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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_자료/영상

뭔가 빠진 것 같아서 하느님은 조지를 만들었다

by 방가房家 2023. 4. 14.

대화를 나누다 보면 무슨 영화를 제일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는데, 꽤나 난감한 질문임에 틀림없다. 내가 본 숱한 영화들을 떠올려서 그 중에 뭐가 “제일” 내 맘에 들었는지를 정해야 하는데, 생각하기가 귀찮다. 그래서 나는 늘상 대답하던 대로 “제8요일”을 제일 좋아한다고 답하곤 한다. 왜 제일인지의 이유는 없다. 그냥 내 맘 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비슷한 유형의 난감한 질문으로 좋아하는 여자 연예인 질문이 있다. 이 질문에는 “신형원”이라고 답한다.)

얼마 전 강남역에서 “제8요일”의 DVD를 3천원 주고 샀다. 왜 이런 가격이 나왔는지 유통구조를 이해할 수 없지만, 엽기적으로 싼 것만은 틀림없다. 7-8년 전 쯤에 제8요일의 사운드트랙 테이프를 6천원이 넘는 가격에 샀는데 말이다. (이젠 버려야겠다.) 어쨌든 이 아름다운 영상물을 소유하게 되었다.



학부생 때 이 영화를 갖고서 보고서를 쓴 적이 있었다. 영화 하나 골라 종교학적인 분석을 하는 숙제였는데, 해서 나는 이 영화에 온갖 종교 용어들을 쏟아부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이질적인 두 세계의 만남, 성과 속을 매개하는 조지라는 인물, 일상(속)을 비집고 들어가는 비일상(성)의 힘, 그래서 연상되는 7요일에 덧붙여진 제8요일의 상징성, 하늘-땅 사이 수직 방향의 카메라 이동(조지의 등장, 비, 폭죽, “1분간 쉬었다 가자”는 기가 막힌 롱 테이크, 그리고 마지막에 조지의 비극적인 비상+추락과 관련된 공간 이동 등), 막판에 조지와 친구들이 아리와 합류하여 만드는 난장, 그 리미널적인 상황을 연출하는 코뮤니타스, 조지를 돌보아주는 대지모신과 같은 존재 어머니의 환상, 조지의 세계를 구성하는 환상, 마르케스를 연상케 하는 마법적 사실주의, 영화의 아름다운 종결부(합창하는 명장면)까지 장식하는 아름다운 상상의 세계, 그 상상의 세계가 사람의 인식 속에서 구성하는 실재(reality)...
굳이 틀린 이야기들은 아니라 하더라도, 무리하게 갖다붙인 이야기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쩌랴, 지금 나보고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해도 비슷하게 쓸 것 같다.
이 영화를 나에게 정말 아름답게 해 주는 것은 영화의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나레이션이다. 눈물나게 아름다운 이 대사를, 그저 옮겨 놓기만 한다.

태초에 아무 것도 없었다. 음악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다
첫째 날, 신은 태양을 만들었다. 눈이 부시다.
둘째 날. 신은 대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신은 바다와 바람을 만들었다.
셋째 날, 신은 레코드를 만들었다.
넷째 날, 신은 TV를 만들었다.
다섯째 날, 신은 풀을 만들었다.
잘리면 아파하므로, 다정하게 달래 주어야 한다.
여섯째 날, 신은 인간을 만들었다.
일곱째 날, 신은 쉬셨는데, 그게...
-영화의 도입부에서

태초에 아무 것도 없었다. 들리나니 음악 소리뿐이었다.
첫째 날, 신은 태양을 만들었다. 눈이 부시다
둘째 날, 신은 바다를 만들었다.
셋째 날, 신은 풀을 만들었다.
넷째 날, 신은 암소를 만들었다.
다섯째 날, 신은 비행기를 만들었다.
여섯째 날, 신은 인간을 만들었다. 나는 그 중에서
여자와 아이를 좋아한다. 뽀뽀할 때 아프지 않으므로.
일곱째 날, 신은 쉬면서 구름을 만들었다.
구름에서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뭔가가 빠진 것 같아서, 여덟 번째 날, 신은 ‘조지’를 만들었다.
그러자 신은 흐뭇해 하셨다.
-영화 마지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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