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학공부

자료 획득과 인문학하기

by 방가房家 2023. 5. 31.

인문학 대학원생이 되면, 약간이나 가지고 있던 낭만이 깨어지며 인문학의 현실을 직면하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겪게 된다. 너무나도 다양하고 복합적인 이유에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선 그저, 주제를 극도로 한정지어서, 내가 겪었던 자료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다.

겉으로는 인문학이 고매한 이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인문학의 성패를 가름하는 것은 자료(reference)이다. 이 평범한 명제를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대학원의 입문 과정에서 있는 일이다. 자료라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고, 그래서 그 물질의 취득 과정에서 한국에서 학문한다는 것의 의미, 그리고 제3세계 지식인으로서의 위치라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문제들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한국 종교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능화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 사람 유명한 친일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자료가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리로 당장 달려가서, 그 자리에서 그 책의 내용을 신문지에 빽빽하게 베꼈다고 한다. 종이가 부족했던 탓이다. 그의 수많은 저작들은 그렇게 신문지 여백에 한 메모들이 쌓여서 나온 것이다. 일제 식민지 하 지식인의 물질적 조건을 보여주는 한 일화이지만, 지금 우리의 학문하는 방법과 조건이 그가 했던 것과 얼마나 본질적으로 다른 것인지에 대해서 자신있게 부정할 수 없다.
자료는 도서관에서 찾으면 되는 거다.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당장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 확인하고 거기서 다시 힌트를 얻거나, 다른 자료들에 대한 언급을 발견하고 그래서 그 자료를 향해 떠나는 지적인 여행. 책 속의 학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어 나가는 과정. 그리고 그 주고받음을 정리하며 즐거이 각주를 작성하며 자신의 글을 쓰는 것.... 이러한 것들이 이상적으로 그릴 수 있는 공부의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그게 그리 간단치 않다. 일단 한국의 도서관에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김종엽 씨가 “환멸의 도서관”이라는 글에서 써 놓았듯이, 공부를 향한 여정이, 시작도 되기 전에, 번번이 차단당하고 만다. 뭐 해보기도 전에 “왜 이런 책이 없는 거야”라고 빡이 돌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때부터 별별 시시콜콜한 문제들이 나와 관련되기 시작한다. 어느 책은 도서관에 있긴 있는데, 개떡같이 분류되어 찾기 힘든 어느 구석, 아니면 접근하기 힘든 어느 서고에 있다는 것. 어느 책은 검색되긴 하는데 사실은 누군가가 뽀려가서 없다는 것. 어느 저널은 구독되고 어느 저널은 구독되지 않는다는 것. 어느 저널은 있긴 있는데 최근에야 구독되기 시작해서 1980년대 이전 것은 없다는 것, 반대로 어느 저널은 구독되다가 IMF 때문에 끊겨서 최근 것을 볼 수 없다는 것. 심지어, 어느 책의 어느 논문은 어떤 새끼가 찢어가서 볼 수 없다는 것. 도서관에 없는 책을 주문하면 그걸 선별해서 주문하고 배치하는 데 거의 일년이 걸린다는 것. 더 나아가, 도서관의 예산이 얼마이고, 어떤 식으로 집행되는 것인지... 그런 것들을 속속들이 아는 것이 학문하기와 직결된다.(!)

자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도서관 밖으로 나가야 한다.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돈들여 서점에서 책을 구하는 것인데, 여기서는 우리의 출판 현실과 직면하게 된다. 책이 비싸고 싸고는 배부른 불평이다. 수없이 접하게 되는 절판. 하루종일 어느 책을 찾아 헤매이다 결국 교보문고, 그 옆의 영풍문고까지 갔다가 좌절하게 되는 게 몇 번이던가.

내가 다루는 분야의 경우는, 내가 있던 학교 도서관이 싹수가 노랬기 때문에 다른 학교의 도서관을 찾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서강대 도서관에 비교적 인문 서적이 풍부하다는 것도 알게 되고, 어느 신학교 도서관에는 내가 찾는 자료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도서관 사이의 대여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나는 나의 인맥을 최대한 활용하여 책들에 접근하였다. 평소 연락도 않던 사람들에게 전화해서 뻔뻔하게 대출해달라고 부탁을 했던 게 몇 번이던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해당 분야를 다루는 연구소였다. 정말 다행히도 그 연구소에 자료가 잘 정리되어 소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거기 가서 안면 좀 익히고 계신 분들과 친분을 쌓으며 비교적 손쉽게 자료를 이용할 수 있었다. 팔자에 없는 여대 구경도 하고...
어느 분야를 전공한다는 것은 결국 자료의 노웨어(know-where)를 획득하는 것인데, 그게 참 하나하나 몸으로 부딪혀가면서 익히는 투박한 과정이다. 악기를 사려면 낙원 상가에 가야 하고, 어느 앨범을 구하려면 종각의 어느 레코드가게에 가거나 거기 없으면 황학동 벼룩 시장을 뒤져야 한다든지 하는 식의 알음알이들과 마찬가지로, 공간적 지식들과 결부되어 있다. 그걸 알아가는 과정에 체계적인 면이란 별로 없고, 거의 시행착오와 인간관계를 통해 경험적으로 축적해 나가는, 몸으로 얻어가는 앎이다. 관습에 의해 형성되는 버스 정류장 위치를 익히는 과정과 같다. 어떤 의미에서는 도제식 대학원 교육도 그런 점에서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 생각했던 것과 달리, 공부할 수 있는 것이 있고 공부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 여부는 한국의 물질적인 조건에 달려 있다. 자료를 얻을 수 있느냐가 좌우한다. 그래서 인문학 공부는 항상 타협을 강요받는다. 니가 하고 싶은 그건 우리나라에서 할 수 없는 것이라고...

그래도 내 한국에서의 공부를 돌이켜볼 때, 난 그나마 주어진 조건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과정이 매끄럽진 않았어도 즐겁게 추억할 수는 있다. 쬐끄만 종이 쪼가리 하나 찾으러 서울 시내를 열나게 돌아다녔어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좌절 속에 있었던 다른 인문학도에 비한다면 행복한 공부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쓰려고 했던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쓰고 말았다. 원래는 자료에 대한 나의 집착과 인터넷 활용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맺힌 게(?) 많았던지 어줍쟎게 한국의 인문학을 논하는 식으로 가버렸다... 쓰려고 했던 것은 다음 기회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