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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선교사문헌

존스, 토착 종교들(2)

by 방가房家 2009. 9. 19.
George Heber Jones, "The Native Religions," Korea Mission Field 4-2 (Feb., 1908).
존스, 토착 종교들(2)

(앞의 글에서 이어서)
한국 유교는 네 영역이 도덕적 통제에 속한다고 인식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1)개인의 인간적인 생활 (2)가정 (3)민족이나 국가 (4)인간이 관련을 갖고 있는 우주. 이들 각각의 숙명과 목적은 특정한 수단에 의해 성취된다. 개인은 성실성을 통해서, 가정은 효도를 통해서, 국가는 질서정연한 행정을 통해서, 세계는 평화를 통해서 자신의 숙명을 성취한다. 성실성, 효도, 질서정연한 행정, 세계 평화는 중요한 발전과 관련된다. 한국의 유교인들은 개인의 성실성 없이는 가정의 효도가 없으며, 가정의 효도 없이는 질서정연한 행정이 없으며, 질서정연한 행정이 없으면 세계 평화는 없다고 주장한다.

공자 숭배
유교 예배는 공식적이고 공공의 기능을 하는 성현 자신에 대한 예배와, 개인적인 종교의 기능을 하는 개인 조상에 대한 예배로 구성된다. 성현은 “성왕”()이라는 명칭으로 숭배받는다. 이것은 600년 전 중국의 몽골 왕조의 황제에 의해 공자에게 수여된 산적인 명칭이고, 당시 몽골과의 관계가 밀접했던 한국에 수용되었다. 성현에 대한 공식 예배는 중국의 것과 매우 비슷하다. 주요 사당은 수도 서울에 있으며, 제사는 황제 스스로 혹은 그의 대행자를 통해 드려진다. 각 도에는 공자 사당이 공식적으로 설치되어 있고 제사는 행정관이 관리의 도움을 받아 거행한다. 성현에 드리는 제사는 봄에는 2월에, 여름에는 8월에 지내며, 이 시기는 공적이고 의례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이 사당에는 공자의 상이나 그림은 없고, 다만 사당 벽쪽에 늘어선 유명한 제자들과 함께 위패로 표현된다. 그 위패들 중에는 스승으로 함께 숭배할만한 가치가 있는 한국인 학자들의 것도 있다. 유교 사당에 시성(諡聖, canonization)되는 것은 한국인으로서는 영광의 절정에 있는 것으로 드물게 이루어진다.
사당의 의식은 극도로 조직화되어 있다. 독자적인 사제직은 없으며, 행정관에 의해 임명되거나 학자들에 의해 선출된 관리가 제사를 담당한다. 이 사람들은 기도를 읊고 제사를 진설하는 의무를 갖는데, 제삿상은 잡은 소, 양, 돼지에다가 쌀, 과일, 막걸리, 다른 농산물로 이루어진다. 성가를 부르거나 설교하는 것은 예배 절차에 없으며, 예배에는 숭배와 공경만이 허용된다. 양반만아 참석이 허용되며 천민과 노예들은 배제된다.

조상 숭배
조상 숭배는 한국에 보편적이고 모든 도덕의 주춧돌로 간주된다. 조상 신주를 파괴하고 망자에 대한 제사를 거부하는 자는 이 나라에서 가장 잔인한 형태로 처형된다. 바로 이 점에서 전에 기독교의 포교가 백성의 관습과 습관에 가장 심각한 충돌을 겪은 바 있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포교로 처음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 중 몇 명이 이 위반으로 인해 처형되었고, 19세기에 개항했던 해에는 망자 제사를 거부하는 신성모독의 패륜 때문에 모든 기독교인을 죽이는 법이 선포되었다. 복음 선교 초창기에는 복음을 전할 때는 신앙을 받아들이는 한국인에게 사형이 내려질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했지만, 오늘날 이 법은 사문화되었다. 망자의 위패가 있는 사당은, 선반에 보관될 수 있는 작은 상자처럼 생긴 것에서부터, 서울이나 지방에서 볼 수 있는, 숭배자의 집에 연결된 정교한 누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하층 계급에서는 위패 대신에 망자의 이름을 종이에 써서 제사 동안에 벽에 붙여 놓고 제사 후에는 소각한다. 

가문(clan)
한국의 매우 강력한 가문 조직은 망자 숭배의 중심에 있다. 죽은 조상에게 드리는 가문 제사를 유지하는 것은 가문 성원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제일의 의무이다. 조상 사당을 주로 관리하고 사당에 제사를 드려야 하는 의무를 지닌 사람은 장남이다. 웃어른의 선례를 좇아 장남은 가문의 봉건적 가장이 되고, 영적, 정치적, 사회적, 업무의 사안에서 그의 말이 구속력을 갖는다. 그래서 장남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은 다른 가족들의 동의를 얻지 못한다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종교적 의미에서 개종은 가장의 상실을 의미하며 조상들의 정령 앞에 설 때마다 불완전한 가계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는 또한 조상의 땅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는데, 어느 정도 동의하지 않는 한 조상 사당에서 제사를 멈추어야 한다. 이것은 한국인의 종교적 인식에 충격을 준다. 이것은 기독교 국가에 사는 사람들로서는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운 종교적 인식이다. 한국인이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는 이 특권을 얻기 위해 무거운 대가를 치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기독교를 받아들인 많은 한국인들은 기꺼이 가장으로서의 일시적인 이득을 포기하고 즐겁게 재산을 처분하며 개종의 진실함을 증언하기 위해 때로는 사적인 폭력도 감수하는 것을 명예로 생각한다. 

불교
인도에서 가장 큰 숭배인 불교는 한국에 4세기에 중국을 경유하여 도입되었다. 처음에는 파란만장한 사연이 있었으나, 곧 남부 지역에 단단히 정착한 이후 점차 전왕국으로 퍼졌으며 결국엔 나라를 지배하는 종교적 신앙이 되었다. 불교는 나라 전체에 사원을 짓고, 오늘날 볼 수 있는 많은 유물들을 건립하였으며, 백성들의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경제를 자기 특유의 개성으로 다시 빚어놓으며 거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불교 사제는 교육과 배움을 독점하였고 백성들의 조언자이자 지도자가 되었다. 
몇 세기 동안의 무제한적인 권력을 누린 후, 불교는 너무 탐욕스럽게 권력을 추구하는 질주에 대한 제동에 맞닿뜨리게 된다. 한때는 의심할 바 없이 유식하고 검소한 몸이었던 불교 사제들은 번영을 거쳐 타락했다. 사제들의 삶을 통제하던 규칙들은 부정으로 인해 파괴되었다. 수도승과 지주는 중세 기독교 주교들이 그랬던 것처럼 기꺼이 전투에 참여하였다. 궁궐에서는 더 전능해져서, 심지어는 그들의 권세로 몇몇 왕들을 좌천시키기도 하였다. 그들은 백성을 타락시켰고, 그들의 타락상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사원은 쾌락의 장소가 되었고 비구니 사원은 창녀촌에 다름없이 되었다. 백성들은 난을 일으켰고 불교의 권력은 땅에 떨어졌다. 불교는 지난 왕조의 수립과 함께 추락하였으며, 그 멸망에 대해서는 이전의 지도자들의 책임이 크다.
‘불교를 찾으려면 뒤져보아야 한다’는 말이 오늘날 한국의 신앙 상태를 잘 보여준다. 여전히 많은 사원들이 나라 곳곳에 흩어져 있지만, 그것들은 산속 깊이 위치하고 있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이들 암자에는 흔히 중 한 명만이 살면서 절의 땅을 부치거나 백성들에게 시주를 돌며 받은 보시로 불확실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한 주의깊은 관찰자는 절에서 넉 달간 머물면서 300명의 사람이 방문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 중에는 남자가 한 명도 없었다.

불교의 위계
수가 줄고 빚과 가난에 쪼들려 있지만 불교의 위계는 여전히 강하게 조직되어 있다. 많은 절들은 정부의 원조를 받는다. 승려와 비구니 외에는 진정한 불교 숭배자를 보기 힘들다. 한국인의 생각에 불교인이 된다는 것은 절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미신과 실천 중 많은 것들이 여전히 백성들 사이에서 성행하고 있고, 종교로서의 구속력이 깨어졌다 하더라도 철학으로서는 많은 백성들의 견해에 스며들어 있다. 승려는 고아나 절에 맡겨진 아이들로부터 충원된다. 그들은 절에서 자라고 일반적으로 교육을 받지 않는다. 그들 중에서 진짜 불교 교리의 개념을 알고 있는 사람은 발견하기 힘들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불교 승려가 이 나라의 최하층 계급을 이루기 때문이다.

종교적 특성
한국인의 종교 생활은 다음과 같은 것을 증언해주지는 않는다.

“죄를 용서받았다는 의식, 분노가 가라앉았다는 의식, 
무거운 죄책감의 의식이 멀리 날아가다.
가슴 속엔 한동안 잊혀졌던 평화가 스며들고,
한낮의 해처럼 빛나는 확고한 신념은
의무가 놓인 길을 가는 사람을 밝혀준다.”

기독교 신앙의 주장들을 그들에게 제시할 때 선교사에게는 위대한 기교가 필요하다. 한국인들의 종교생활의 중심에는 삶의 따스한 관계들, 사람 마음의 깊은 감정들이 자리한다. 그들 가운데서 허세부리는 역할을 하는 사람은 사랑스러운 믿음 반대쪽으로 인간의 영혼을 밀어넣는 것이며, 철갑을 두른 전사에게 지푸라기를 찌르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 사람으로써 선교사는 사람들의 종교생활을 다루는데 기교, 예의바름, 사려깊음을 지녔다는 점에서 두드러지며, 그럼으로써 이 땅에 기독교 신앙이 퍼지는데 기여해야 한다.
한국 사람들의 종교적 특성 중 많은 것이 기독교 신앙의 제자가 되기에 적합하다. 정령의 보편적인 존재를 믿기 때문에 그들에게 하느님의 영적인 성격의 교리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사람은 도덕적 존재이며 도덕 법칙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주장해온 유교는 사람이 도덕적 존재이고 도덕 벌칙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해주고 삶 속에서 기독교 윤리의 모범을 보이도록 준비가 되었다. 어떤 작가들은 이교 하에 있는 한국의 종교생활은 오류의 강을 지나서 암흑과 절망의 바다로 나아가는 것이라고까지 믿지만, 이 모든 경험은 그들로 하여금 기독교의 인도를 기꺼이 받아들이게 해서 인생의 강을 지나 하느님의 옥좌에 의해 굳세게 흘러가도록 한다. 이교 신들에게 값비싼 예배를 드렸던 한국인들의 적극성이, 하느님에 대한 자유롭고 매임 없고 정성이 가득한 사랑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 대한 봉사로 변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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