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y Douglas, Purity and Danger 6-10
6. 권력과 위험
무질서는 질서를 위협하지만 질서를 생성하는 잠재력을 지니기도 한다. 체계 질서 내에서 유형화된 형태로 작동하는 힘이 있는가하면, 외적 경계 바깥에서 체계화되지 않은, 제어되지 않는, 승인되지 않은, 의식화되지 않은, 무형의 힘이 작동하기도 한다. 이 장에서는 사회의 경계에 의해 설정되는 힘의 관계, 즉 권력과 위험이 의례적 맥락에서 어떻게 나타나며 금기와는 어떤 관계를 갖는지가 다루어진다. 더러움은 통과 의례의 격리 단계에 있는 신참자들, 주변(margin)에 위치한 사람들의 상징적 의미에 상응한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고 했다. 사회 체계 바깥에 존재하는 규정되지 않은 힘, 즉 위험을 어떻게 서술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이다. ‘구조 바깥의 힘’이 지닌 잠재력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들이 있다. 빅터 터너가 코뮤니타스 개념을 발전시킨 것이 이 주변인의 힘에 대한 고찰에서 비롯되었으며, 바흐친을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위험이 가진 전복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견주어 읽을거리가 많은 대목이다.
“사회 체계가 잘 규정된 곳에서는 규정된 힘이 권위의 지점들에 수여되고, 사회 체계가 제대로 규정되지 않은 곳에서는 규정되지 않은 힘이 무질서의 근원인 사람들에 수여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외적 상징체계는 드러나 있는 사회 구조를 지지하고, 내적이고 무형의 심리적 힘은 비구조로부터 사회 구조를 위협한다.” (99) 마법(witchcraft)과 마술(sorcery)이 후자의 맥락에 놓인 힘에 관한 것이라면, 축복의 힘 관념들(튜튼족의 운, 티코피아의 마나, 아프리카 무슬림의 바라카)은 전자의 맥락에 위치한다.
이 장에서 더글러스의 논의는 극단적으로 난삽하다.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정리가 얼마나 무자비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더글러스 자신도 논의의 비완결성을 알았을 것이다. 이를 다듬어 발전시켜 몇 년 뒤 <<Natural Symbols>>에서 사회구조와 상징체계의 관계에 대한 고찰을 새로 내놓게 된다.
사회 체계 내에서 운용되는 영적인 힘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벗어난 위험도 존재하는데, 오염은 그 벗어남에 작동된다. 오염의 힘은 관념 구조에 내재하고 있다가 분리되어 있어야 할 것을 연결시키는 상징적인 위반이 있을 때 그것을 벌한다. 그러므로 오염은 구조, 우주, 사회의 선이 그어져 있을 때만 발생할 수 있는 유형의 위험이다.
7. 외적 경계들
몸은 사회의 상징이다. 사람의 몸에서 사회 구조에 부여된 권력과 위험이 축소된 형태로 재현된다. 의례에서 몸이 다루어지는 방식은 유아기적 환상의 반영이라는 심리학적 분석이 많이 이루어져 있는데, 이러한 접근은 문화적인 현상이 의례 행위를 개인의 심리의 차원에서만 접근한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게다가 더러운 대상들의 상징적 의미를 규정하는 문화적 특성에 대한 고려도 빠져있다.
몸은 사회의 경계를 상징한다는 것. 더글러스가 처음으로 주장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이 부분은 이후의 논의에 영향력이 큰 중요한 주장이다.
몸의 구멍은 사회적인 출입지점을 상징한다. 사람 몸의 구멍을 통해 유출되는 것들(똥, 정액, 침, 월경 때의 피 등)은 (몸=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하고 더러운 것으로 인식된다. 사회 체계의 외적 경계와 관련된다는 맥락에서, 음식을 조리하는 과정에서의 금기 역시 중요하다.
8. 내부의 선들
원시 오염 관념은 도덕과 무관하다는 것은 학계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예를 들어 리쾨르 <<악의 상징>>에서 흠, 죄, 허물을 나누어 설명하면서 원시 사회의 관념인 흠은 도덕 이전의 관념이라고 한다.
흔히 오염에 대한 원시 사회의 관념들은 윤리 문제와 관계가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이 장에서는 실제 생활에서 양자가 어떤 관계를 갖는지가 탐구된다. 오염이 도덕과 일치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염은 여러 방식으로 도덕 규범을 지지해준다. 도덕의 위반이 있는지를 판별하는 리트머스 종이로 기능할 때도 있고, 도덕의 위반이 여론의 비난 대상이 되지 않을 때는 오염을 통해 피해자의 상황을 악화시킴으로써 여론을 환기시키기도 하며, 도덕적 비난이 실질적인 처벌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경우에는 오염에 대한 믿음이 잘못된 행위에 대한 억제책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
사회 환경은 존중되어야 하는 선들에 의해 이어지기도 하고 구분되기도 하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넘지말아야 할 선을 넘었을 때, 강력한 사회적 재제가 가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선이 불확실한 경우, 오염 관념이 작용해서 선을 넘는 것이 위험한 것임을 인지시킨다.
9. 자체로 갈등중인 체계
남녀가 한 사회에서 함께 산다는 것 자체가 근본적인 갈등의 원인일 수 있다. 오염 관념은 이 갈등에 어떤 식으로 관계되는가?
왈비리족처럼 사회 조직 원리가 남성의 물리적 강제력으로 완전히 제어되는 경우엔 성적 오염이 발달할 여지가 적다. 그러나 남성 지배의 원리가 여성의 독립성과 같은 다른 원리들에 의해 모순이 발생할 때, 성적 오염 관념이 발달한다. 남인도 나야르족 여인은 카스트의 유지를 위해 초경 이전에 의례적 결혼을 올림으로써 성적인 오염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매 엔가족 남성은 적대적 관계에 있는 씨족의 여성과 결혼하는데, 이 때문에 배우자 여성의 성적 위협을 상정한 금기들이 발달되어 있다. 렐레족 사회에서는 여성을 확보하는 것이 남성의 지위를 보장한다. 즉, 여성이 사회적 통화(通貨)로서 존재한다. 반면에 여성은 자율성을 갖고 배우자를 선택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섹스는 양쪽 모두에 위험한 것으로 인식되어 높은 강도의 금기가 설정되는데, 예를 들어 섹스한 후에 부인은 남편을 깨끗이 씻길 의무가 있으며 여성은 섹스 후 음식물을 만지기 전에 숨겨둔 항아리에 든 물로 깨끗이 해야 한다. 이러한 남녀간 내적 갈등의 문제 때문에, 초기 기독교 전통에서 처녀성이 강조되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성적 오염의 두려움의 대상인 이브와 처녀성을 지닌 제2의 이브)
우리사회에도 여전히 남녀의 성적 문제에 오염 관념이 개입된다. 한국 남자는 과거가 있는 여자는 몸을 버렸다고 생각한다. 이건 오염 관념의 작동으로, 도덕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10. 와해되고 갱신되는 체계
깨끗함, 혹은 순수를 추구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우리 경험과 배치된다. 예를 들어 성적인 순결 관념을 고집해서 섹스를 거부하는 것은 황폐함으로 귀결될 것이다. 깨끗함의 강요는 불편하게 하고, 삶과의 모순에 처하게 되고, 위선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
평소에는 파괴적이다가 어떨 때는 창조적인기도 한 더러움을 한 전통 내에서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까? 더글러스는 여기서 윌리엄 제임스의 건강한 정신(healthy-mindedness)의 종교와 병든 영혼(sick soul)의 도식을 응용하여 더러움을 부정하는 종교와 더러움을 안고가는 종교의 구분을 제시한다. 그러나 한 전통을 성급하게 구분을 적용하는 일은 어렵다. 예를 들어 렐레족은 고도의 금지 규정들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더러움을 부정하는 종교라고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렐레족의 분류체계를 벗어난 동물인 천상갑을 먹는 신비로운 의례를 통해서 더러움을 수용하고 새 질서를 모색하는 디오니소스적인 계기를 갖는다.
원시 종교에서나 현대 종교의 일반 신자들에게서나, 의례적인 절차를 준수하고 그럼으로써 현실의 복리를 좇는 것은 현실의 모순에 부딪히고 기존 믿음 체계에 대한 회의에 빠져들게 된다. 그 경우,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방해하는 악의 세력이 있다고 상정함으로써 기존의 믿음을 고수한다든지, 의례 절차를 고도로 까다롭게 하여 그 실현을 어렵게 하든지, 아니면 전복의 의례를 통하여 역설을 적극적으로 사유하는 방법으로 반응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이라는 역설을 수용하는 장례 의식을 통해서 이러한 주제를 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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