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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공부

종교 개념에 관련된 책들

by 방가房家 2023. 5. 31.

오늘은 내가 요즘 공부하는 과정을 살짝 스케치해 본다. 내 지도교수는 켄 모리슨(Kenneth Morrison)이라는 할아버지이다. 그는 북미 원주민 종교 전공자인데, 특히 북미 원주민과 백인 문화의 만남(encounter)의 양상에 관심이 많다. (북미 인디언 종교를 공부하지도 않는) 내가 그를 지도교수로 삼은 것은 그가 혼합현상(syncretism)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그 만남을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 기독교를 기술하면서 관심을 가졌던 부분이 바로 이 ‘만남’에 관한 것이어서, 그에게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그는 요즘 약간 다른 관점의 연구를 시도하고 있는데, 그것은 서구의 개념들, 이를 테면 종교라든지 자연/초자연의 이분법의 적용으로 인해 북민 인디언 종교의 서술이 전반적으로 잘못되고 있음을 비판하는 것이다. 서구 범주의 틀을 극복하고 대안적 언어를 모색하고 있는 중인데, 이 또한 내 관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작업이다.


나는 잠정적으로 석사논문에서 서구의 종교 개념이 한국에 적용된 사례들을 다루어 보려고 하고 있다. 아마 국내에 있었다면 이런 주제를 다루지 않았을 것이다. 장석만 선생님의 훌륭한 논문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내 작업이 서양 선교사들의 자료를 주로 다룬다는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인 관점은 이미 선행 연구에서 제시된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일단은 내가 갖고 있는 자료를 활용하는 범위에서 논문을 완성하고 싶고, 이 곳에서는 전혀 소개가 안 된 이야기이면서도 이 곳의 이론적인 관심에서 중요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간단히 이야기하면, 비교적 쉽게 쓸 수 있으면서도 중요한 주제를 잡고 싶었기에 이 문제를 나름대로 정리하고 있다. 지금 내게 시급한 것은 어떤 새로운 조사보다는 한국의 사례를 이 곳의 학술적 흐름 안에 적절히 “위치시키는” 것이다. 한국을 다룬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새로운 것이기에, 석사 단계에서는 욕심을 버린다는 자기 합리화를 준비해놓고 있다.

이런 생각을 말씀드리고, 방학 때 끄적여 놓았던 페이퍼를 드리니 모리슨 선생은 엄청난 양의 의견을 붙이고, 내 영어를 완전히 다 뜯어고쳐서 페이퍼를 돌려주었다. 거짓말 안하고 20페이지짜리 페이퍼 곳곳에 괄호치고 자기 의견을 상세히 붙여 30페이지로 만들어 돌려주었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놀랐다. 아니 무슨 선생이 이렇게 학생의 논문 작업에 신경을 써준단 말인가... 그 시덥지 않은 글을 글답게 만들고 주려고 이런 엄청난 작업을 해 주다니... 미국이 교수가 학생에게 서비스하는 곳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글을 뜯어고쳐서 보여주면 다시 코멘트를 붙여 피드백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면서 선생은 내 논문을 위해서는 자기를 포함한 세 명으로 위원회(committee)를 구성하자고 이야기하였다. 한 명은 한국 종교를 담당하는 포리 박(Pori Park) 선생이고 다른 한 명은 새로온 선생인 티사 웬거(Tisa Wenger)였다. 자기는 나의 영어 글쓰기를 계속 봐줄테니 다른 선생들과 만나서 이론적인 문제나 자료의 문제를 논의하라고 권해주었다. 나중에 느낀 것이지만, 이런 식의 시스템은 내게 탁월한 것이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이고 다른 선생의 작업이 나의 작업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정확히 짚고 있기 때문에 내린 판단이었다.

내 작업은 주로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종교 개념를 어떤 식으로 사용하였는가의 문제이고, 북미 원주민에 대한 선교사들의 저술에서도 비슷한 사례들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나는 모리슨 선생에게 그 부분을 질문하였다. 일단 선생은 종교 범주를 중점적으로 고찰한 연구는 그리 많지 않지만, 일단 옛날에 자기가 쓴 책의 한 장이 그 문제와 관련된다고 소개해 주었다.
Kenneth M. Morrison, The Embattled Northeast: The Elusive Ideal of Alliance in Abenaki-Euramerican Relation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4).

과연 이 책의 2장은 유럽의 선교사들이 북민 인디언들과 처음 접촉할 당시, 유럽의 종교 범주를 그들에게 어떻게 뒤집어 씌웠는가를 상세히 논하고 있다. 직접 한국과 비교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논의를 짜나가는 방식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면서 다른 사례들을 보고 싶다면 개론적인 책들부터 찾아나가는 게 좋으며 (그런 말을 하면서 서재에서 책 몇 권을 꺼내 내게 주었다!), 아니면 이 분야의 주목할만한 학자들의 책으로는 다음과 같은 책들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Karen Ordahl Kupperman, Indians and English: Facing off in Early America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2000).
Cornelius J. Jaenen, Frend and Foe: Aspects of French-Amerindian Cultural Contact in the Sixteenth and Seventeenth Centuries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76).

티사 웬거 교수는 올해 부임한 여교수인데, 푸에블로 인디언들에서 종교 개념이 담론으로서 어떻게 활용되었는가를 박사논문으로 썼고 지금도 그 문제를 정리중이다. 게다가 (아버지가 선교사라고 한다) 미국 선교사들의 본국 선교에 대해서도 전공자이다. 미국 선교사들이 어떤 사람들인지가 궁금했던 나로서는 일단 미국 선교사의 해외 선교에 대한 저술을 좀 소개해 달라고 했다. 처음 소개한 책은 조금 읽어본 적이 있는 허친슨의 책이었다.
William Hutchison, Errand to the World

그 외에도, 인디언 선교에 대한 훌륭한 연구서로
C. L. Higham, Noble, Wretched and Redeemable (Albuquerque: University of New Mexico Press, 2000)

미국 여선교사의 중국 선교에 대한 훌륭한 연구서로,
Jane Hunter, The Gospel of Gentility: American Women Missionaries in Turn-of-the-Century China (New Heaven: Yale University Press, 1984).
를 소개해 주었다.

그 다음에 웬거 선생을 만났을 때는, 내 페이퍼를 읽고 엄청난 양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마 내가 영어로 가장 장시간의 내화를 나눈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내 페이퍼의 구석구석을 너무 정확히 파악하고 하는 이야기라 기가 질릴 정도였다. 더구나 그 선생은 나와 아주 비슷한 문제를, 다른 사례를 통해서 고민하고 있는 양반이었다. 그 문제에 대한 이론적인 작업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서는 종교학계를 다 뒤져 보아도 그 선생만큼 잘 이야기해줄 수 있는 이가 없을 것이다. 많은 지역에서 종교 담론이 정치적인 문제와 관련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한국의 사례가 거기에 해당되는지 안되는지는 나름대로 결론 내려야겠지만, 그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나름의 생각을 정리할 필요는 있다고 이야기준다. 그래서 언급된 책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매우 유사한 사례를 다루는,
David Chidester, Savage systems : colonialism and comparative religion in southern Africa (Charlottesville: University Press of Virginia, 1996).

또, 세계 각 문화권에서 이루어진 연구들을 종합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는데, 예컨대 영국인들이 인도에서 힌두교라는 범주를 그리고 불교라는 범주를 어떤 식으로 구성하였는지를 잘 고찰한 연구서들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해준다. 더 나아가, 종교라는 개념이 서구적 편견이 담긴 문제 있는 개념이라면 그 개념을 폐기해야 하는지, 아니면 고쳐가며 나름대로 써 나가야 하는지의 심각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내가 이 연구를 진행하면서 어떤 종교 개념을 상정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최근의 논의들을 보아가며 나름의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하며 소개된 책들은 다음과 같다.
S.N. Balagangadhara, "The heathen in his blindness--" : Asia, the West, and the dynamic of religion (Leiden ; New York : E.J. Brill, 1994).
Philip C. Almond,The British discovery of Buddhism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8).
edited by Donald S. Lopez, Jr., Curators of the Buddha : the study of Buddhism under colonialism (Chicago, Ill. :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5).
Nicholas Lash, The Beginning and the End of 'Religio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1996).
(ed. by)Derek R. Peterson, Darren R. Walhof, The invention of religion : rethinking belief in politics and history (New Brunswick, N.J.: Rutgers University Press, 2002).
Timothy Fitzgerald, The Ideology of Religious Studies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New Ed edition, 2003).

종교 개념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나름대로는 익숙한 두 책이 언급된다.
Talal Asad, The Genealogies of Religion
Bruce Lincoln, Holy Terror

이 책들은 주로 서문을 쓰기 위한 것들이다. 이 책들을 다 읽어야 할까? 그런 것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그냥 소개받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소개하는 사람이나 소개받는 사람이나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행복한 순간은 책들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이다. 내가 유학와서 입수한 일급정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것들이다. 내 관심 분야로 책을 읽어나갈 때 필요한 지도와 나침반들, 이러한 것들이 한국에 있을 때는 내가 제대로 얻을 수 없었던 것이며 미국에 온 보람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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