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일, 한국인의 하느님 관념(1900)
James Scarth Gale, "Korean Ideas of God,"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 23-9 (Sept., 1900): 696-98.
*[]로 표시한 내용은 게일이 한글을 알파벳으로 음역한 내용이다.
눈앞에 갈대 울타리 너머로 간신히 보이는 갈색 초가가 있었다. 문 안으로 들어가자 안에는 풀이 나 있지 않고 깨끗이 치워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부엌에서 쌀을 씻던 주씨 부인은 소매를 걷어붙이며 나와서 나를 맞아들였다.
“안녕하세요? 부인과 아이들은요?” 부인이 물었다.
“우리는 잘 지냅니다. 부인과 주씨는 안녕하신지요?” 내가 답했다.
주씨는 내 목소리를 듣더니 몇 자 되는 담뱃대를 들고 사랑방에서 나왔다. 나는 즉시 안으로 안내되어 상석의 방석 위에 양반다리로 앉았다. 주씨는 맞은편에 앉고, 주씨 부인은 안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둔 채 부엌에 일하러 돌아갔다. 그는 한국에 대해, 한국의 미래에 대해, 지역의 일들에 대해 얘기해주었고, 나는 동양인에 대해 누구나 느끼게 되는 관심을 억누르지 않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검은 눈은 친절하고도 자신감 있게 나를 향해 있었다. 너무 검어서 동공과 홍채를 구별하기 힘들 정도였다. 피부는 올리브빛이었고, 머리는 흑청색의 직모였으며, 치아는 강건하고 상아처럼 하얬다. 코는 예쁘다고 하기에는 다소 납작했지만 곧았다. 그의 얼굴은 다소 가늘고 나약해 보였지만, 늘 뛰는 심장처럼 편안하게 자리 잡은 안정감, 그리고 순수하고 남을 위하는 의지를 가진 그는 다른 모든 서양 기독교인들보다도 하얘 보였다. 동양인들은 자유롭게 사유하지 않기 때문에, 주씨가 특별히 사상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훌륭한 기억력을 가졌기 때문에 지식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황색 피부와 튀어나온 눈 뒤로부터 조상들의 전통들이 끊임없이 실려 나왔다.
내가 말했다. “주씨, 오래 전 우리나라 남부 지역에는 톱시(Topsy)라고 불리는 흑인 소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교회에서 돌아온 그녀에게 주인이 말했죠. ‘톱시야, 목사님이 오늘 뭐라고 설교하셨니?’ 톱시가 답했죠. ‘하느님이요, 피비 주인님. 그는 하느님에 대해 설교했어요.’ 주씨, 이제 내게 하느님에 대해 설교해 주십시오. 기독교 시절 이전에 한국인들이 그분에 대해 알았던 모든 것에 대해 말해주세요.”
주씨가 말했다. “우리의 하느님은 큰 한 분(the Great One)이고, 하나를 뜻하는 말 ‘하나’와 군주, 주인, 왕을 뜻하는 말 ‘님’으로부터 나온 말 ‘하나님’(Hananim)이라고 불립니다. 우리는 그분을 우주[천지]의 건설과 연결시키며 그래서 그분을 고대의 창조주[조화옹]이라고도 부릅니다.”
나는 주씨의 이 말이 만물이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진화했다는 순수한 유학자들의 생각과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만물은 스스로 생겨난 것이다”라고 말한다. 만물이 부모 혈통이나 기원의 종이 아니라 혼돈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이것은 서양이나 현대 진화론의 분파보다도 더 일관된 진화론 견해인 것 같다. 집비둘기가 가만히 있는 푸른 바위에서 발달해 펑하고 나올 수 있다면, 무한한 무(無)에서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겠는가? 그들의 말에 따르면 “사람은 정점에 이르기까지 발달하며, 그 후에는 늙어 퇴화하게 된다.” 발달과 함께 퇴화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잘난 체하는 지식인들의 견해이지 주씨와 같은 소박한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다. 그는 만물이 위의 하늘에 계시면서 하시는 바에 따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거나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그분은 삶의 중요한 운행에만 관여하신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평범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제2의 정령들에게 직접 빌고 기도하고 제사를 올리지만, 모든 희망이 좌절되었을 때는 하나님을 부른다. 나는 이와 관련해서 내가 원산의 한 거리를 지나갈 때 하나님을 부르며 아들을 살려달라고 하는 한 할머니를 본 이야기를 주씨에게 해주었다.
주씨는 말했다. “그것이 그 노인의 마지막 호소인 거죠.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적 존재의 극한이고 그분을 넘어 이야기할 곳은 없으니까요. 비바람에 영혼이 양지를 떠나는 폭풍우의 고통 아래서만 그분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극히 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으시고[하나님 지공무사(至公無私)하다], 거룩하시다[거룩하시다]고 말합니다. 그분은 우리 인간들이 호소할 수 있는 마지막 관청이지만, 그분께 다가가는 길은 무섭고 천둥 번개가 놓인 곳이다.”
나는 천둥이 칠 때 한국인들이 항상 갖고 다니던 담뱃대도 치워두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주씨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우리는 관리 앞에서도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어떻게 감히 담배를 피우겠습니까? 하지만 무섭긴 해도 그분은 인자하시고 비를 내려주십니다.[고마우신 하나님 비 주신다] 그리고 매일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십니다. 장터에서 옛부터 전해지는 노래가 있죠. [밥 잘 먹기는 하나님 덕 / 옷 잘 입기는 처권의 덕 / 재주 잘 나긴 조상의 덕 / 신수 잘 나긴 부모의 덕 / …… ]”
이 일반적인 장터 노래에서 한국인들은 하느님을 사람을 먹이는 존재로 묘사하였다. 옷은 여성에 의해 준비되고, 지위는 조상에게서 오고, 아름다움은 유전되고, 부모님에 대한 사랑은 자식과 함께 가고, 친구들 간의 우의도 볼 수 있지만, 이 상황의 기반이 되는 것은 대지의 선물이고 하느님[하나님]이 이들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배은망덕하여 죄를 짓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기다려 주시고 시간을 두고 벌을 내립니다. 예부터 전해져서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아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처음에 하느님은 지상의 일에 대해 끈기 있게 기다렸지만 그의 기다림은 수포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점점 하느님의 존재로부터 멀어지고 세대가 지날수록 더 사악해졌기 때문이다. 마침내 화가 난 하느님은 천둥 천사(Thunder Angel)를 불러 사악한 자들을 멸망시키라는 명령을 주어 무장해서 내려 보냈다. 처음 왔을 때 천사가 보기에 모든 사람들이 사악했고 그들을 멸망시키는 것은 지구를 깨끗이 하는 일에 다름 아니었다. 그는 여러 나라를 둘러보고 모든 곳을 다녔다. 마침내 여행 막바지에 그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 중에 죄를 짓지 않은 의로운 사람 단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천둥 천사는 수만 명중 한 사람으로서 전적으로 사랑스러운 그를 보고 사랑했다. 천사가 하게 된 일은 무엇이었을까? 남들을 모두 멸망시키고 이 사람 하나만 살리는 것이었을까? 오래 생각한 후 천사가 말했다. ‘무엇을 할지 정했다. 나는 한 명 의로운 사람을 죽여 모든 악한 이들을 대신할 것이다.’ 그리하여 천둥번개가 천사가 사랑한 이에게 내리쳐서, 그는 모든 인류를 대신하여 죽었다. 그것은 천사를 보낸 하나님의 명에 의한 것이었다.
당신은 우리의 하느님이 위대하고 거룩하고 정의롭고 전지하고 전능하며 편재해 있고 경이롭고 두려우며 불가해한 분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기독교 교사들이 와서 하나님이라는 이름과 우리가 밤에 전해 듣는 이 작은 이야기에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에는 알지 못했던 의미, ‘하느님은 사랑’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죠.”
주씨는 세월의 부침을 겪었고, 그의 검은 눈으로 슬픈 일들을 힘없이 지켜봐왔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그의 내부를 충만케 했으며, 그의 마음속에서 예수는 그와 다른 많은 이들을 대신해 돌아가신 한 분 의로운 분으로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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