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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발제

세계 종교 담론이 자리잡았을 무렵

by 방가房家 2023. 5. 6.

[마쓰자와(Tomoko Masuzawa)의 <<The Invention of World Religions>> 1장 일부(37-46)에 대한 간단한 발제.]


종교를 범주화하는 방식이 불확정적이고 변화가 심했던 장기 19세기1)가 이 책에서 다루어질 시기이다. 단절의 모습을 통해 그 시기의 경계선을 그려 보이기 위해, 1절에서는 장기 19세기가 종결된 직후의 모습을, 2절에서는 장기 19세기 이전 시기의 모습을 보여준 후, 3절에서는 19세기 전반의 몇몇 사례들을 통해 이전 분류체계들이 변모되었음을 보여준다.
 
1. 세계 대전 시기의 “세계 종교들”
1920년대와 1930년대 초에 “세계 종교”라는 영어 용어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게 되었다. 이 시기 이 주제에 관한 책의 출판이 괄목할 만큼 늘었고, 세계 종교 강의가 북미 대학 커리큘럼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1차 대전 후 위기의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종교 사상의 위기가 임박하고 있다는 확신”(38) 아래 쓰여진 쿡의 책2)에서는 그 위기감이 종교 영역에서도 표현된다. 이 분위기는 수십 년 동안 지속되었고, 종교의 연구가 새로움과 폭력을 함께 경험한 근대에 있어 특별 당면 과제라는 생각이 힘을 얻게 된다. 1930년대 나온 책을 살펴보면, “어떻게 종교는 이 변화를 헤쳐 나갈 것인가?”3)(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이는 종교가 “어느 시대에도 알려지지 않은 혁명적인 힘들과 관계를 갖게 되었으며 역사상 가장 큰 변화”4)를 겪고 있다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헤이돈의 글에는 ‘살아있는’ 종교(living religion) 담론5)이 나타난다: “변화는 항상 살아있는 종교의 특징이다. 종교는 추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 어디엔가는 살아있는 종교들이 존재하며, 이들은 이제 근대라는 공통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다른 식으로 보면, 세계 종교들을 상상할 수 있고 지각할 수 있는 객관적 실체로 만든 것은 (근대가 제공하는) 지구적 인식이라는 새로운 감각, 멀고 가까운 세계가 직접 연결된다는 감각이다. 케이브 책의 시작은 이렇다: “이제 지구는 좁은 장소이다. 안전하고 빠른 유무선의 교통통신 수단들이 멀리서도 많은 의미를 가져다준다. 신문은 전세계의 뉴스를 아침 식탁에 올려준다.”6) 새로운 의미의 세계가 제시되고 있다.7) 새로운 기술지리정치학이 눈앞에 드라마틱하게 펼쳐지고 있는 세상에서, 독자들은 세계의 다양한 종교들에 대한 포괄적인 지식을 빠르게 습득하기를 요구받는 분위기이다.
세계 종교 담론이 등장한 반면에 원시 종교에 대한 이전의 관심은 퇴색하였다. 이제 종교의 머나먼 기원을 찾는 것이 관심이 아니라, 역사적 과정과 변천을 거치면서 살아남은 위대한 세계 종교들에 관심이 되었다. 그들이 근대의 물결에 맞서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탄력성, 적응력, 생명력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원시 종교들은 역사적 변화를 별로 경험하지 않았다고 상정되었다. 헤겔의 진술이 인상적이다: “아프리카에 대한 논의는 하지 않겠다. 아프리카는 세계의 역사적인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엔 보여줄만한 움직임이나 발전이 없다. 아프리카 북쪽 지역의 역사적 움직임은 아시아나 유럽 세계에 속한 것이다.”(42) 역사 부재라는 이유로 머지않아 사라질 것으로 생각되었던 원시종교는 종교학에서 우선적 지위를 세계 종교에 넘겨준다. 무어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의 목표는 오직 문명화된 민족들의 종교만을 포괄하는 것이다”8)
격하되긴 했지만 원시종교가 연구에서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었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전통들이 기초(primal), 부족(tribal), 토착(indigenous), 무문자(preliterate) 종교 등 다양한 이름들 아래 묶이게 되었다. 피네건은 이렇게 말한다. “지구 여러 지역의 무문자 민족들에서는 많은 형태의 신앙이 발견된다. 이들을 ‘원시론’(primitivism)이라는 표제로 집단적으로 묶을 수 있다면...”9)(43) 어떻게 그들의 ‘신앙’이 ‘집합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다는 것일까? 그러나 그런 질문은 거의 제기되지 않았다. “야만 종교의 특성은 어디서나 크게 다르지 않다”10)는 진화론적 연구를 그대로 반영하는 이러한 접근 방식은 이단과 우상숭배를 다루었던 옛날 분류 체계와 유사하다.
 
원시론을 하나로 쳐준다면, 피네건의 살아있는 세계 종교는 12개이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조로아스터교,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시크교, 유교, 도교, 신도, 원시종교. 이것은 흄의 1924년 교과서11)와 일치하며, 인문대학 강좌에 사용되기 위해 기획된 최초의 세계 종교 교과서12)에서 제시된 것과도 똑같다. 다소의 변형은 있지만, 이 세계 종교 리스트가 이후 수십년간 미국의 세계 종교 시간에 다루어지게 된다.


1) 장기 19세기(1789-1914): 산업혁명 시작 이후 제1차 세계대전 발발에 이르는 시기로, 홉스봄의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3부작을 통해 다루어졌다. 그는 이 시기에 자유주의의 기치 아래 부르주아 사회의 형태 속에서 자본주의가 발생, 변형, 승리하고 종결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2) Stanley A. Cook, The Study of Religions (1914). 쿡(Stanley Arthur Cook, 1873-1949)은 Gonville & Caius College에서 히브리어(1904-32)와 비교 종교(1912-20) 강사를 했으며, 케임브리지 대학 히브리어 교수(1932-8)로 재직하였다.
12) John Clark Archer, Faiths Men Live By (1934). 그 이전에 신학대학원과 선교사들을 위한 책들이 있긴 하다. William Fairfield Warren, The Religions of the World and the World-Religion (1911). George Aaron Barton, The Religions of the World (1917). 그리고 Edmund Buckley, Universal Religion (1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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