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6월 6일(제2권 제23호/79호)
제목: 교회의 집회에 대하야
모이기를 힘쓰는데서 단체의 힘이 나오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주일 예배에 신경을 써야 한다. “주일 예배를 지키는 것은 모든 순서와 형식에 거리끼는 것을 다 제해 놓고 오직 신령상 인도대로 온전히 따라가야 한다.” 즉 형식보다는 경건한 생각과 성령의 발달에 힘써야 한다. 요즘 교회에 오는 사람들은 쉬려고, 좋은 설교 들으려고, 찬양 들으려고, 누가 혼나나 보려고, 딴 데 가는 길에 들리러 오는 등 하느님과의 교제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많다.
요즘 집회 참여를 중요시 하는 곳에서는 정한 날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수요일이나 목요일 저녁에도 나와 기도회를 한다. 이런 습관이 형성된 곳은 뿌리 깊은 교회이지만, 가령 주일에는 300명이 나오지만 수목에는 열 몇 명 나오는 곳은 뇌수에 예수의 십자가가 박히지 못한 사람들의 교회이다. 그런 사람들은 형식으로만 주일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하느님은 행동하는 사람의 마음을 아시기에, 주일을 지키는 사람은 집회를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참여할지라.
1917년 6월 13일(제2권 제24호/80호)
제목: 교회의 집회에 대하야 (속)
누구나 주일 아침 예배 보러 나가기 전 자신의 주 중의 일상 생활에 대하여 일일이 헤아려 보아야 한다. 자기의 일을 소홀히 하였는지, 말을 함부로 하였는지, 하느님이 기뻐하실 일을 하였는지를 돌아보아라. 해야 할 말을 안하다가 뒤탈이 나지는 않았는지, 머뭇거리다 선행을 하지 않은 경우는 없는지 무엇이 하느님의 기뻐하실 바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일일이 살핀 연후에야 예배에 참석하여 주중의 생활상을 하느님께 고하면 신선한 정신과 마음을 얻을 것이다. 그런 자세로 해야 항상 새로워지는 예배를 드릴 수 있다. 또 성경 말씀 강론을 들을 때에는 깊은 속뜻을 헤아려 듣기 바란다.
1917년 6월 20일(제2권 제25호/81호)
제목: 한 사람이 한 사람이야 못 엇을가?
어느 날 쌀이 쏟아져 있는데 개미 몇 마리가 이를 보더니 다른 여러 개미들을 불러오니 많은 개미들이 달려들어 다 가져 가더라. 모두 달려들어 일사분란하게 일하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현재 기독신보의 발행은 겨우 삼천 부를 넘길 정도이다. 이 정도 된 것도 독자들의 도움이 컸지만 앞으로는 더욱 대대적으로 홍보에 나서야 한다. 한 사람이 열 명씩 권하는 것은 어렵지만 한 명 정도는 권해 신문을 구독하도록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기독교 신자가 기독신보 안보겠다고 버티는 사람이 있겠느냐? 배울 맘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찌 신문을 보지 않겠는가? 문명국에서는 한 사람이 두세 종의 신문을 본다고 하더라. 앞으로 독자 여러분이 힘써 주어 각기 한 사람씩 권한다면 몇 달 안에 이 신문의 발행이 6천 부를 넘어설 것이라. 여러분이 힘써 주시압.
1917년 6월 27일(제2권 제26호/82호)
제목: 종교와례의(禮儀)
“종교라 하는 것은 사람의 정신적 도덕을 진흥(進興)케 하는 것이고 예의라 하는 것은 사람의 심성적 경애를 감발(感發)케 하여 그 행위로 심성을 표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에게 예의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인데, 요즘 한국 기독교인들에게는 중요한 예의가 결핍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너무 번잡스러운 예의를 형편에 따라 간소화하는 것은 문명의 진보에 따른 것이겠지만 예의를 송두리째 버리고 아무것도 없이 지내는 것은 오히려 야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최근 기독교 예의에서 지극히 유감스러운 것 셋을 들겠다. ①상경상배. 오가며 절을 안 한다. 조선 교회 초기에 절하는 것 자체가 계명을 어기는 것이라 잘못 가르쳤다. 우상을 신으로 여겨 절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지 사람에게 절하는 것이 어찌 잘못된 것이랴. 여행 다녀온 자식이 부모에게 절은 안하고 말뚝같이 서서 머리나 박박 긁어댄다고 한다. 나라만다 예의가 있는 것이니 손잡고 흔드는 것은 우리의 예의가 아니다. ②상례. 3년 상을 치루지 않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아무 옷이나 입는 것은 봐줄 수가 없다. 얼마 전 친구 문상을 갔는데 아들놈이 양복이 파란 넥타이를 펄렁거리며 다니는 것이 아닌가. ③혼례. 혼례 복장에 대해서도 연구가 많이 필요하다. 신랑은 후록고투에 신부는 양장. 신부 양장에 신랑은 문관복장에 칼. 얼마 전 본 결혼식에서는 신부가 연지만 찍지 않은 채 옛 화장을 하고 신랑은 사모관대를 갖춰 “신식 혼례에 옛 정신을 가진 것”처럼 보이더라.
기독교사자료/교리
기독신보 1917년 6월 사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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