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크라테스 학파는 주술적 치료를 거부하고 합리적 의학을 제창하였지만, 그들에게 현대 과학의 태도를 지나치게 뒤집어씌우면 오해가 생기는 부분이 있다. 그들은 합리성을 추구하였지만 반종교적 태도를 취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이 내세운 것은 새로운 종교적 태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래는 전집에 나온 인상적인 내용으로, 다음 책에서 재인용한 것이다.
반덕진, <<히포크라테스의 발견>>(휴머니스트, 2005).
유명한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시작은 이렇다. 그들이 신을 거명한 것은 면피용이거나 관습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진심이 담겼다고 생각된다. 그들은 ‘아스클레피오스 신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이들이다.
“나는 아폴론 신, 아스클레피오스, 건강의 여신 히기에이아, 파나케이아, 그리고 모든 남신과 여신을 두고 그들을 나의 증인으로 삼아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이 선서와 계약을 이행할 것을 맹세합니다.”(202)
종교적 치유를 거부하고 합리적 의학을 주장한 내용. 그런데 ‘합리적 의학’에는 당대의 젠더 관념이 포함되어 있다.
“여자들은 예언자들의 권유로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많은 봉헌물, 특히 매우 값비싼 의상을 바쳤다. 그러나 그 여자들은 완전히 속은 것이다. 혈액의 흐름만 원활하다면 이 질병에서 해방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병에 걸린 소녀들에게 가능한 한 빨리 결혼하라고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들은 임신하면 좋아지기 때문이다.”(277)
모든 질병은 신적이라는 선언은 엄숙하다. 다만 여기서 신은 변덕스러운 성격의 존재가 아니라 자연의 섭리에 해당하는 더 발달한 개념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의학은 새로운 신론에 바탕을 둔다.
“어떤 질병도 다른 질병보다 더 신적이거나 인간적일 수 없다. 모든 질병은 비슷하며 모두 신적이다. 각 질병은 각각의 본성이 있으며, 어떤 질병도 자연적 원인 없이 발생하지 않는다.”(294)
의사의 철학적(인문학적) 자질을 강조하는 아래 내용에도 새로운 종교론이 명확히 표현된다. 미신의 탈피와 탁월한 신관!
“철학자인 의사는 신과 같다. 지혜와 의학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 사실 의학은 지혜에 필요한 모든 자질들을 내포하고 있다. 의학은 공정성, 겸손함, 신중함, 건전한 사고, 판단력, 평온함, 단호함, 순수함, 정중한 언어……미신의 탈피, 탁월한 신성을 가지고 있다.”(338)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알려진 말의 원래 맥락.
“인생은 짧고 의술은 길다. 기회는 쏜살같이 지나가고 경험은 불확실하며 판단은 어렵다.”(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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