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지금 분위기와 어울리는 기록이 눈에 들어온다. 120년 전 서울에서 활동한 선교사 언더우드에 대한 기록. 서양인으로서 한국의 여름이 무척 힘들었던 것은 알겠는데, 이 기록에서 무더위는 비위생과 연결되어 죽음의 공포로 서술된다. 그들의 위생학 이론에서 매우 해로운 기후로 분류되었던 듯. 한국이라는 배경을 제외하고 보면 아프리카 정글에서 겪은 일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의구심은 떠나지 않는다. 정말 그 정도로 살기 힘든 곳이었나? (서울에 짱박혀 있는 내게 이 기록은 말한다. 휴가 없는 한국의 여름은 죽음이라고.)
[청일전쟁 때문에]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미 해병대가 서울까지 들어왔고, 전쟁 동안에는 모두 서울에 남아있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래서 무척 무덥고 건강에도 해로운 여름날, 방 안에만 갇혀 지내던 많은 선교사들이 병에 걸렸다.
릴리어스 호턴 언더우드, 이만열 옮김, <<언더우드: 조선에 온 첫 번째 선교사와 한국 개신교의 시작 이야기>>(IVP, 2015), 160.
전킨 목사 부부도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여름을 보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해 가을 그들의 아이 하나가 죽었는데, 이는 서울에서 그 몇 주 동안의 뜨거움(열기) 때문에 희생된 한 예였다. 언더우드와 나의 어린 아들도 여름 내내 앓았다.……스크랜턴 가의 아이들도 열 때문에 쇠약해졌다.(160)
가장 더위가 심할 때면 우리는 매일 비교적 시원하고 바람이 부는 ‘프레드릭 언더우드 휴양소’로 가, 그 꼭대기에 텐트를 쳐 놓고 살았다.……그 정도로 사대문 안에 있는 우리 집은 무척 더웠고 공기도 매우 나빴던 것이다.(161)
언더우드는 한강변에 있는 언더 위에 여름 별장을 지을만한 매우 아름다운 장소를 살 기회를 얻었다.……덕분에 가족들은 수년간의 여름 동안 서울의 성벽에 갇힌 비위생적인 환경으로부터 피할 장소를 얻게 되었다.(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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