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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교리

기독신보 1936년 1,2월 사설들

by 방가房家 2009. 1. 11.

1935년 말의 <기독신보>의 사정에 대해서, <<한국기독교의 역사>> 2권에는 ‘기독신보사건’이라는 명명 하에 다음과 같이 설명해준다.(165-168)

1933년 7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전필순 목사가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기독신보> 발행권을 둘러싸고 계파간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는 한국 교회들로부터 재정적 후원을 얻어 경영 자립을 꾀했고 한국인 직원을 대거 채용하여 편집진을 보강했다. 이같은 ‘혁신적’ 조처는 선교사들이 장악하고 있던 조선예수교회로부터 ‘독립’을 추구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었다...
이와 같은 복잡한 상황에서 1935년 9월 조선예수교서회 이사회에서는 유억겸을 사장으로 임명하고 전필순에게 <기독신보> 사장직을 인계하도록 했으나, 전필순은 이를 거절하고 사무실을 종교 2가 서회 건물에서 수송동으로 옮기고 ‘재혁신’을 선언하며 독자적인 발행을 시작하였다.


 전필순 사장에 대한 견제에는 선교사 측과의 대립에다가 개신교 주류인 서북계(전필순은 서울 출신이다)의 견제도 작용하였다. 전필순은 당시 자신과 대립했던 인물들로 양주삼, 윤치호, 유억겸, 백낙준, 정인과 등을 꼽고 있다. 하나같이 선교사와의 관계 돈독한 거물급 인사들이다.
1936년 들어(정확히 말하면 1935년 성탄절 사설부터) 이 갈등이 사설에 매우 거칠게 나타난다. 작심을 한 듯이 퍼부어댄다. 선교사 중심의 신앙에서 벗어난다야 한다는 주장, 그리고 선교사에 빌붙은 무리들에 대한 비난이 연일 쏟아진다. ‘이쯤 하면 막 하자는 거지요?’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정도이다. 싸움 구경은 재미있는 법인가보다. 그 이전 사설들은 심드렁하게 정리했던 나도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공격적인 표현들이 등장하는 이번 사설들에 흥미를 갖고 정리하였다. (<기독신보>는 이로부터 1년 정도 지난 1937년 7월에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
 
 

1936년 1월 1일 (제1048호)
분류: 사설
제목: 새해를 마지하면서
오십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교회 현실은 어떠한가. 선교사들은 오십년 전에 미개한 민족, 야만 민족으로 알고 선교에 착수하던 그 심정으로 오늘도 오만무쌍한 태도를 갖고 있다. 조선교회가 하느님에 직접 통하지 않고 선교사를 통한다면, 선교사의 종은 될지언정 하느님의 자녀는 되지 못한다. 조선 사람의 자발적 정신으로 천당을 향해 갈 것이다. 예속적 신앙, 맹목적 신앙에서 벗어나 독립적, 이지적으로 움직일지어다.
 
1936년 1월 8일 (제1049호)
분류: 사설
제목: 조선의 그리스도교 -선교사의 것이냐 조선인의 것이냐
교회는 어디든지 하느님의 소유이지 선교사의 것이 될 수 없다. 교회당을 선교사들이 지었다고 해서, 그에 따르는 제반 부속물을 선교사 것으로 알아 전횡하고 있다. 신학사상, 성경해석, 사업 방침, 회무 처리에서 선교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신사참배 문제 결정에서도 선교사의 말만 따르고 있으니, 이것이 50년을 자란 조선의 교회인가.
 
1936년 1월 15일 (제1050호)
분류: 사설
제목: 宣敎師의 使命
시대와 환경이 달라졌으므로 선교사업이나 선교사 자격을 논의할 필요도 있다. 지난번 미국 교회 평신도단의 조사발표는 우리의 형편을 표준으로 한 것이 아니라 부족한 점이 있다. 어떤 시대에는 선교사가 자신의 타락으로 자본주의나 침략 행위의 주구로 일시적 세욕에 팔린자도 있다. 우리 교회에 이러한 자가 있으랴마는, 교권을 이용해서 사리를 도모하는 바리새인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선교사로서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다.
 
1936년 1월 22일 (제1051호)
분류: 사설
제목: 飜譯에서 創作으로
문화의 발전에서 번역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반드시 새로운 창작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가져야겠고, 그 믿음을 우리 개체의 특성을 가지고 소화해야 한다. 외국의 방식으로는 우리와 하느님 사이의 관계가 정당하게 체결되지 않을 것이니 외국식에서 떠나 내 법으로, 우리의 법으로 생명운동의 확장을 기도하자.
 
1936년 1월 29일 (제1052호)
분류: 사설
제목: 偶像과 迷信을 打破하라
그리스도교는 우상 만드는 것을 절대 금하는데, 이 가르침의 껍질만 가르치고 참뜻은 가르치지 않아 교인들이 잘 배우지 못하였다. 교인들은 자기 부모를 위해 제사를 지냈다고 하면 다른 신을 섬겼다하여 출교를 하며, 위생과 건강을 위해 주택지를 가리고 전염병자를 방문치 않으면 믿음이 없다고 비난한다. 하느님을 팔아 성자연하고 자기에게 있는 교권과 금권으로써 하느님을 대신하여 앉은 우상들이 조선 교계에 많이 있다. 그리고 우상 아래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주워먹으러 아유굴종하는 소인과 미신배들이 있다.
 
1936년 2월 5일 (제1053호)
분류: 사설
제목: 예수를 믿으라
오늘날 교회를 보면 예수를 믿는 교인인가 의심되는 것들이 많으니 우리 신앙을 재검토하여야겠다. 외식과 가면으로 된 유대민족을 향해 진리를 반포한 것처럼 현대 교회를 향해 하느님의 진리를 반포할 용기가 있는가? 경제적으로 시달리는 유대인들에게 그 몸으로 산제사를 지낸 것처럼 우리의 몸을 산제사로 드릴 아량을 가졌는가? 현대 교회 앞에서 그리스도인의 위권을 발휘할 마음이 있는가?
 
1936년 2월 12일 (제1054호)
분류: 사설
제목: 앞서자
봄이 왔으니 용감하게 나서자. 남이 강제한 좋지 못한 습관을 따르거나 욕된 생활을 숙명이라고 자위하는 것에서 벗어나자. 주님의 모험적 생활을 따라 묵은 껍질을 터치고 새싹을 키우자. 일반적 육신 생활을 혁신하는 동시에 남이 씌워준 신앙의 구각(舊殼)을 버리자.
 
1936년 2월 19일 (제1055호)
분류: 사설
제목: 福音敎會 創立을 보고
1935년 12월에 조선복음교회가 창립되었는데, 이 글에서는 조선에서 새 교파가 창립되었다는 사실을 음미하고자 한다. 이것은 현대 조선의 교회가 부패하여서 주의 지혜로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증명이면서 자기 고집의 폭로이다. 이 교회의 사명은 재래 교회가 못하고 있는 신앙의 복흥이며, 생명있고 실질적인 실천의 교회가 되는 것이다. 기성교회여 반성하라. 그리고 새 교회여 조심하라!
 
1936년 2월 26일 (제1056호)
분류: 사설
제목: 新人發薦에 用力하라
옛 것을 못 쓸 것이며, 새 것이 되어야 한다. 어찌 구세력의 충복 노릇을 하고 신세력의 발전을 방해할 수 있느냐. 새로운 사상과 신앙을 발표하면 이단이라고 할 수 있느냐. 우리는 새 세력의 발전을 조장하기 위해 신인을 추천하여 신세계를 개척해야 한다.

Bond Girl  07.04.21 21:56 
방님의 기독사설들을 보면서 든 의문이 있어서 두서없이 적는데 답해주실 수 있는 것만 해주세요. 꾸벅~
1. 기독신보는 일제에게서 컨트롤 당한 건 많이 없었나요? (끝까지 안읽어보고 물어보는거라 죄송하지만 이해해주세요.) 경영난 이외에는 문닫을 이유가 없었나 싶어서요.
2. 이번 포스트에선 <하느님>표현이 있는데 그때까진 <하느님>과 <하나님>에 대한 구분은 없었는지요?
3. 기독신보에 나오는 표현들 중에는 기존종교에서 쓰는 표현들을 차용한 것은 없었는지요?
(뭐...불교라든가. 등등 전통종교의 표현들이 기독교에서 쓰기시작해서 기독교용으로 간 것들이 많잖아요. 그런 용례들이 이때부터 나왔나 싶어서요. ex. 불교의 장로-->기독교 장로 가 되는 것과 같은...) 사설이니까 그 쪽 사람들의 언어들 중 대표성을 띨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제가 이 쪽에 문외한이라 모르는게 많네요.
 
 
房家  07.04.22 01:13 
아는 것만 답변드립니다.
일제와 직접적인 문제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1937년이면 전시 동원 체제로 경제 상황이 극히 안 좋을 때니 웬만한 곳들은 운영이 어려울 때긴 하죠.
'하느님' 표현은 중요한 지적인데, 1930-40년대 개신교 출판계는 "하느님"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아래아 '하날'이 "하늘"로 변한다는 것을 개신교계에서도 인정한거죠. 그러나 성서에 '하나님'이란 표기가 남아있던 탓에 나중에 그리로 돌아간 것입니다. 하느님/하나님은 순전히 표기의 문제이지 요즘 이야기되는 것처럼 신학적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Bond Girl  07.04.22 01:37 
아! 벌써 답을 해주셨네요. :) 고맙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다시 물어볼께요. 그렇다면 하느님이 하나님으로 되는 과정에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요?
전체 개신교계에서 회의라도 했는지? 혹은 몇년도부터 그렇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하나님>에 신학적인 이유나 힘을 실어준 것은 언제부터인지? 그런것도 질문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궁금해지는군요. 이것도 답변 해주시면 고맙게 듣겠습니다. ^^
 
 
房家  07.04.22 01:55 
별 계기는 없고요, 처음 성서가 번역된 것은 1887년 만주에서 로스가 의주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졌는데, 거기서 "하나님" 표기가 쓰였어요. 평안도 방언으로 보입니다. 1938년도에 개역성경이 간행될 때 옛 표기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에 대한 심각한 논의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신학적인 논쟁이 일어난 것은 1970년대 공동번역에서 '하느님'을 선택한 것에 대한 반발 때문입니다. 반발하느라고 여러 신학적인 이유들이 제기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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