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문
1권에서 이데올로기, 헤게모니, 의식과 표상의 문제를 이론적 쟁점으로 내세웠던 저자들은, 2권에서는 식민주의와 일상의 문제에 대한 이론적 고찰을 심화한다. 그들이 내세운 식민주의에 대한 일곱 테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식민주의는 정치 경제적인 동시에 문화적인 것이다. 선교사들이 츠와나에서 행한 농업은 생산에 관련된 것인 동시에 미적이고 지리에 대한 상상의 세계에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정치와 문화를 동시에 보는 관점이 요청된다. ②식민화의 주체는 정부 관료들뿐만이 아니라 다른 행위자들, 예를 들어 선교사, 상인, 정착자, 군인 등을 포함한다. 그들은 직접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고도로 의례화되는 경우가 많은 표상의 기술에 의존한다. ③식민화는 메트로폴리스의 창출과 관련된다. 그것은 유럽이라는 중심과 지역의 주변부의 형성을 말한다. ④식민자와 피식민자읙 구분, 둘간의 대립과 투쟁으로는 복잡한 현실을 담아내기 힘들다. 두 범주간의 대립은 계속적으로 파열되고 타협되며, 경계는 흘려지거나 재창출된다. 예를 들어 영국 선교사들은 아프리카 기독교 엘리트들에 더 호의적인 반면에, 보어 거주자들과는 적대적이었다. ⑤복합적인 현실에도 불구하고, 식민 사회에서는 이원적 용어들이 표상되어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차이성들을 이원적 질서로 객체화하는 것 자체가 식민화 과정이다. ‘서울과 시골’이라는 이원적 인식은 남아프리카에서도 적용되어, 원주민들의 지역은 시골로, 유럽인들 사회는 도시로 불렸다. 그것은 또한 세크고아와 세츠와나의 차이에 적용되기도 한다. ⑥비유럽 사회는 절대로 폐쇄된, 변하지 않는 전통적인 사회가 아니다. ⑦식민화는 수많은 불연속성과 모순들 위에 자리한다. 식민화는 근대화를 표방하면서도 끊임없이 전근대적 방식에 호소하며 의존한다. 계몽주의를 표방하는 법률은 관습법에 의해 강화된다. 자율적이고 개인적인 근대 시민은 인종적으로 분할된 세계 내에서 살아간다. 전통의 속박에서 구해주겠다고 하지만, 기실은 전통과 혼합되어 옭아맨다.
저자들이 강조하는 다른 이론적 주제는 일상을 통한 식민화 과정이다. 그런데 이 이론적 논의는 선교사들의 선교 방침과 잘 맞아떨어지는 면이 있다. 소박한 일상의 성취들을 통해서 신의 뜻을 보이고자 했던 개신교적인 방법론에서, 엘리아스, 고프만, 드 세르토 등의 이론가들의 논의에서 보이는 일상의 실천에 대한 관심을 볼 수 있다. 찰스 테일러의 지적처럼 일상을 통해 근대적인 자아, 자본주의적인 주체를 형성하려는 기독교 사회의 분위기는,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하려던 그것이었다. 임금 노동, 소비, 사유 재산, 공사 개념 등 자본주의 개념들은, 영원에 이르는 세속적 관문인 자아 성취를 통해서 츠와나 사회에 받아들여졌다.
1권 작업 이후 저자들이 받았던 비평들 중에는, 이 책이 너무 포스트모던하다는 ‘구제불능의 실증주의자’들의 반응도 있었다. 반시나는 이 책이 학생들이 읽기에 너무 위험한 책이며, 순전히 기교에 기반한 책으로, 패셔너블한 시카고 학파 인류학자의 작품이라고 비난한다. 저자들이 1권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이론들을 비판했고, 그와의 거리를 누누이 강조해온 것에 비추어볼 때 이러한 비판은 조금 의외이다. 이것은 해석에 기반을 둔 작업에 대한 실증주의자들의 혐오가 나타난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행위자의 증언보다 해석에 의존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오래된 이 비판에서, 사실적 자료와 해석을 나누는 구분은 합당하지 않다. 다른 비평들은 츠와나 사람들의 ‘목소리’, 그들의 내러티브가 무시된 것은 아니냐는 점에 대한 것이었다. 필(Peel)과 랑거(Terence Ranger)는 자료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였는데, 그것은 아프리카 인들이 주체가 된 내러티브 전승의 활용에 대한 것이었다. 이에 대한 저자들의 답변은 츠와나 문화가 다른 아프리카 지역 연구와는 달리 구술 전통을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들은 ‘변증법적인 만남’을 통해 양편의 주체들이 어떻게 활동하였는지를 규명하고자 한다. 전권에서 이야기되었듯이 개종은 실제로는 긴 대화로, 여기에는 서로간의 오해, 이해 관계, 동맹의 경계들이 복잡하게 관계된다. 이 대화에는 백인/흑인, 기독교/이교, 세크고아/세츠와나의 가상적인 이분법이 설정되어 있지만, 그보다는 양편 사이의 전선에서 일어나는 넘나듦, 혼합, 문화적 전유가 이 책의 주제가 된다. 선교사들이 보기에 ‘이름만’ 기독교인들인 츠와나 인들은 자신의 이미지대로 개신교를 다시 만들었다. 혼성, 미메시스, 문화 융합은 호미 바바가 강조하는 포스트모던적 주제이다. 그러나 그것은 식민화 처음부터 존재한, 근대 사회의 주제이기도 한다.(post the past and past the post) 저자들은 탈근대와 근대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포스트모던적 독해는 식민 사회의 일상을 읽을 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2. 설교자와 예언자
개신교는 종교 개혁을 통해서 가톨릭의 전승들, 그 중에서도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중재하는 성인, 성모, 축일, 성지, 성물, 성화 등의 상징체계들을 제거하였다. 이러한 상징의 빈곤함 때문에 개신교 선교에서 교리적 설명으로 완결되지 않는 난점들이 생기곤 한다. (이 때문에 가톨릭 선교지들, 예컨대 카리브 해 연안, 남아메리카, 필리핀 등지에서 비슷한 사안에 대해서 다른 전개 양상을 보인다.) 한국 문화에서 조상에 관련된 부분, 츠와나 사회의 바디모와 관련된 문제들이 바로 개신교 선교사가 공란으로 남겨둔 중요한 쟁점이 된다.
웨슬리는 부흥회에서의 감각을 통한 하느님 경험을 강조했으면서도, 환상이나 몸떨림과 같은 ‘과도한’ 경험은 부정하였다. 어디까지를 ‘적절한’ 경험이고 어디부터가 ‘과도한’ 경험인지를 규정하는 것은 근대 개신교사에서 핵심적인 사안이 되며, 종교사를 통해, 그리고 해당 교단의 입장에 따라 변동되는 모습을 보인다. 예컨대, 조나단 에드워즈가 설정한 경계가 달랐고, 후대에 오순절파 운동에서 설정한 체험의 경계가 달랐다. 츠와나에 온 개신교 선교사들도 아프리카 신자들의 종교경험에 적절함의 경계를 설정하고 규제하고자 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종교경험의 범위를 규정하는 것은 현재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방언이 터져야 올바른 믿음일까?’라는 고민.]
선교사들은 언어적 행위만으로 전도가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가졌다. 친절한 대화를 통해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것만으로 그들의 목적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초기 선교사들은 츠와나 사회에 ‘종교’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모팻은 이 사회에서 “종교는 황야의 모래 속으로 사라진 물줄기 같은 것”이라고 묘사했다. 개신교적 관점에서 ‘싸움의 대상이 되는’ 전설, 제단, 신들이 없다고 말한다. 기껏해야 주술과 의례들이 있으며, 그것들은 구약 시대의 흔적들이다. 리빙스턴은 츠와나에 초월적 존재에 대한 지식은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입장이었는데, 그 역시 종교를 성사 제도, 공동체 의례, 고백된 믿음의 체계로 보려고 했고 그런 의미의 종교는 존재하지 않았다. [“종교의 부재”는 세계 각지 선교사 기록의 앞머리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중요한 현상이다. 서구적 종교 개념의 적용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종교학의 중요한 탐구 주제가 된다. 다음 책은 그러한 관점에서 남아프리카 종교 개념의 적용과정을 분석한 중요한 책이다. 특히 이 책의 5장에서 츠와나(바로롱)의 사례가 다루어져서 이 지역이 ‘종교 부재’로부터 ‘토테미즘’의 한 사례로 기술되는 변화의 과정이 분석된다. 183-199쪽에서 모팻을 비롯한 초기 선교사 자료가 분석된다. David Chidester, Savage systems : Colonialism and Comparative Religion in Southern Africa (Charlottesville: University Press of Virginia, 1996).] 츠와나 전통 사회에서 실질적인 의미를 지닌 바디모와 같은 존재들은 선교사들의 종교 개념 인식에서 빠져나가 있다. 하지만 츠와나 기독교사에서 핵심적인 만남은 바로 이 영역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저자들은 츠와나 인들에 의해서 기독교가 형성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소절의 제목으로 “에티오피아는 곧 하느님을 향해 손을 뻗을 것이다”(Ethiopia extends her hands)라는 시편 구절을 인용한다. 이것은 아프리카인들, 그리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교회사에서 핵심적인 메시지로 사용되어온 구절이다. 아프리카인들이 주어가 된 이 문장을 통해 저자들은 기독교 형성의 토착적 시도를 잘 표현하고 있다. 처음 역할을 한 사람들은 아프리카인 조사(祖師)들이다. 선교사들은 흑인을 하느님의 일꾼으로 고용하는 데 처음에는 주저하였다. [내가 보기에 저자들의 서술에서 영국의 당대 시대적 논리와 담론들을 선교사들의 인식과 연결시키는 작업은 불충한 면이 많다. 1권 3장에서도 아프리카에 대한 영국인들의 이미지들은 잘 정리되었지만, 그것이 선교사들에게 어떻게 내면화되었는지는 선교사들의 자료를 통해서 충분히 뒷받침되어 서술되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당시 영국에 존재한 아프리카인에 대한 담론이 선교사의 내면에서 어떻게 작동하였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는 없다. 글에서는 선교사가 아프리카 인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담론과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 사이에서 “모순”을 겪었다고 서술하고 있지만, 그러한 모순이 존재하였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츠와나 조사들에 대한 선교사들의 비난 언급들은 현실적인 문제들에 관한 것들이지 담론과의 충돌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조사들은 번역 작업을 도와주고, 선교사들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에 가서 전도하는 일을 하였는데, 그 중에서는 점차 독자적인 활동을 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이들이 지역적 기반을 가진 토착 교회를 형성하는 기반이 된다. 독자적인 활동을 펼친 조사들은 이른바 ‘아프리카의 사도들’이 된다. 선교사들이 ‘말씀’을 전한 것과는 달리, 이들은 실용적인 측면에서의 기독교에 대한 접근을 보여준다. 예컨대, 그들 삶에서 중요한 죽은 자들의 영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성령’의 경험을 통해서 추구되었다. 또한 의례적 측면에서, 구약의 음식 금기와 츠와나 음식 금기를 종합하는데 관심을 보이기도 하였다. 세켈레는 하느님에게 기우제를 드리는 데 아무런 모순을 느끼지 않았다.
독립 교회를 형성하여 선교사들로부터 벗어나는 운동들도 존재했다. 이 분리운동의 주원인은 교회를 누가 지배하느냐의 교회 내 정치적인 문제였다. 이들 “부족 교회”들은 내용에 있어서는 백인들의 제도라든지 종교적 내용은 그대로 유지된 편이었다.
그러나 “예언자”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만한 카리스마적 지도자들의 경우에는 세츠와나와 세크고아 사이의 결합과 혼합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이것은 물론 선교사 입장에서는 기독교로 승인할 수 없는 움직임이다. 1909년에는 두 청년이 예수와 세례 요한의 환생이라며 등장한 사건이 있었다. 더 중요한 예는 여성 예언자 사비나(Sabina)이다. 그녀 행위에서는 두 전통의 상징들이 뒤섞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앞뒤 안 맞는 말들을 수없이 뇌까리는데, 그것들은 성서 본문, 찬송가 구절들, 주기도문 일부가 짬뽕이 된 것이었다. 그녀는 힘껏 헝겊쪼가리를 흔들었다. ... 이것이 그녀가 하느님께 기도하는 방식이었다. ... 누구든지 그녀가 일러주는 대로 하면 당장 대야 안에서 하느님 얼굴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정성들려 기도를 드리면 하느님이 물 밖으로 나와 말씀하신다는 것이었다.” 사비나는 기독교 상징들과 의복들을 해체하여 세츠와나 방식으로 재구성하였고 하느님을 직접 만나는 방식을 제시한 것이다. 다른 예언자는 하느님의 ‘천사’로서, 폭우가 쏟아져서 백인들의 지배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과거의 전통 관습으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화물 숭배와 비슷한 구조의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이들 예언자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세크고아의 힘을 획득하여 그들의 꿈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독립적인 교회 운동으로 에티오피아주의 교회들이 있었다. 이들은 “에티오피아는 곧 하느님을 향해 손을 뻗을 것이다”는 구절에서 영감을 얻어 자치적인 교회 조직을 만들고 범-아프리카의 정체성을 고취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백인들의 흑인 차별에 저항하면서, 말씀과 세계, 종교와 도덕적 행위의 합치를 주장하는 인간적인 기독교를 표방하였다.
츠와나 인들은 세츠와나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기독교를 전유하였다. 이 전유의 지점들은 일상적인 의례의 맥락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주목받거나 문헌으로 기록되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양상을 설명하자면, “실천적 신학”(the practical theology)라는 표현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영국 선교사의 입장에서 볼 때, 개신교는 개인에 대한 규율을 통해서 일상 세밀한 행위들까지 하느님의 영광과 연결시키려는 금욕적인 성향을 갖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선교사들은 실천적 신학을 갖고 있었다. 반면에 츠와나 사람들은 삶의 실제적인 영역에 작용하는 힘을 통해서 하느님을 지각하고자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의 실천적 신학을 그들은 갖고 있었다. 그들은 기독교는 선교사들의 힘의 실체에 접근하는 방식이었고, 그러한 지향은 예언자들로 대별되는 그들의 토착적인 기독교 운동에서 잘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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