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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변잡기

결혼은 미친짓이다

by 방가房家 2023. 5. 22.
사회에서 제시해준 정상적인 연애와 가족의 궤도에서 약간 몸을 비틀어 빗겨나보려는 몸부림
--영화 [결혼은 미친짓이다]를 보고 드는 생각들

이 영화를 그렇게까지 재미있게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보기 드물게 차갑고 냉소적인 미덕을 지니고 있다. 멜로라는 상업적 틀 안에서, 현실을 태연히 직시하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영화의 테제는, 적어도 나한테 있어서는 그리 도발적이지 않다. 남자 주인공 감우성은 인문학쟁이이다. 그렇다면 정말 결혼은 미친 짓 아닌가? 만약 감우성이 삼성맨이라면 이 영화는 성립하지 않는다. 나는 철저히 인문학도라는 내 처지에서 영화를 보았다.
물론 결혼과 연애라는 이중생활을 하는 엄정화도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그러나 내 관점은 감우성 위주이다. 그리고 그가 인문학쟁이라는데 있다. 내 관점이 편협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감독 유하 역시 인문학쟁이라는 점에서 내 관점도 부분적인 타당성을 주장할 근거는 있다.
이 영화의 강점은 일상적인 삶의 궤도를 잘 보여준다는 데 있다.
일상적인 삶, 그것은 상투성의 연속이다. 정해진 시간과 자리에서, 일정한 조건에서 으레 하는 말들, 마땅히 취해야 할 액션들, 응당 만들어져야 할 표정들... 그러한 구체적인 동작들이 취해지는 순서들, 절차들, 그리고 그러한 행위가 이루어질 때 응당 고려되어야 할 조건들... 우리의 삶은 이러한 상투성의 궤도 위에서 움직인다.

그러한 점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소재가 바로 결혼이다. 지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결혼 앞에서는 '남들 하는대로' 하는 거지 별 수 없지 않은가? 영화는 결혼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초입부의 어색한 결혼 장면이 영화의 의도를 잘 드러낸다. 그 어색함은 우리 모두의 결혼에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혼 의례 자체, 그것을 준비하는 모든 절차들. 즉 맞선과 결혼 준비기간. 맞선에 동원되는 뻔한 언어들과 예의들, 결혼 준비에서 거쳐가야할 흔한 흥정과 감정 대립들...
우리는 상투성의 궤도 위를 살아간다. 결혼은 우리를 그 궤도 위에 완전히 고정시켜버리는 장치이다. 그러한 상투성들은 인문학과 대립적이다.
인문학쟁이에게 결혼이 미친짓인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사회적 조건이다. 한국사회의 인문학쟁이는 일반적으로 결혼을 허락받을 처지가 못 된다. 감우성이 영문학 강사를 하면서 받는 돈은 얼마였을까? 내가 알기로 대학 강사의 한달 급여는 30만원에서 40만원 정도이다. (최대한으로 잡았을 때이다. 평균은 20만원대이다.) 세 탕 정도 뛰면 백만원 안 되는 돈을 번다. 게다가 방학 때는 무직 상태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직업은 전혀 안정성이 없다. 그 학기에 강의를 할 수 있는지, 학기 직전 되어봐야 안다. 강사 채용 공고가 공식적으로 있는 경우보다는, 알음알이로 학과에서 마음대로 정하는 것이어서, "다음 학기에 이 강의 맡으실래요?"라는 전화가 오지 않으면 그 학기 놀아야 한다. 강의는 그들의 생계 수단이라고 할 수 없다. 그저 신성한 의무일 뿐이다. 그런 인간이 결혼을 한다고? 가정을 갖겠다고? 그건 미친 짓이다.
다른 이유는 삶의 경향성 때문일 것이다. (이견이 많이 있겠지만) 인문학은 삶의 정상성(상투성)에 대한 하나의 삐딱한 시선이다. 그들은 제도의 아웃사이더들로서 자신의 소임을 한다. 사람들이 당연시하는 것들에 대해 딴지를 걸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고 종용하고, 다른 식으로 보자고 부탁하고, 그것이 그렇게 된 역사성을 탐구한답시고 들쑤셔 놓으며, 논리적 연결 관계를 들먹이며 머리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수요가 없는 지점에 지적 호기심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몸을 던져 살아가는 이들이다. 단순히 말해 그들은 삶의 궤도에서 조금 빗겨난 지점에 살고 있다.(물론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사회적으로 공인된 기찻길의 옆에 옹색한 오막살이를 짓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결혼이 미친짓인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그들의 삶의 논리, 아웃사이더 정신에 대한 배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문학쟁이는 결혼하지 않는가? 물론 결혼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한 명의 사회인으로서 수행하는 의무이지 그의 삶의 논리에 순행하기 때문은 아니다. 원래 산다는 것은 타협의 연속 아닌가?
감우성이 결혼에 대해 극히 소극적인 태도를 갖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그것은 성격이 괴팍해서가 아니라 그가 속한 삶의 양태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동생의 결혼식에 마지못해 있어주는 것, 그것이 그의 삶의 자리이다. 그가 유부녀의 경제적 원조와 그녀와의 연애를 아무런 고민 없이 받아들이는 것. 그것 역시 지극히 온당하다. 사회적 관행을 따르는 데 관심이 없는 인간이 사랑를 하겠다면 그렇게라도 하는 것 아닐까? 일반인들에게 기형적으로 보이는 삶의 형식을, 인문학쟁이는 감수할 수 있다. 그것이 공부하는데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서야. 그러한 면에서 우리는 금홍이에 얹혀 산 시인 이상을 그러한 전형으로 떠올릴 수 있다.

그래서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제목은 그리 도발적일 것이 없다. 감우성도 그걸 핏대 높여 주장하지 않는다. 그의 자리에서 너무 당연하기에. 그것은 주장의 내용이 아니라 그의 존재에 함축된 전제이다. "나" 역시 그 영화를 심드렁하게 볼 수 밖에 없다. 삶과의 거리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기이한 삶의 논리를 멜로 드라마라는 상투적 양식 안에 무리없이 그려냐고 있다는 의미에서, 이 영화는 잘 만들어졌다고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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