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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돌아다니다가

청평성지에 다녀와서

by 방가房家 2023. 5. 25.

(2015.11.3)

지난 10월 23, 24일에 통일교(정식명칭: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청평성지를 다녀왔다. 가고 싶다고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닌데, 한국종교문화연구소에서 마련한 기회에 편승해서 좋은 체험을 했다. 그저 장소만 방문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인사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서, 사전 공부 없이 간 주제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아래의 글은 연구소 뉴스레터에 싣기 위한 답사후기이다. 핵심적인 교리 변화에 대해서는 공부가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인상 중심으로 간단히 남긴 기록이다. 보고 든 생각은 더 많았지만 정리되지 않아 몇 가지만 글로 남겼다.

 

1. 살금살금 밞아야 할 곳

이번 청평성지 답사(11차 종교문화탐방, 10월 24-25일)는 특별한 만남이었다. 연구소 쪽에서는 이사장 이하 많은 선생님들(19명)이 참가했다. 쉽게 오지 않는 기회라는 종교학자의 직감이 작동했을 것이다. 우리를 맞이하는 가정연합 쪽의 태도는 더욱 특별했다. 청심신학대학원 선생님들이 이틀 내내 꽉 짜인 일정 내내 우리를 안내해주었고, 우리가 들리는 주요 시설마다 책임자들이 맞아주고 직접 설명을 해주었다. 천정궁 영빈관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교단의 주요 인사들과 첫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특별함의 느낌은 극에 달했다. 일정 상(‘청평특별대역사’라는 큰 행사가 열리는 기간이었다) 한학자 총재를 직접 만난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방문을 환영하고 단단히 신경 써달라는 총재의 말씀을 관계자들이 전해주었다. 그 당부가 그냥 인사말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이후 일정에서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는 대역사 집회 중의 총재의 말씀 내용조차도 연구소의 방문을 의식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인사 자리에서 (정진홍) 이사장은 캔트웰 스미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곳은 인간의 꿈이 서린 곳이어서 살금살금 밟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실제로 천성궁은 살금살금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곳이었다. 현대사회에서 사진촬영이 허용되지 않는 곳은 그만한 권위나 권력에 의해 지배당하는 공간이리라. 종교학자 조너선 스미스는 흐트러짐 없이 체계를 이룬 성전 안은 “완전한 정적이 지배하고 있다”고 묘사한 적이 있는데, 내가 천공의 성과도 같았던 그 곳에서 느낀 것이 그러했다.
일반적으로 성지는 ‘의미에 의해 생성된 공간’이다. 청평성지는 문선명 전총재가 기도하던 곳이었고 수십년간 공들여 조성한 공간으로, ‘복귀된 에덴동산’으로서 가정연합의 다양한 상징과 교리적 의미들이 충만한 곳이다. 그런 한편 외부인의 시각에서 볼 때 이곳은 ‘의미가 생성되는 공간’이기도 했다. 청평성지는 일본인 신자의 방문이 많은 곳이어서 가정연합의 국제적 성격이 강화되는 공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또한 최근 가정연합에서 강조하는 조상해원식이 거행되는 의례적 공간이기도 했다. 성지 내의 청심병원에서 7대까지 조상축복을 완료한 신자에게는 치료비를 환급해준다고 안내문이 붙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 공간에서 반복되는 의례는 교리적 변화의 동력이 될 것이다. 교단 관계자는 이전 교리와의 연속성을 강조하지만, 외부인이 보기에 가정연합은 교리적 변화와 적응이 활발한 곳이었고, 이러한 변화에 대한 감각은 이 공간을 체험함으로써만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2. “인간”의 꿈이 서린 곳
이번 답사의 꽉 찬 일정과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가정연합의 두 측면을 볼 수 있었다. 하나는 교단의 주요 구성원들에서 느낄 수 있는 짜임새였다. 최근의 큰 변화로 인해 내부정비가 잘 되어 있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무색할 정도로, 비교적 젊다고 느껴지는 임원진들의 구성은 탄탄했고 그들의 생각은 확신에 찬 논리로 매끄럽게 무장되어 있었다. 최근 3년의 변화를 매우 체계적이고 압축적으로 전달하는 기술적 능력이라든지, 언론을 비롯해 대외적인 홍보사업의 수준은 여느 대기업에도 뒤지지 않았다. 일반적인 종교계에서는 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조직의 측면에서 이 교단은 변화의 와중에 있으면서도 그 변화를 자기 논리로 발전시켜 외부와 소통하는 능력을 갖춘, 성장의 잠재력을 지닌 곳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두 번째 모습은 일정 사이사이에 이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이었다. 사실 나는 최근 가정연합의 교리에 대해 거의 무학無學에 가까운 상태에서 답사에 임했는데, 이런 내게도 얼핏 스친 장면들이 무언가를 알려주곤 했다. 이런 것이 답사의 힘이 아닌가 싶은 대목들을 간단히 소개하며 답사기를 마무리 짓고자 한다. 
청평성지 방문객들 중에는 일본인들이 많았지만 또 눈에 띄었던 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오는 아이들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어서 그랬거니 했는데, 그것은 우연한 광경은 아니었다. 청심교회에서 설교하신 목사님은 나이가 그리 많아 보이지도 않았는데도 자녀가 다섯이라고 하셨다. 안내해주신 선생님께 여쭤보니 교인들 중에 자녀 다섯인 가정은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저출산과 결혼 기피라는 한국 사회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어떤 면에서는 후기성도교회를 연상시키는 가족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 가정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교리로 인해 결혼은 물론이고 다산의 문화가 교인들의 삶에서 뿌리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정연합은 후속세대 생산이 활발한 교단이었고, 현재 2세대와 3세대로의 계승이 이루어진 종교로 보였다.
 
또 하나 눈에 띈 것은 교단에서 사진을 대하는 태도였다. 답사 내내 안내하시는 분들이 사진을 찍어주었으며 작은 일정이 끝날 때마다 기념촬영을 했다. 홍보용으로 쓰기 위한 것을 넘어서, 무언가 다른 사진문화가 존재함을 느낄 수 있었다. 교인들이 기념촬영 하는 모습도 이색적이었는데, 그들은 “치즈”나 “김치”를 말하는 대신 “아버지! 어머니! 사랑해요!”라고 외치고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길을 가다가 여학생들이 위에 계신 한학자 총재를 발견하고는 “참부모님이다!”라고 하며 바로 휴대폰을 꺼내드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대역사 집회식순에 폐막 직전에 “기념사진 촬영” 순서가 있었다는 것이다. 사진 촬영은 명백히 의례의 일환이었다. 예배에서는 슬라이드로 상영된 참부모 사진에 경배하는 순서가 있었고, 교회 강단에 다른 상징물들은 없었지만 참부모 사진이 걸려있어 경배의 대상이 되었다. 사진이라는 미디어가 매우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종교문화였다. 안내인에게 여쭈어보니 문선명 총재 시절부터 사진은 무척 강조되었다고 하며, 현재 엄청난 양의 사진과 동영상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천일국’이라든지 ‘독생녀’와 같은 핵심적인 교리들도 중요했지만, 나에게는 이런 세부적인 장면들이 공부에 큰 자극이 되었다. 종교 교리가 인간의 삶에서 어떻게 뿌리내리는지에 대해, 내가 문헌으로 배울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 특히 가정연합이라는 종교의 경우 신자들의 삶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짧은 일정 속에서 그 안의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었던 것이 내게는 큰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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