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미스 사상 개요를 해설한 작은 책을 출판했다. 가장 중요한 종교학자라고 입 모아 말하면서도 이런 종류의 간단한 해설서 하나 없는 상황이 아쉬워서, 나라도 해야지 하는 심정으로 나선 일이다. 그러고 보니 15년 전에 <자리 잡기>를 겁 없이 번역했을 때와 비슷한 심정이다. 역시 내 깜냥에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사상가의 전모를 스케치하려다 보니 평소 꼼꼼히 독서하지 않았던 구멍이 여기저기 드러났다. 누군가를 그럴듯하게 평가하는 언어를 구사하는 것도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서문의 제목인 “21세기 종교학을 형성하다”와 같은 표현 하나도 내가 예사로 쓸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어찌 되었든 <조너선 스미스>가 나왔다. 열 개의 키워드를 뽑아 최대한 그의 말을 담아 정리하였다. 지난달에 이 내용을 발표한 바 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 소개는 잘 구성되어 있다. 쓸만한 문장을 잘 골라 배치하였는데 그중 두 문장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스미스는 일상적이고 평범하게 보는 태도에서 출발해 인간의 흥미로운 지적 활동을 볼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우리에게 종교는 엄숙하고 진지한 영역이다. 그러나 거기서 인간적인 모습을 볼 때 다른 시야가 열린다. 종교인은 주어진 것을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여겨지기 쉽지만, 스미스가 탐구한 종교인은 주어진 교리나 의례 실천이 현실에 들어맞지 않을 때 그 문제를 그럴듯하게 해결하기 위해 사유하는 존재다. 스미스의 글에서는 놀람, 흥미, 상상력, 창조, 놀이, 농담과 같은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창조적 사유의 즐거움은 스미스의 연구 대상인 종교적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고, 연구자 스미스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_“21세기 종교학을 형성하다” 중에서
이전의 종교학이 종교인이 추구하는 이상을 중심으로 연구했다면, 스미스의 종교학은 종교인이 현실에 눈감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종교인이 겪는 어긋남은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인간의 보편적 조건에 해당하는 문제다. 지도와 지형, 즉 세계관과 현실은 같지 않다. 하지만 지도를 통해 지형을 파악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삶이다. 지도와 지형의 어긋남을 벗어날 수 없기에 종교인은 그 차이를 인정하고 그 사이에서 사유하는 법을 익힌다. 여기서 ‘놀이’가 발생한다. 이런 의미에서 스미스에게 종교적 인간은 놀이하는 인간이다.
_“05 어긋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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