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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얻어배우는 것

IMF를 극복한 무교

by 방가房家 2023. 5. 19.

로렐 켄달(Laurel Kendall) 선생의 발표를 듣다.
제목: "Korean Shamans and the Spirits of Capitalism" (2009년 12월 10일, 서강대학교 다산관)

켄달 선생은 한국 여성 무속인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분이다. 직접 발표를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이 자리는 선생의 신간, <<Shaman, Nostalgias, and the IMF: South Korean Popular Religion in Motion>>(University of Hawaii Press, 2009)의 내용을 소개하는 자리였고, 발표문은 책의 내용에서 뽑아서 구성되었다. 책의 존재를 몰랐는데, 중요한 책을 소개받게 되어서 기쁜 자리였다. 평소에 글로 만나던 학자를 강연을 통해 만나는 경험과 앨범으로 듣던 가수의 콘서트에 가는 경험은 비슷한 것일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잠시 했는데, 막상 강연장에 가면 그 단촐함 때문에 그런 생각은 사라지고 만다.

아이엠에프라는, 최근 한국사회의 경제적 위기가 한국인의 종교생활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그리고 한국종교는 그 위기를 어떻게 대처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내가 알기로는 한국에서도 작은 논문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연구가 없을 텐데, 이 학자는 정말로 부지런하다고 생각한다. 주지하다시피, 현재 한국 종교들에서 신자들의 경제적 상황은 핵심적인 관건이다. 그 점은 기독교나 불교나 마찬가지이며, 단골들의 물질적인 부의 문제를 민감하게 상담해온 무교는 더욱 심하다. 켄달은 서울지역 무교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를 통해서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무교가 단골들에게 어떤 해결책을 주었는지, 상황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어떤 새로운 언어들을 생산하였는지를 보여준 것 같다.
우리 바로 옆에 있지만 잘 알지는 못했던 현상, 하지만 알려주면 잘 이해할 수 있는 무교를 통해서 경제상황과 종교의 관계라는 중요한 쟁점을 탐구하는 이 연구를 통해서 우리는 자본주의를 다루는 중요한 종교이론들, 예컨대 베버, 코마로프, 토시그 등의 이론들을 한국에 초청해서 견주어보는 기회를 얻게 된다. 나는 이 책이 시의적절한 것을 넘어서 자본주의라는 생태에서 종교가 존재하는 양상에 대해 시사하는 것이 많은 중요한 연구가 되리라는 느낌을 받았다. 얼핏 보기에 이 연구는 경제위기에 무교가 어떻게 살아남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그러한 위기에 어떻게 떵떵거리며 잘 살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예상이 된다.

발표문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 중에서 ‘물질적 신령들’(material spirits)이라는 소절의 내용을 간단히 번역해서 소개한다. 이 부분에는 도시지역 무교가 신자들의 경제적 상황에 맞추어 어떤 새로운 종교상징들을 생산하였는지 생생한 사례들을 제공한다.

18개의 굿과 치성에서 무당들이 불러온 신들은 단단히 집안 사업의 세계에 살고 있었다. 그들은 무당들의 입을 통해서 스스로를 “장사신장, 영업신장, 전업(電業)기술신장, ○○화원 상업대감”이라고 밝힌다. 어려운 갈비집의 번창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주방대감, 주방칼대감(갈비집의 중요한 도구), 카운터대감이다.” 무가와 점에는 단골의 사업의 이미지로 나타나는 상서로운 징조들이 담겨 있다. 복씨에게는 “[큰 주문 때문에] 꽃다발이 들어설 것이다. 앉아있든 서 있든 [손님들이 계속 들어와서] 문 여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들어온 사람은 빈손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다. ○○화원의 운이 트일 것이다.” 전기기사에게는, “동서남북 어디를 가든……전기가 나가지 않도록 내가 도울 것이다.” 여행사를 하는 가족을 위해서는, 차대감이 “앞바퀴와 뒷바퀴를 잡고 관광버스를 길한 곳으로 옮겨줄 것이다.” (발표문,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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