다.
죽음과 애도
<두무지의 꿈>(1.4.3 원문 번역)에서 두무지는 죽음의 전조를 느낀다. 두무지가 어떻게 죽느냐는 이야기에 따라 다른데, 여기서는 적들에게서 도망치다가 물에 빠져 죽는 반면에 <인안나의 하강>(1.4.1 원문 번역)에서는 인안나의 노여움을 받아 죽는다. 여기서 두무지가 곡물의 힘, 특히 보리와 보리로 만든 맥주의 신이라면, 누이 게슈티난나는 포도와 포도주를 상징한다. 둘의 교대는 계절에 따른 두 술의 교환이다. 한편 인안나가 지하세계로 내려가 썩은 고깃덩어리로 못에 매달려 있는 상황은, 춘곤기 때 창고가 바닥나고 썩은 고기만 남아있는 두려운 순간의 반영이다.
찾아나서기와 귀환
두무지의 어머니와 누이가 찾아나서는 모티브는 수액에 깃든 힘으로서의 두무지, 즉 다무에게 나타난다. 그들은 지하세계로 가는 강까지 쫓아가 다무를 풀려나오게 하며, 풀려나온 다무는 수액의 힘으로 세계를 풍요롭게 하고 사원(우룩의 에안나 사원)을 복원시킨다.
이 글에서는 두무지와 관련된 구혼, 결혼, 죽음, 애도의 의례들과 은유적 유형들을 살펴보았는데, 이런 모습은 메소포타미아 주요 신들에게서 대부분 나타난다. 구혼과 결혼은 엔릴, 난나/수엔, 니누르타/닌기르수와 관련된 신화와 의례에서 나타난다. 죽음과 지하세계 하강은 안, 엔릴, 엔키, 난나/수엔, 니누르타/닌기르수, 우투, 이슈쿠르, 인안나에서도 나타난다.
기원전 4천년경 메소포타미아 종교의 기본적인 특성은 자연에 깃든 힘에 대한 신앙이었다. 이들 힘은 인간의 생존에 중요한 생명의 본체로 인식되었으며, 인간들과 의미있는 관계를 형성할 필요에 의해서 점차 인간화되었다. 이전의 비인격적 형태로부터 신이라고 불릴만한 형태를 갖추는 쪽으로 발전하였으며, 이 신들은 가족과 직업을 갖추며 조직화되었다.

** 이 장에서 야콥슨은 초기 메소포타미아인들의 삶에서 신에 대한 개념이 어떻게 길어올려졌는지를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자연을 이용하여 농사와 목축을 통해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삶의 주기와 위기에서 그들은 신화적 상상력을 통해 현상을 설명하고 삶을 보장해주는 길을 마련하였다. 삶을 통해 성스러움을 구성하는 과정이 이처럼 생생한 데도 불구하고, 야콥슨은 누미노제라는 설명틀을 고수한다. 그러나 세계 외적인 존재에 대한 경험이 일상의 경험을 통해 은유, 매개된다는 설명은 여기서 거추장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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