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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의 만남의 경험과 우상숭배

by 방가房家 2023. 6. 4.
우상숭배라는 주제로 청탁 받은 글로, <기독교세계> 11월호에 실렸다. 잡지에 실린 것과 동일한 원고는 아니다. 기고글에 분량 제한이 있기 때문에 찾아놓고 넣지 않은 자료들을 아래에는 대괄호 속에 삽입하였다. 대부분은 논지를 흐리거나 불필요해서 제외한 것이지만 아래엔 그냥 남겨두었다. 철저하게 선교사 용법에만 근거를 두고 정리한 우상숭배 개념이다.
 
선교사의 만남의 경험과 우상숭배

0. 일반적인 여행과 마찬가지로 선교는 낯선 문화와의 만남의 경험을 동반한다. 그러한 만남의 순간에, 특히 종교적 만남의 순간에 선교사가 처음 접한 문화적 정황을 포착할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하는 경우는 빈번하게 있으며, 새로운 용어를 찾기 전까지는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언어를 활용하여 타자를 묘사하는 것이 한 방법이 된다. 선교사들이 언급하는 ‘우상숭배’는 이처럼 미지의 종교적 타자를 지칭하는 말인 경우가 많았다. 물론 우상숭배에는 여러 용법이 존재하지만, 이 글에서는 선교의 역사에서 두드러진 우상숭배의 용법에 한정하여 이 언어를 살펴보고자 한다.

1-1. 서유럽이 비서구권으로 진출하고 선교를 시작한 15세기 이후, 서양인과 비서구권 종교와의 만남이 시작되고 서양인들은 세상에 기독교 이외의 ‘종교들’이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종교(religion)라는 말의 사용이 증가하고, 세계 각지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여행서들이 유행하였으며, 이에 따라 종교의 분류도 나타나게 된다. 이 시기 최초로 제시된 종교 종류는 넷으로,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 그리고 우상숭배였다. 당시 유럽인들에게는 자신의 종교인 기독교, 오랜 내부의 타자인 유대교, 경계를 맞대고 있는 적대적 타자인 이슬람 이외의 종교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기독교 전통에서 타자의 종교를 일컫는 말로 오랫동안 사용된 우상숭배는, 대항해시대 이후 알지 못하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기타 등등’에 해당하는 종교들을 집어넣는 머릿속 폴더의 용도로 쓰임새가 확장되었다. 19세기 이후 힌두교(Hinduism), 불교(Buddhism), 유교(Confucianism), 도교(Taoism) 등 오늘날 우리가 세계종교라고 부르는 여러 전통이 이름을 부여받았지만, 이름 없이 남아 있는 ‘기타 등등’의 전통은 여전히 우상숭배라고 명명되었다.

[19세기말 선교사의 초기 만남에는 한국의 ‘종교 없음’ 더 나아가 ‘우상숭배도 없음’을 말하는 증언도 존재한다. 1885년에 서울을 방문한 성공회 선교사 울프(J. R. Wolfe)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이 나라 어디에도, 혹은 서울 내의 어디에도 우상이나 우상을 모신 사원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흥미로웠고 놀라웠다. 사람들은 우상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았고 신들을 위한 사원을 세우지 않는 것 같았다. 도시 전체에 사원이 없었다. 한국인에겐 실질적으로 종교 체계가 전혀 없다.”]

1-2.타자의 종교를 일컫는 서양인의 언어에서 이교도(heathen)와 우상숭배자(idolater)는 혼재되어 있다. 개신교 선교가 활발히 진행된 19세기의 서양인들에게는 이교도의 우상숭배에 관한 강한 이미지가 존재했다. 이 이미지의 유명한 예로 1819년 인도에서 활동한 선교사 레지널드 허버(Reginald Heber)가 작사한 찬송가 <저 북방 얼음산과>(From Greenland’s Icy Mountains)를 들 수 있다. 이 노래의 영어 가사에는 “암흑 속의 이교도들은 나무와 돌에 절을 한다.”(The heathen in his blindness bows down to wood and stone)라는 구절이 나온다. ‘암흑 속의 이교도’는 선교사들의 뇌리에 박힌 언어가 되어, 한국에서 활동한 선교사의 글에서도 관용어로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예를 들어, 강원도 선교를 개척한 감리교 선교사 로버트 무스(Robert J. Moose)는 1911년에 쓴 책(Village life in Korea)에서, 장례식 관습을 고수하는 한국인을 비판하면서 “불쌍한 암흑 속의 이교도를 보라”고 언급한다.
[ 언더우드의 언어에도 등장한다. Horace G. Underwood, "The 'Today' from Korea," The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 (Nov., 1893): 813-818. “개신 교회가 자신의 의무를 각성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가톨릭 국가가 될 것이다. …… 로마 가톨릭이 대신 이교도 국가를 개종시킬 것이다. 이교는 암흑(darkness)이지만, 로마 가톨릭은 눈멀게 하는 것(blindness)이다.”]


2-1. 우상숭배자가 ‘나무와 돌에 절을 한다’는 묘사도 중요하다. 이것은 서양인들이 미지의 타자를 상상하는 대표적인 이미지였다. 다소 과거의 자료 하나를 소개하자면, <그림1>은 1669년에 네덜란드에서 출판된 <<하멜표류기>>의 한 판본에 수록된 삽화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하멜표류기>>는 당시 유럽에서 한국을 다룬 유일한 이야기로 인기를 끌었고 여러 판본과 번역을 통해 유통되었다. <그림1>이 수록된 책은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해 한국과는 상관없는 그림들을 삽입하였는데, <그림1>은 원래 그보다 백 년 전 중국에 관한 책에 실린 것을 그냥 가져다 실은 것이었다. 기괴한 우상 앞에 절하고 있는 사람들을 묘사한 이 그림은 서양인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동양, 동양인의 종교 생활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이미지는 19세기 선교에 나선 서양인들, 그리고 19세기 말 한국을 찾은 선교사들이 머릿속에 지닌 것이었다.

2-2. 마치 콜럼버스와 아메리카의 만남이 새로운 것의 발견이기보다는 기존 관념의 재확인이었던 것처럼, 한국 종교문화와 선교사의 첫 만남은 새로운 종교의 발견이기 이전에 우상숭배라는 기존 관념의 확인이었다. 초기 감리교사에서 가장 중요한 선교사 중 한 명이었던 노블 부인(Wilcox Mattie Noble)이 꼼꼼하게 기록해놓은 일기장에는 이러한 첫 만남의 순간이 간직되어 있다. 일기에 따르면 1894년 5월 26일 노블 부인 일행은 서울 북문 밖 큰 불상이 있는 곳으로 피크닉을 갔다. 일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마침 우리가 도착했을 때 불쌍한 이교도들이 그 앞에서 예배(worship)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침 우리가 도착했을 때 불쌍한 이교도들이 그 앞에서 예배(worship)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승려는 돗자리와 작고 낮은 걸상을 들고 자신의 거처에서 내려왔다. 여성 두 사람과 사내아이 하나가 승려의 뒤를 따랐다. 이들은 쌀이 담긴 그릇을 가지고 왔는데, 승려는 우상 앞에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작은 상을 놓은 뒤 상 위에 쌀그릇을 올렸다. 승려는 바닥에 앉더니 어떤 악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두 여성이 돗자리 위로 올라와 우상 앞에다 여러 차례 절을 했고, 승려는 계속 악기를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한 여성은 서른네 차례 절을 했고, 다른 여성은 서른 차례 절을 했다. 절을 많이 할수록 보상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여성들이 절을 마치자 이번에는 사내아이가 스무 차례 절을 했다.]
부인은 의례 모습을 상세히 설명한 후 “사람들이 우상에 예배드리는 모습을 실제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지 직접 볼 기회를 얻게 되어 기뻤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불교와의 만남 이전에 우상숭배 개념의 확인이 이루어졌다. 무속과의 만남의 양상도 비슷하다. 1897년 3월 7일 일기에는 부인이 굿을 본 경험이 기록되어 있다. 부인이 “상상했던 악령의 모습을 한 기묘한 인물”에 의해 진행된 “소음과 우상숭배의 광경은 밤중에야 끝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노블 부인이 우상숭배를 목격한 곳은 현재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옥천암에 속한 보도각백불이었을 것이다. 그가 보았던 모습은 1908년에 여행사진사 버튼 홈즈가 찍은 사진에 담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그림2>) 스님이 불상 앞에서 예불을 드리는 못ㅂ니다. 불교에 대한 전이해가 없는 노블 부인에게 이 모습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는 우상숭배 외에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무스 부인의 비슷한 언급. Mrs. J. R. Moose, "What Do the Koreans Worship?," The Korea Methodist 1-7 (May, 1905): 88-90.
이 나라에서는 부처의 사도들, 공자의 추종자들, 조상숭배의 열성적인 참여자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한국인은 악령(evil spirits)에 절을 한다(bow down). 조상에게 제사 드리는 사람들은 보통 악령에게도 경배를 드린다... 이 나라에 오기 전에 나는 한국인들이 악령 숭배자(devil worshipers)라는 말을 들었다. 나로서는 글자 그대로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 정도로 타락한 사람들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곳에 머문 이후, 나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전에 악령(evil spirits)에 예물을 바쳤다는 말을 들었으며, 여러 번 악령 숭배를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2-3. 이런 점에서 우상숭배는 과도기 언어이다. 타자와의 만남의 경험이 있지만, 그것을 담아낼 언어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선택된 기존의 언어이다. 선교사들이 한국 전통종교를 인지하고 ‘종교’라는 일반명사 안에 담아 표현하기까지는 선교 개시 후 2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때문에 선교 초기의 글에서는 “한국에는 종교가 없고 우상숭배와 미신만 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한국의 종교’라는 표제 아래 유교, 불교, 무속을 논하는 선교사의 논의, 대표적으로 한국에 대한 이해가 깊었던 존스(George Heber Jones), 제임스 게일(James S. Gale), 헐버트(Homer B. Hulbert)의 저서가 나온 것은 190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다.

2-4. 1897년 <<죠션크리스됴인회보>>에 실린 “우상론”이라는 글을 보면, 전통적인 신앙 대상을 우상과 사귀(邪鬼)라는 개념 아래 서술한다. 전통적인 신앙을 ‘종교’라는 말에 선뜻 담기가 어려웠던 시기였다. 지금은 종교를 일반명사로 사용하고 기독교를 포함한 다양한 전통을 종교로 지칭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19세기 말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당시는 ‘종교’가 기독교외의 현상을 포함하도록 외연을 확장하는 변화가 진행 중인 시기였기 때문에, 지금이라면 종교라고 할만한 자리에 우상숭배라는 말이 더 빈번히 나타났다.

3. 기독교인들은 오랫동안 로마서 1장(사람들은 창조주 대신에 피조물을 숭배하고 섬겼습니다.)을 근거로 타자의 종교를 평가해왔다. 피조물 숭배, 즉 우상숭배가 남의 종교를 지칭하는 유일한 언어에 가까웠다. 여기서 길게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여러 역사적 경험과 학문적 발달을 경험한 이후 전통적인 타자 이해 패러다임은 도전을 받게 되었고, 그 결과 중 하나가 종교학의 학문적 대상인 보편적 종교 개념의 성립이었다. 물론 새로운 이해 방식이 나타났다고 해서 과거의 이해 방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타자의 종교를 우상숭배로 지칭하는 전통은 지금도 힘을 유지하고 있고 현재도 그 용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글이 우상숭배와 미신의 모든 용례를 다루지 않고 선교지 상황에서 타자의 종교를 지칭하는 용법을 주로 다루었기 때문에 설명되지 않은 부분이 분명 있다. 이 글에서 강조하지는 않았지만, 미신과 우상숭배는 기본적으로 경멸적이고 비난의 어조를 담은 언어이다. 선교사들이 타자의 종교를 우상숭배라고 불렀을 때 대부분은 비난의 의미를 담고 있지만, 이 글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다루었다. 훗날 한국종교를 가장 깊이 있게 연구한 감리교 선교사 존스가 선교 초기인 1891년에 쓴 글에는 새로운 경험을 담아낼 언어에 대한 고민이 묻어난다. 그는 한국 무속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해 미신(superstitions)이라는 표제를 달았다. 그러고는 미신은 “경멸적인 용어가 아니라 체계화된 숭배 바깥에 존재하는 전통적인 신앙의 방대한 총체를 지칭하는 용어”라고 단서를 달았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핀 과도기 언어의 모습이 여기서도 나타난다. 그리고 다른 사례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오해의 여지는 남는다. 비록 존스가 전통적 개념 미신을 빌려와 중립적인 개념으로 사용하고자 하였지만, 독자가 그 의도를 받아들일 가능성보다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큰 것이 사실이다. 우상숭배, 미신에는 여러 용법과 의미가 혼재하지만, 경멸적 의미의 그림자를 벗기는 어렵다.

4. 기독교가 타자의 종교를 이해하는 방식은 바뀌어왔고, 이해를 담는 개념도 변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용법이 현재 어휘에 잔류해 있음도 엄연한 사실이다. 만약 비난의 의도가 없으면서 별생각 없이 타종교를 우상숭배나 미신이라고 지칭한다면, 그것은 과거 종교라는 말이 채 갖추어지지 않았을 때 대안적으로, 과도기적으로 사용된 용법의 잔류라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필자 의견으로는 타종교든 기독교 내부를 향해서든 비판의 의도를 실어 우상숭배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그 의도에 찬성 여부를 떠나 유의미한 언어로 인정될 수 있지만, 습관적으로 타자에 우상숭배라는 말을 적용하는 것은 불필요한 과거의 유산이라고 보아야 한다. 지난 백년간 타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이해의 폭이 깊어진 만큼, 그 이해는 과거 선교사의 언어가 아닌 발전된 언어 안에 담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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