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설명이 허술한 탓이겠지만, 문화로서 종교를 다루는 것이 만만치 않음을 새삼 느낀다. 요즘 하고 있는 ‘종교와 영화’ 강의 첫머리에서 나는 종교는 인간의 상상력이 발휘되는 전통적인 영역이고 영화는 상상력이 발휘되는 현대의 영역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늘 하던 이야기였고 상당히 소박한 차원의, 별 어려울 것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내용인데, 의외로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종교를 인간의 상상력과 연결한다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가 속한 집단 내에선 당연한 말이 사회적으로는 그렇지 않음을 일깨워주는 것이 강의(특히 교양)이다. 문화(즉 인간이 만든 것)로서 종교를 다루는 학문적 전통을 일구는 일이 종교학 내외로 얼마나 지난한 일이었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예전에 읽었던 정선생님의 글에서 “문화를 통한 종교 읽기”, “종교를 통한 문화 읽기”라는 표현이 눈에 확 들어온다.
자연을 담은 초월의 실재, 실존이 믿음의 형상, 그런 경험들이 어우러져 마련하는 종교문화의 현실을 각각 ‘하늘’과 ‘순수’과 ‘상상’으로 개념화하고 싶었던 것이다.……이 글들은 한결같이 종교 또는 종교문화를 정직하게 묻고 새롭게 대답하려는 의도를 담고 씌어진 것이다. 종교와 문화를 분리하는 일이 전혀 적합한 것이 아니라고 전제하면서도 ‘문화를 통한 종교 읽기(순수)’와 ‘종교를 통한 문화 읽기(상상)’를 읽음 범주로 설정한 것은 그런 의도를 구체화하기 위한 작업이다. 어쩌면 ‘우리 종교문화 읽기(하늘)’는 그런 구분 이전의 경험을 직접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범주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정진홍, <하늘과 순수와 상상>, 7-8)
이것은 종교학을 새로운 언어이게 한 선언이었다. 당시에도 새로웠고, 후학들의 노력에 의해 꽤 작업이 진전된 지금도 여전히 생경하다.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를 더듬어 보아야 이 이야기를 더 설득력 있는 형태로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영역에서 이 내용을 구체적으로 전개하는 데 ‘통과 의례(영웅 신화 구조)’만한 주제가 없는 것 같다. 전통의 종교문화에 존재하는 구조가 현대의 각종 영화들에 내장되어 여전히 위력을 보여주는, 손에 잡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엘리아데의 책 <Rites and symbols of initiation>에 관심이 생겼다. 내가 최근까지 몰두해온 것은 새로운 자료를 찾아내는 것이었는데, 강의를 하다 보니 자료를 어떠한 구도로 정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생긴다. 그런 의미에서 엘리아데의 책도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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