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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문화/결혼식

북장로교회 혼상예식서(婚喪禮式書)

by 방가房家 2009. 2. 1.
<<조선예수교장로회 혼상례예식서>>(조선기독교창문사, 1925)를 요약한 내용.

Ⅰ. 자료의 구성
 
*본문(24쪽) 
서문 
1장 혼례식서 (조례/절차/복장) 
2장 상례식서 (조례/절차/복장) 
 
*부록(76쪽) 
부록1 -본회 헌법 중 예배 모범 제12장 혼례 조례 
부록2 -본회 헌법 중 예배 모범 제12장 장례 조례 
부록3 -성례(聖禮)와 장립식(將立式) 
1. 세례의 조례와 식 
2. 성찬의 조례와 식 
3. 장립의 조례와 식 
(장로와 집사 선출 / 강도사 인허 시취(試取) / 목사와 선교사 임직) 
 
『조선예수교장로회 혼상례예식서』는 1925년(大正 14년) 2월 25일 조선기독교창문사에서 발행되었다.(정가 80전) 본문은 혼례식과 장례식에 관한 지침들로 간단히 구성되어 있으며, 예식위원 박문찬이 쓴 원서(元序)와 예식위원 박승봉이 쓴 서문이 앞에 실려 있다.
자료의 후반부에는 본문보다 훨씬 긴 길이의 부록이 실려 있다. 장로회 헌법 중 의례에 관련된 조례들을 수록하고 있는데, 순서대로 혼례, 장례, 성례와 장립식에 관한 규정들을 소개하고 있다. 맨 끝에 실린 글(혼상례식서교열위원 양전백, 차상진에 의해 작성된 글)에 따르면, 1920년 장로교총회부터 조직을 구성하여 헌법과 예식을 정비하고 자료가 발간되기 전 해인 1924년에 함흥에 집회된 총회에서 혼상례식서가 통과됨으로써 정비 작업이 일단락되었음을 할 수 있다.

1920년대 이전의 개신교 의례는 공식적 차원의 정비가 없는 상황에 주로 신자들과 현장의 목회자들의 노력에 의하여 ‘형성’되어 왔다. 몸에 익은 것은 여간해서는 고쳐지지 않기 때문에, 의례는 이식될 수 없으며 다른 맥락에서 적용되는 과정에서 새로 형성(이 경우 형성은 많은 경우 뒤섞임을 통해 일어난다)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새로 소개된 의례가 아니라 관혼상제와 같이 생활과 밀접히 관련되어 이전부터 행해진 의례의 경우, 이전의 것과의 혼합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1920년대에 한국 개신교회가 의례를 정비하는 과정은, 이전에 이루어진 의례의 형성을 공식적으로 승인하는 동시에 최대한 의례의 통일성을 기하려는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이 자료에서 우리는 민중적 전통에 의해 형성된 의례 대한 승인과 그것에 대한 규제가 이루는 긴장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서문에는 이전의 의례에서 적당한 것을 선택한다는 원칙[於舊式中에 大略 改定하여 以爲次書하고]과 기독교 정신에 충실하겠다는 원칙[성경의 진리를 표준하여]이 나타난다. 이 두 원칙은 때로 충돌하기도 하는 법이다.
이 자료는 혼인과 장례를 강조하고 있으며 사실상 혼인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이것은 관혼상제로 구성된 전통적인 의례의 위계와 비교해 볼 때 큰 차이가 있다. 관례와 제례가 의례 체계 내에서 소멸된 것은 물론이고, 상대적으로 죽음과 그 이후의 상황이 강조되었던 전통적 의례에 비해 이 자료에서는 혼례 중심적으로 의례가 구성된다. [태초에 하느님이 일남일녀를 지으셔서 배우가 되게 하시고]


Ⅱ. 결혼식
 
개식 - 찬송 - 기도 - 식사(式辭) - 성경 낭독 - 설명 - 서약 - 신물증여 - 기도와 공고 - 광고 - 찬송 - 축복 - 증서 교환과 폐식 
  
● 혼례는 개신교에서 중요시되는 의례이다. 식 중에 혼례 원리를 설명하는 부분에는, [태초에 하느님이 세계를 창조하시고 인류를 내실 때 일남일녀를 지으셔서 배우가 되게 하시고 번식키를 축복하심]을 이야기한다.
● 결혼식은 한국 전체에 영향을 미친, 개신교를 대표할 수 있는 의례이다. 그러나 그 개신교 결혼식은 중매를 거치고 납폐를 하고 끝난 후 폐백을 하는 전통적인 결혼식의 맥락 내에 삽입되어서 존재한다. 큰 맥락에서 볼 때 개신교 결혼은 예식의 국지적인(중심적인 부분이긴 하지만)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결혼식은 혼합적 의례로 이야기될 수 있다.[결혼식의 行媒議婚며 納幣親迎는 것은 可것] 또한 결혼식의 진행 자체에서도 전통의 요소들이 취사선택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공식적 성격의 이 자료에서는 전통으로부터 무엇이 차용되었는지를 볼 수는 없지만 무엇이 배제되었는지는 볼 수 있다. 그것은 그러한 풍속이 당시에 횡행하였음을 보여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吉日을 擇고 周堂을 占 迷信의 蔽俗은 切棄할 것]
● 초기의 결혼식에서는 유난히 혼인증서라는 행정적 요소가 강조된다. 난 아직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하겠지만, 아마도 그 절차가 결혼에 대한 최소한의 보증이 된다는 생각이 있지 않았을까. 최고의 약식 결혼이라고 할 수 있는 복수결혼(福手結婚)에서도 그것이 결혼이라는 걸 알려주는 최후의 수단은 결혼증서였다. 혹시 혼인증서는 개신교 결혼식의 간단함에 대한 보완책은 아니었는지. [양 쪽의 민적 등본이나 당회 보증서를 접수해서 살필 것, 혼인증서를 식 올린 날에 수속하도록 함]
● 결혼 서약은 5번에 걸쳐 철저하게 진행된다. 신랑에게 3번, 신부에게 2번.
● 결혼 복장에 대한 부분은 복식을 통일하는 것이 어려웠던 당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다. [예복이 신구교체시기를 맞아 일정한 제도가 없이 혼잡무장한 것이 유감스러움. 그러나 세계통용예복을 사용할 것을 권함. 즉 남자는 高帽에 후록고투며 여자는 面紗花飾에 半洋制服.]


Ⅲ. 장례식

● 장례식에는 결혼식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중요성이 부여되는 인상이다. [인생에서 한 번 왔다가 한 번 가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나 죽은 이를 보내는 것은 역시 대사라 가벼이 여길 수 없다.]
출관식: 개식 - 찬송 - 기도 - 성경 - 설교 - 기도 - 행술 - 조사 - 찬송 - 축복 - 출관
하관식: 찬송 - 기도 - 성경 - 축사 - 고별기도 - 찬송 - 축복폐식
● 장례에 대한 조례에는 전통적인 관행을 금지하는 규정들이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이것은 개신교 장례가 전통적 형식에서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는 특성에서 기인한다. 장례는 다른 개신교 의례에 비해 전통과의 혼합의 정도가 높다. 이러한 규정들을 통해 당시의 장례 현실을 볼 수 있다. [입관(入官)에 결포(結布)를 불용할 것. 세상 풍속을 따라 형식을 좇을 것이 아니오. 근신정숙(勤愼靜肅)히 송종(送終)의 예를 행하되 훤엽무상(暄曄無常)한 의문(儀文)의 곡읍(哭泣)이나 황당무계한 기휘(忌諱)의 미신을 절계할 것. 서자(逝者)를 위하여 고가(高歌)나 주악은 불가니 패리(悖理)의 습속은 일절 금지케 할지니라. (하관시) 만약 좌혈(坐穴)의 선악이나 후곤(后昆)의 길흉을 논급하는 것은 경훈(經訓)을 위반함.]
● 상례의 복장 결혼식과 마찬가지로 통일시키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특기할만한 것은 동서의 상례 복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는 점이다. [복장을 통일시키기가 불가능한 상황. 통용되는 것 중 적당한 것을 취함. 포의관대(布衣冠帶, 조선 고래의 상복)이나 동서에 통용되는 상장 예복(高帽와 후록고트의 상장) 중 각기 지방 형편에 맞게 선택함]
● 주례자의 축사 중에는 육신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반영하는 부분이 있다. [주 강림하실 때에 무릇 주를 믿고 자는 자마다 다 다시 일어나 저 부패한 시체를 변화케 하여 영화로운 몸을 이루시리라]


Ⅳ. 세례, 성찬, 장립식

공식적 의례의 성격이 강한 이들 의례들에서는 서구의 절차가 그대로 수용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한국적 변형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

① 세례
유아세례를 옹호하는 대목이 있다. 한국에서야 별 논란거리는 아니겠지만, 기독교사의 논쟁을 반영하는 부분이다.

② 성찬
성찬을 매주 시행하지 않는다고 아예 규정이 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주로 부활절과 성탄절에 성찬이 행해졌다. [성찬은 간혹 베푸는 것이 가하니라. 각기 당회가 작정하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합당한대로 정할 것.]
학습인을 교육할 때 이전 전통과의 단절이 요구된다. [이전에 봉사하던 사신우상(邪神偶像)과 제반 어그러진 일 하던 것을 다 죄악으로 알고]

③ 장립
장립식에 대한 부분에서는 장로와 집사를 선출하는 경우, 강도사를 인가할 때, 그리고 목사를 청빙해 오는 경우의 절차를 설명하고 있다. 대부분의 절차는 동일하다. 이 중 목사를 청빙하는 것은 많은 교회들이 목사 없이 운영되고 있었던 당시의 상황은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목사 청빙: 허위(虛位)교회(목사 없는 교회) 교우들이 목사를 청빙코저 하는 사상이 발현되는 경우]
● 장로와 집사를 선출할 때 고린도전서 14장이 언급되면서 남녀의 차별을 노골적으로 명문화하고 있다. 여성은 교권에서 배제된다. [장로와 집사의 자격- 본교회에 성찬식에 참여하는 중인 중 남자로 택할 것.]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여집사가 필요했던지 여집사 선출에 대한 별도의 항이 있는 것은 흥미롭다. [여집사를 선거할 필요가 있으면 당회는 진실하고 성결한 여자 중에서 투표나 자벽(自辟)선정할 수 있으니] 하지만 이 경우에도 임용 절차에서 나타나는 차별은 여전하다. [기도로 임직하되 안수식은 없느니라.]
● 문답의 내용에는 성서에 대한 문자적 이해를 강조하기 시작한 1920년대 한국 교회의 성향이 나타난다. [(1) 신구약 성경은...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독일무이하고 정확무오한 법칙으로 알고 믿느뇨?]
● 곳곳에서 성직자는 ‘무흠한 회원’이어야 할 것을 강조한다. 이 무흠한 회원이라는 범주는 무엇에 의해 규정되는 것일까? 타교파에서 온 회원은 특히 유의하여 뽑을 것을 경고하는 대목은 이에 대한 아시를 주는 것일까?
● 강도사 선출시 추천과 시험으로 선별한다. 이것은 집사, 목사의 경우에도 모두 해당한다. 이것은 꽤 엄격한 시험이다. [시험 과목: 한문 혹은 영문성경 본문(히브리, 헬라글), 기술 과학, 본국 방언성경, 제반 신학, 교회사기, 정치, 성례] 교육기관이 아닌 노회에서 시험을 갖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지닐까? 이것은 지금까지도 전승되는 고질적인 문제의 발단은 아닌지?
● 재미있는 대목 [자기 세력대로 연보하지 않는 자는 투표권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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